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신년 메시지 2022- 0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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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성도 여러분, 새해 첫 주일 예배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벌써 202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를 통해 우리는 2022년 새해가 사랑 안에서 화목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 주시는 복된 말씀들을 함께 받았습니다.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우리의 2022년은 말씀 안에서 감사의 출발을 했습니다. 새해의 놀라운 은혜를 소망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올해 2022년 우리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주제를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려고 합니다. 오늘 주보에 보면 이 말씀을 새긴 책갈피가 있을 것입니다. 보시면 앞에는 말씀 구절이 있고, 뒤에는 찬송이 있습니다. 가지고 다니시면서 새해에는 이 말씀과 찬송으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표어 성경 구절로 붙들고자 합니다. 우리 함께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봅시다.
마태복음 6장 33절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에 기초하여 우리는 천국을 누리고, 전파하고 전수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세웠습니다. 모두 올 한해도 천국을 누리고 전파하고 전수하는 삶을 위해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런 천국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 올 2022년은 히브리서 3장 1절의 말씀을 주제로 삼고자 합니다. 우리 같이 히브리서 3장 1절 말씀을 봅시다.
히브리서 3장 1절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사도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교훈합니다. 여기에서 생각한다는 말은 묵상한다, 혹은 깊이 고려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모든 일에 예수님을 우선으로 고려하고 묵상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묵상하고 생각하는 대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을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닮고, 학문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은 학문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까닭에 성도는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여 예수님과 그 분의 삶을 내 몸과 인격 속에 온전히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그렇다면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무슨 큰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회의적인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런 결과없이 생각만 하고 말면 그뿐인데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고전 철학은 생각하는 것이 존재를 확정하는 소중한 요소라는 입장을 갖고는 있지만 타락한 이성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생각한다고 변화를 누리며, 생각하는 것을 통해 무슨 새로운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근대의 철학도 이성이 결국 사람의 감정을 따라 다니며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태도

구약 성경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죄성을 가지고 살아 왔다고 가르칩니다. 지금도 인간 세계의 고민과 문제는 여전히 죄성이 인간을 지배하는 데 있습니다. 개인의 죄성만이 아니라 집단의 죄성은 악을 정당화하며 말씀을 부정하는 데 조직적이 됩니다. 법의 권위 혹은 통치의 권세들도 모두 타락한 인성 자체에 뿌리를 둠으로서 인간 사회의 삶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타락과 부패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 회복의 길을 여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나 세상이 모두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사랑 가운데 새로운 천국 자녀의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인간의 죄의 근원을 치유하시고자 하셨고, 근본적으로 죄인된 우리들이 아버지와 회복된 관계를 통해 거룩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의의 존재로 변화시키시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운데 그의 아들 예수님을 그리스도 보내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알고 심령에 모심으로 새로운 개인,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성도에게 참된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도는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본문 3장 1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히브리서 3장 1절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 말씀하는 ‘믿는 도리’라는 말은 ‘호모 로기아’라고 해서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이는 성도가 고백하는 믿음의 내용을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도리의 사도시라고 말하는 데, 사도는 우리에게 참믿음을 전해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혹은 그 분 자신이 바로 믿음의 고백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도인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참믿음의 전달자시며 믿음의 내용이 되십니다. 이 믿음의 내용이 되시기 위해 에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드려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신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의 내용이 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사역을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특별히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이 사도와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셨습니다. 성도에게 믿음을 전하시기 위해 세상에신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사도로 세워 믿음의 내용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하는 예수님의 사역들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동시에 낮아져서 사람되신 이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되새김으로 죄인된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새로와 지는 은혜를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W1. 예수님께서도 받으신 이 소명을 신실하게 감당하셨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신실하신 섬김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 신시라신 섬김을 모세의 충성과 비교하여 말합니다. 본문 2, 3절 말씀을 봅시다.
히브리서 3장 2, 3절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믿을 바를 선포하고 가르쳐 주신 아버지의 보냄 받으신 사도이시며,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죽이신 진정한 대제자상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사역에 게으르거나 나태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소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백성들의 도전과 불순종으로 마음에 큰 짐을 지고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모세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은 진정으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까지 아버지께 신실하게 충성하신 분이십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신실하게 감당하신 바로 이 사도로서의 사역과 대제사장으로서의 죽으심을 깊이 묵상하며 그 은혜를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W2. 예수님의 신실하신 섬김은 죄인들은 거룩한 형제들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통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형제들이 되고 믿음의 백성들이 됩니다. 사도는 성도를 부를 때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본문 3장 1절 상반절을 한 번 더 봅시다.
히브리서 3장 1절 상)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
사도가 성도에게 믿음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함께 하늘의 거룩한 형제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도인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한 아버지의 신적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한 자로 부르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W3. 하나님은 예수님을 주심으로 우리를 자기 자녀고 부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된 세상과 우리들에게 하늘의 부름을 받아 거룩한 형제가 되게 하는 참믿음을 주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믿음의 사도시며, 우리를 대속하여 죽으신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묵상함으로 아버지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됩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통해 참된 구원과 생명의 놀라운 새 백성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인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여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과 택하신 은혜를 더욱 굳건하게 하고, 영원한 천국을 누리는 자들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0, 11절을 같이 봅시다.
베드로후서 1장 10, 11절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T1.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함으로 구원의 생명을 누렸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완전히 준수한다’ 뜻입니다. 카나노에오는 단지 머리에 어떤 이미지를 떠 올리는 것을 넘어서서 믿음의 삶을 온전히 준수하고,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죽으심을 완전하게 믿고 부활의 은혜를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의 배경으로 보면 이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피흘리기까지 충성되게 믿음을 붙드는 삶을 말합니다.
순교사 열전에는 202년 북아프리카에서 있었던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의 박해 시에 끝까지 인내한 여인 페르페튜아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귀족으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박해가 오자 가족들은 그녀를 개종시키려 설득하려고 애를 씁니다. 어린 자녀를 동원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그녀는 신앙을 지키고 투기장으로 끌려가 암소에 들이 받혀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게 됩니다. 보고 있던 관중들도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는 그만두라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페르페튜아는 사형 집행인에게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에 그 고통 속에서 기독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 자매들에게 전해 주세요! 믿음 안에 굳게 서고, 서로 사랑하며, 우리가 당한 환난이 믿음의 거침돌이 되지 않게 하라구요” 그녀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형제, 자매들의 믿음을 걱정하며 이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잔혹한 박해는 군중들을 잠잠하게 했고, 이후 이런 박해는 교회 안에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피흘리기까지 신실하셨던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그분의 삶이 내 삶이 되도록 그렇게 결단하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T2. 오늘날 현대는 그리스도에 대해 신실하게 생각하지 않음으로 본질을 상실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늘에서 오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 진지하고 신실하게 생각하지 않음으로 절망의 경계선 아래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 알지 못하는 세상은 이 땅에 존재하는 심각한 죄성과 죄악들로 인해 철저하게 좌절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인간과 제도, 국가와 질서를 신뢰할 수 없는 시대를 삽니다. 오늘날 정부가 부르짖는 무수한 구호들과 외침들, 혹은 종교나 조직이 말하는 거창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마음에 감동으로 오지 않는 이유는 그 모든 것들 속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거짓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실함이 없는 이들을 향해 이제 세상은 속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소망이 없어집니다. 믿을 대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신뢰하는 마음도 갖지 못하고 삽니다. 그래서 세상은 어둡고 절망이고 답답하고 해결책이 없는 채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깊이 묵상할 예수님을 소유함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고백하는 모든 믿음, 곧 죄인을 향해 구속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시는 아버지의 사랑의 호의를 전하신 우리의 참 믿음의 사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뒤로 하시고, 땅의 사람으로 오셔서 낮음과 고난을 통해 아버지의 그 사랑을 드러내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성경의 인물들이나 역사 속의 신앙들은 이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보내신 영원하신 영적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이런 믿음의 소망을 가진 이들의 이름을 열거합니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 등이 다 오실 메시야를 소망하며 그를 생각하며 믿음 가운데 살았던 인물들입니다. 이 모두를 이어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는 부끄러움도 감당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봅시다.
히브리서 12장 2절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버지되신 하나님은죄로 인해 깨어지고 무너진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그 아들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의 믿음의 사도가 되게 하시고, 참된 대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누구보다 신실하게 순종하시며, 그분보다 앞서 왔던 모든 종들, 곧 주의 선지자들과 왕들과 제사장들보다 더 신실하게 맡은 직분을 수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자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약속된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죄인인 우리를 성도로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 있고,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안에는 우리를 구원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예수님과 그 분 안에 있는 풍성함을 깊이 생각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믿음의 사도가 되신 그 예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삶이 자리 잡을 때 성도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고, 전할 수 있고, 전수하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올 2022년은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그를 전적으로 따르는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사신 그 순종과 겸손의 삶을 내 속에서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의 모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시고 나아가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던 것처럼 때로는 피흘리기까지 주님을 따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더하여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삶은 함께 형제된 거룩한 성도들과 함께 믿음의 주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나누는 삶을 말합니다. 혼자만의 신앙 생활이 아니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삶을 연합하여 하나된 성도됨을 누리는 삶, 이것이 우리 모두가 올 한해 힘써야 할 신앙의 방향인 것입니다. 코로나의 환난 중에서도 우리 모두의 마음은 주님이 주신 믿음에서 결코 곁길로 가지 않고 오직 한 길, 십자가의 길로 모여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믿음의 길에 온전히 서는 복된 한 해, 은혜의 2022년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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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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