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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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태국상황: 코로나 일일 확진자 2만명(작년 8월)—>2천명—> 8천명
선교주일: 파송선교사(2017년, 27000명, 170개국, 개신교인 중 0.27%), 귀국선교사(2020년5월 GMS 490명 10%)
길어져도 집중해주시길… 중요한 본문…
1. 본문 설명
1. 본문 설명
마태복음 6:19–34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엔 우라노스]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프랜스, 이러한 표현들이 유대문헌에도 종종 나온다고 지적한다]
잠언 22: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잠언 28:22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목숨/몸이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or 목숨]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고린도전서 6:13 ...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에피제테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제테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에이스]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1-1. 물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라는 명령이다
1-1. 물질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라는 명령이다
기도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교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방인들이 추구하면 사는 것과 다르게(마 6:32)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라”는 의미다.
“추구한다”는 것은 “염려한다”[메림나오]는 말과 같은 의미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에이스] “염려하라”는 뜻이다.
“염려한다”[메림나오]는 말은 ‘보살피다, 마음을 쓴다, 생각을 집중시킨다’는 의미다.
고린도전서 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메림나오, 염려하다/보살피다]
고린도전서 7:32–33
…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things)을 염려하여(긍정적)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부정적)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즉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온 마음을 쓰라’는 표현이다. 즉, 최우선순위로 여기라는 뜻이다.
그분의 나라가 가까이에 있으니 그 나라의 완성을 바라며 하나님을 “섬기는”(마 6:24) 삶을 살라는 의미다. “재물”을 위해 살지 (섬기지) 말라는 뜻이다.
1-2. “그의 나라와 의”는 무엇인가?
1-2. “그의 나라와 의”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나라=왕국/왕권[바실리아]=천국[바실리아 오 우라노스]
나라와 의, 두 가지를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1) 나라[바실리아, 왕국/왕권]
(1) 나라[바실리아, 왕국/왕권]
“산상수훈” 전체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마태복음 5:3, 10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바실리아 오 우라노스]이 그들의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바실리아 오 우라노스]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6:10 (주기도문, 산상수훈의 이어지는 문맥)
[당신의] 나라[바실리아]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우라노]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7:21 (듣고 행하는 자를 강조하시면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바실리아 오 우라노스]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 의[디캐오쉬네, “올바름”]
(2) 의[디캐오쉬네, “올바름”]
신약에서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칭의)로 많이 사용된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에이스]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디캐오쉬네]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은 구원의 교리(칭의교리)를 설명하시는 것이 아니다. 구원 받은 자의 삶(열매)에 대해 이야기 하신다. 거듭남(하나님의 자녀됨)의 필요성을 역설하신다.
본문에서 의는 “율법의 의”를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다.
빌립보서 3:6 (바울)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디캐오쉬네]로는 흠이 없는 자라
에베소서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디캐오쉬네]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의는 정의를 포함하여 구제를 의미하며, 넓게는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 전체를 가리킨다.
마태복음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크게 뛰어넘지/보다 넘치지] 못하면 결코 천국[바실리아 오 우라노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다른 종류의 의가 필요하다. “낫다”는 말은 "뛰어나다/넘친다”는 의미다.
고린도후서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외식”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의/선행/구제/사랑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모든 의를 온전히 행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 의를 행한다/행해야 한다.
1-3.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1-3.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선교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고, 오고 있으며 반드시 완성된다. 그때는 심판의 때이다.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신적수동태] 그제야 끝이 오리라
누가복음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백성답게 사는것이다. 그렇게 살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백성은 그렇게 살게 되있다는 뜻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적 삶(산상수훈, 사랑)을 사는 것이다.
2. 선교는 모든 사람의 의무이며, 모든 사람의 삶 속에서 행하고 있는 일이다
2. 선교는 모든 사람의 의무이며, 모든 사람의 삶 속에서 행하고 있는 일이다
2-1. 대위임명령과 새계명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2-1. 대위임명령과 새계명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통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인 의(정의)가 실현되는 곳이며, 그 백성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은 왕이신 하나님 그분의 백성인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명령, 정의와 사랑/인애)
차라리, 문맥에 따라 본문은 아모스선지자와 미가 선지자의 외침을 반영한다.
아모스 5:21–24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밋쉬팟]를 물 같이, 공의[체다카]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내가 너희들의 주일예배모임을 미워하며 너희들의 특별집회를 기뻐하지 않는다
너희가 찬송과 기도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않을 것이며, 너희의 풍성한 헌금도 내가 돌아보지않을 것이다.
너의 찬양소리를 내 앞에서 그쳐라. 너희의 악기 소리도 내가 듣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희는 너희 실생활 속에서 “정의”를 실천하고 “공의”를 실현하라. 그것이 네가 속한 사회의 주된 분위기가 되게 하라.
(소년원, 독거노인, 외국인노동자, 왕따, 소외된자, 자살하려는 자, 물질적 필요가 급한 사람)
미가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미쉬팟]를 행하며 인자[헤세드]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구약의 하나님의 명령은 결코 바뀌거나, 축소되지 않았습니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2-2. 선교(‘복음이 전달되는 방식’)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을 통해 행하시는 것이다
2-2. 선교(‘복음이 전달되는 방식’)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삶을 통해 행하시는 것이다
“선교”는 우리 성도의 삶과 분리된 어떤 이벤트(특별활동)가 아니다.
초기 교회(Early Church)
신약성경에서, 사도바울은 누구에게도 어느 교회에게도 더 많은 선교사를 배출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심지어 초대교회는 마 28:19-20 을 선교적 사명을 고취시기기 위한 구절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3: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바울과 바나바)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앨런 크라이더, 역사학자/교회사가,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
1-3세기 교회는 급성장했다(처음 3세기 동안 10년마다 40%씩 성장). 그러나 놀라운 것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이때 로마의 복음화율은 8-12%, 5-6백만명)
교회는, 심지어 큰 교회(수십명의 장로가 있는 교회)도 어떤 “조직화된 선교 제도/프로그램/단체”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선교사”를 파송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초기 기독교 문헌들에서는 “전도” “복음화"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통계: 한국 개신교인(2015년 통계청, 4900만명 중 967만명, 20%)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수적으로 성장했던 이유는 그들이 이웃 및 적들과의 관계에서 인내하며 살면서,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 그들이 신앙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불의한 자들’과 구별되었기 때문이다.”(p.67)
“교회의 주된 증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사는 방식의 산물이었다. 교회의 증언은 그리스도인과 공동체의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인과 공동체의 삶이 그들의 말의 진실성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한다고 믿었다(의역).”(p. 250)
어떻게 교회는 선교적 영향력을 잃어버렸을까?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에 대한 이런 접근법을 약화시켰을까? 그리스도인들의 독특한 매력(실천적 생활과 인내)을 훼손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너무 빨리 받아들임으로써였다.” (p.251)
*공예배는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비공개.
2-3. 선교는 어디에 있든지 모든 성도가 있는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2-3. 선교는 어디에 있든지 모든 성도가 있는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선교는 “선교사”로 부름받은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선교는 옵션일 수 없다. (불신자에게도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선교지에 있으며 선교를 행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딴짓하는 선교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영화 <간첩> 남한에 내려온지 13년-40년차 되는 “생계형’ 간첩들의 이야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해서 살면서 의욕이 없고, 자녀교육에 허덕인다. 임무(지령)를 위해 총을 가져와야 하는데 다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다(산, 총알)
먹고 사는 일에 집착하고 있는 엉뚱한 선교사들을 많이본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보냄받은 선교사라는 것을 잊지마라.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라는 동등한 명령을 받는다. 선교사가 더 큰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
선교사에게 헌금하는 것으로,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상쇄시키려하지 마라. “살아라”
성도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초점은 선교적 삶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나라(영광)이어야 한다.
선교 vs. 일상, 선교사 vs. 평신도 : 대립구도로 생각하지마라.
“가족 선교”, “직장 선교”, .... 극단적으로 하지 마라. 삶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라.
3. 결론: 먹고 사는 문제로 허덕이다가 인생을 끝내지 마라
3. 결론: 먹고 사는 문제로 허덕이다가 인생을 끝내지 마라
총정리.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염려하라(고전 7:32).
우리 인생은 그렇게 값 없지 않다. 피로 값주고 사신 바된 신부(교회)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갈망한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이다.
나의 고통을 통해서 그분이 영광받으실 수 있다면...
“만일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분이 항상… 치욕을 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내게 지옥일 것이다.”
여러분들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선교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외식하는 자, 예수님께서 싫어하시는 가식된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에베소서 5:8–10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원수에게 뺨을 맞더라도 그분이 영광받으실 수 있다면...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8–10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스겔 36:25–27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 구절이 선교사에게만 하는 구절인가? 아니다. 성도에게 중간지대란 없다. 참된 성도의 삶은 그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 “선교”다. 성도의 삶을 살아라.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아라.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문제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거듭난 자녀인가 하는 것이다!
(1) 불신자: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발견, 유일하신 참 하나님, 참 행복/만족을 알라. 회개하고 믿으라.
(2) 의심자: 외적 실천으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려 하지 마라. 믿음을 점검할 뿐. 겸손히 확신을 구하고, 그분의 약속을 붙들어라. 자신 안에 있는 “죄의 욕심”과 끊임없이 싸워라. 은혜의 방편을 사용하라.
(3) 확신자: 교만인지 체크,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점검, 다른 사람을 돌보라.
마태복음 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신을 점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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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I. 패커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주권>
“복음전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려면 두 가지 동기가 필 요하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영광을 구하려는 마음이고,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고 그의 행복을 구하려는 마음이다”
4. “선교”를 하면서도 세상 욕심을 추구할 수 있다
4. “선교”를 하면서도 세상 욕심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마 6:33)을 잘 못이해하여,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 즉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이방인과 같이(마 6:32) 세상적인 욕심을 추구하며, 바리새인과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자”가 된다.
마태복음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4-1. 선교/전도를 “이벤트”로 생각할 때 그렇게 된다
4-1. 선교/전도를 “이벤트”로 생각할 때 그렇게 된다
(1)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 타이틀에 집착할 때, 후원선교사 몇명, 선교헌금 얼마
(1)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 타이틀에 집착할 때, 후원선교사 몇명, 선교헌금 얼마
이벤트를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선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2) 성도가 전도를 특별활동으로 생각하고, 선교활동/도시선교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 정도로 생각할 때
(2) 성도가 전도를 특별활동으로 생각하고, 선교활동/도시선교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 정도로 생각할 때
대상자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활동은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람을 향한 진정성이 결여된다.
외국인(다문화) 교회 사역하면서... 반성
4-2. 교회 내 힘든 자를 돌보지 않을 때 그렇게 된다
4-2. 교회 내 힘든 자를 돌보지 않을 때 그렇게 된다
(1) 교회가 ‘보이는’ 외부사역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내 힘든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가를 보면 그 교회의 본모습을 알 수 있다
(1) 교회가 ‘보이는’ 외부사역을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내 힘든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가를 보면 그 교회의 본모습을 알 수 있다
갈라디아서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특히/무엇보다)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눅 20:47-21:4 (생활비 전부를 넣은 과부)
(2) 성도가 자기 가정-배우자와 자녀-을 잘 돌보지 않으면서 “교회 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다
(2) 성도가 자기 가정-배우자와 자녀-을 잘 돌보지 않으면서 “교회 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다
디모데전서 3:2, 4
2 그러므로 감독(장로)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디모데전서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디도서 1:6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자녀가 만약 방탕하다면 장로직/목사직을 내려놓는 게 맞다.
각자 성도는 자기 가정을 진심을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다. 가장은 가정의 영적 지도자다. 자녀의 거듭남을 위해 기도하는가? ‘죄와의 싸움’에 앞장서고 있는가?
코로나 대책은 열심인데, “죄의 바이러스”는 관심도 없다.
코로나는 걸리면 고생하고,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무섭다. 조심한다.
욕심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