환란 중에도 신실한 교회

요한계시록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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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때때로 우리의 실체를 보게 하는 아주 선명한 거울이 됩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어려움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자신을 말씀에 비춰보고 시험하여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금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겸비하게 세워 주님 앞에 온전히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나누는 말씀의 서머나 교회는 환란이 아주 많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환란과 궁핍과 가난과 비방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세상과 타협하여 편하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세상의 눈에는 그들이 궁핍하고 가난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다르게 보셨고, 주님은 그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힘을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기에 주님의 위로가 우리의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현대의 교회는 많은 고난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허물 때문에 생긴 일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어 당한 일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세상이 바라보는 잣대로 교회를 판단하는 소리를 그대로 들어 우리도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고 교회를 판단한다면, 우리는 교회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및 코칭 : 여러분은 자신과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세상이 보는 그대로 교회를 보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우리들은 세상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세상의 잣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주님의 판단을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오늘 서머나 교회를 통해 환란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실한 교회로 든든히 서 나아가는 영동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서머나는?
1) 서머나 지역은 어떤 곳?
서머나 교회가 있는 지역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지역 중, 가장 아름답고 윤택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의 지역 중 현대에 유일하게 남은 지역이 이 지역입니다. 현대에는 이즈미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아직도 아름다운 자연관경을 자랑합니다. 또한 항구도시여서 물자와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부유했습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상거래를 해서 물자가 풍부했습니다. 지역민들 중에 가난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황제를 숭배하는데 앞장을 선 지역입니다. 적극적으로 황제를 숭배한 결과, 황제는 그들을 어여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도서관과 극장, 올림픽 경기장, 황제숭배 신전등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모두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세워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은 황제 숭배가 당연한 곳이었습니다. 황제 숭배를 하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볼 정도였습니다.
2. 서머나 교인들이 받았던 고난(궁핍과 비방, 투옥)
하지만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이러한 풍요로운 지역에서 환란과 궁핍과 비방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우리 9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대표적인이 고난은 궁핍과 가난, 비방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궁핍하고, 가난하고, 비방-모욕-거짓혐의를 당한 것일까요?
1) 궁핍-가난
그들이 궁핍한 이유는 서머나 지역에서 상업적인 활동을 하려면 상인 조합에 가입을 해야 했는데, 이 조합에 가입을 하려면 황제숭배를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황제의 신상 앞에 서서 “황제는 우리의 주님이시다.”를 외쳐야 했습니다. 이 조합에 가입이 되지 않으면, 막대한 세금내야 했고, 자유로운 상업 활동이 어려웠기에 돈을 못 벌어 가난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증 및 코칭질문 : 현대의 상황에도 이러한 모습이 보입니다. 이슬람권에서 예수님을 믿어 가족에게도 의절을 당하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입니다. 유대 메시아닉 주들의 고백도 공통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가족에게 고백했더니 가족들이 자기의 아들이 아니며,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 홀로 살아가는 메시아닉 유대인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믿어 당하는 환란에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여겼습니다. 타협할 수 있는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받는 고난을 기쁘게 여기고 감당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대에 편하게 신앙을 이어나가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줍니다. 초대교회나 현대의 교회나 세상과의 타협의 문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에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고난 속에서 기쁨을 누리실 수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고난과 가난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으신가요? 이 일은 우리에게 큰 믿음의 결단을 던져줍니다.
주님의 답변 : 가족으로부터 분리가 되어 있어 고통 중에 홀로 남겨짐은 너무 쓸쓸하고, 가장 큰 고통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 남겨진다면 버티기가 정말 힘들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서머나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물질적으로 궁핍했습니다. 그리고 고독했습니다. 그들은 버림을 받은 사람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답변을 달랐습니다. 9절의 말씀을 보면, 주님이 아신다고 하십니다. 너희들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화 및 적용 : 이상하게 우리 부모님은 자녀의 마음을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힘들고, 지치고 마음이 우울할 때면 저의 힘든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차리십니다. 저는 저의 힘듦을 숨겼지만 그게 부모님에게는 숨겨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 고민을 해봤는데, 그것은 제가 부모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으로부터 낚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교회의 고난과 수고를 잘 아십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이 사실이 무서운 사실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사실이 된다면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아심은 우리의 큰 위로와 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답변은 상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실상은 그들이 가장 부유하고, 온전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본다면 그들은 가장 가난하고 천하고 폐허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은 가장 위대한 성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시선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과 상황을 보고 계신가요? 하나님의 시선으로 고난을 봐야 참된 믿음과 해석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참되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본다면 낙심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세요.
2) 유대인의 비방
로마가 기독교인을 핍박할 때 교인들을 가장 많이 핍박했던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서머나 지역은 유대인의 대규모 거주지가 있었습니다. 워낙 장사를 잘하여 세금을 잘 내는 민족이기에 로마는 그들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머나에 편하게 거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황제를 신/하나님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황제로서는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타협을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주인/ 왕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끝까지 황제를 주인이요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고백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를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은 타협하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미워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문란하고 더러운 이방 종교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유대 종교는 사람들에게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거룩한 헬라인들이 회당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유대의 회당에 와서 성경을 낭독하고 강론할 때, 많은 경건한 헬라인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이들의 개종은 유대교의 쇠락을 가져왔기에 유대인들은 이들의 개종을 싫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많은 방법으로 박해했습니다. 행 13:50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권력자들을 동원하여 기독교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거짓 소문을 퍼트려서 그들이 감옥에 갇히게 했습니다. 또한 그들을 부추겨서 교회가 모이지 못하게 비방하고 폭행하고 방해했습니다.
주님의 답변 :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사단의 회당이라고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백성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단의 회당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이 당하는 유대인들의 비방을 잘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비방은 사실 신성모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비방과 박해는 예수님을 향한 박해와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에 회심 사건을 기억해보세요. 바울이 살기가 등등하여 성도들을 박해하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은 왜 자신을 박해하냐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대한 박해는 주님을 향한 박해와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만, 실제로는 사단과도 같은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신앙으로 타협하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비방하며 박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들은 유대인이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자칭 유대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비방은 정당하지 못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그들의 비방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퍼트린 거짓 소문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적용 및 코칭 :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 찾아오는 사람들의 비방과 거짓소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그들의 비방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요? 그들의 비방은 신성모독과도 같아서 주님을 향한 비방과 폭력이었습니다. 그 비방들은 옳은 것일까요? 그들의 비방은 옳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비방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비방을 자신도 잘 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비방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사단들이 모여 속이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비방에 흔들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적용 : 현대의 많은 교회들이 비방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비방에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의 비방을 이기어낸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비방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비방이 아닌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굳건히 서는 신실한 성도들이 됩시다. 우리를 온전히 세울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3. 이 시험은 누구로부터 온 것일까?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공격이 누구로부터 왔는가를 알 때, 온전히 대비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공격하는 공격의 주체가 마귀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마귀는 성도를 넘어트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어있는 성도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기십니다. 그러므로 문제 앞에서 하나님 앞으로 가는 성도가 됩시다.
마귀의 시험은 어떠한 시험일까요? 10절에서 마귀는 성도들에게 10일간 환란을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0일은 어느 정도 날 수가 정해져 있어서 이길 수 있는 환란을 의미합니다. 일수가 있어 버틸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사이 고난을 당하고 몇 사람이 넘겨져 환란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 기간은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10일은 다니엘의 시험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거절할 때 말미를 달라고 한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시험해보는 날 수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해보는 날짜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10일간의 환란이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시험해보고, 더 온전히 세워지는 기간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고 영적인 시험을 겪으므로 더 강해지고 굳건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시험 앞에 자신을 내어 놓은 성도들을 지키시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에을 통과한 성도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시험에서 통과하여 우뚝 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하신가요?
예화 : 지금 미국은 전 세계 1위의 군사대국이지만 1900년도 초반 전 미국은 전쟁으로는 약소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실패와 승리를 여러 번 경험한 미국은 현재 군사 강국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전쟁과 환란을 격을 것이지만, 그 후에는 온전히 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계속되는 전쟁이 우리로 피곤하게하고 지치게 하고 낙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환란과 시험 끝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함이 있을 것이며, 영적인 능력이 더욱 굳건하여진 여러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환란 속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4. 주님은 서머나 교회를 인정하신다.(믿으신다)
서머나 교회에게 계속 찾아오는 고난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환란과 궁핍과 비방 후에도 더 고난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10절의 말씀은 남은 고난이 더 남았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당한 고난이 끝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 이제 시작이다”, “아직 더 있다”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옥에 갇히고 가족을 잃고, 예수님 때문에 가난하게 살고,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이 고난이 더 남았다고 하시며,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죽을 수도 있는 극심한 환란이요, 마지막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지쳐있고, 겨우 버티고 있는 성도들에게 “아직 더 남았다” 하시며 고난을 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서머나 교회를 믿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 주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런 환란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환란을 감당할 힘이 있을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힘과 능력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서게 만들고, 이기게 만들겠습니까? 더 이길 힘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이제부터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입니다. 앞으로 임할 환란은 전보다 더 힘들 것이지만, 이 싸움은 하나님이 싸우시는 것을 그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가족이/ 친구가 잡혀가고 극심한 환란이 닥쳐오는 상황이지만 이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공격하는 배후의 세력인 마귀를 무찌르시고, 교회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예화 : 고구려의 안시성 전투, 양만춘의 승리
당태종의 30만대군은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만주 벌판이 당태종의 군대에게 거의 넘어갔습니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곳은 안시성이었습니다. 유일한 성읍, 모두가 목숨을 버리고, 끝까지 지키는 위태로운 안시성이 서머나 교회와 닮았습니다. 얼마를 더 버틸지 내일까지 버티면 끝날지 모르는 공성전에 왕은 장군과 백성에게 편지합니다. “힘내라 버텨라”
고구려의 왕은 양만춘에게 얼마나 고통이 심하냐, 내가 그 고통과 힘듦을 안다고 양만춘과 백성들에게 편지했습니다. 그래도 안시성이 무너지지 않게 끝까지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왕의 편지를 받고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이 전쟁에 승리하였습니다. 자신의 국가와 안시성을 지켰던 것입니다.
적용 및 결론 : 서머나 교회는 영적인 전쟁에 있어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안시성의 백성들과 같습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끝까지 성읍을 버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심을 그들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도 서머나 교회와 같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전투와 치열한 전투 가운데 서 있는 성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싸움을 끝까지 인내하는 성도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면류관은 당시에 올림픽 경기장에서 아주 극심한 전투를 하여 승리한 병사에게 주는 면류관이었습니다. 그들의 싸움이 이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기장의 병사와 같았습니다. 내가 죽거나, 아니면 상대가 죽거나 한편입니다. 성도들의 싸움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달려들어 패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패배는 있을 수 있지만 포기는 없스빈다.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서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우리의 싸움이 너무나도 치열하여 시험을 참지 못할 때, 주님의 아심을 기억합시다. 반복되는 시험과 환란에 힘을 잃었을 때, 그 때부터가 주님이 역사하실 때임을 기억합시다. 시험이 커서 낙심할 때, 주님께서 인정하는 자에게만 이러한 시험 주심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치열한 전투에 신실하게 인내한 성도에게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심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을 잃은 무릎을 들어 다시 고난을 이겨냅시다.
포기하지 말고 다시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영적 전장으로 돌아갑시다.
눈물을 거두고 신실하게 믿음의 자리를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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