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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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설교
일시 : 2021.10.24
본문 : 출애굽기 32장 1-14절
제목 : 금송아지 우상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예화]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를 아나요?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등장인물은? ‘마이 프레셔스’ = ‘골룸’일 것이다.
골룸은 원래 스미골이라는 남자였다. 그는 친구와 낚시를 하다가 우연히 물 속에서 반짝이는 반지를 발견하였다. 그것이 바로 ‘절대 반지’였죠.
그 반지는 스미골의 마음을 앗아간다. 이 반지를 오직 자신의 소유로 하기 위해서 절친을 살해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남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가서 하루종일 그 것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건강도 피폐해져가고,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리고, 몰골은 흉측해진다. 급기야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기침 소리 = ‘콜록 콜록 콜록 골룸’이 되었다.
이 절대반지만이 자신을 스스로 행복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이 절대반지가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절대반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 반지가 그를 소유하고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누구나 골룸이 될 수 있다.
골룸은 ‘절대반지’만을 위해 살아갔지만, 우리도 무엇인가를 세상의 가장 소중한 전부인 것처럼 살아갈 수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때로는 양심에 찔리는 일도 한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나 자신도 포기하고, 잊어버리게 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 만의 우상을 만들어낸다.
애굽 땅에서 탈출하여 두 달여만에 시내산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착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으로 올라갔다.
금방 내려오겠지 생각했던 모세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갈수록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눈 앞의 모세가 보이지 않자 그들 안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모세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급기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찾아가서 말한다.
1절을 읽어보겠다. “백성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자 아론에게 몰려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모세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으니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주시오.”
그들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니까 자신들 안에 감추어 두었던 본심이 드러나게 된다.
그들이 지금까지 의지하고 있었던 것은 누구였을가요?
하나님이 아닌 ‘모세’였던 것이죠.
그들 눈 앞에 모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자신들이 의지할 다른 대상이 필요했다.
나를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 줄 그 어떤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 가운데 눈에 보이는 어떤 신적인 존재를 만들어내라고 한 것이다.
결국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향하여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여 낸 신이다. 이것이 우리를 인도해 줄 신이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니 어떤가요?
황금 송아지 앞에 엎드려져있다니 한심한가요?
기껏해서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주었더니 어떻게 배신을 때릴 수 있을까 배은망덕한가요?
그런데 무서운 사실은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도 우상을 섬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우상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팀켈러 목사님은 우리의 마음을 우상 공장이라고 하셨다.
마치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마음공장에서는 우상을 찍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것들을 우리의 가장 중심에 세워놓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우상 = 가짜신 = 석가모니 / 불상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우상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 속으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우상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불안한 마음에 무엇이든지 의지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들이 있는 것이죠.
[예화]
일년전에 제가 이사를 하게 되었다. 반전세라서, 보증금을 내고, 월세를 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금액보다 보증금이 모자라서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다.
이사는 해야하는데… 은행에서 대출이 될까말까 / 은행에서 대출 승인이 나올때까지 조마조마했던지… 그리고 대출가능하다는 전화를 받고나서야 깊이 안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누구를 더 의지하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이사를 위해서 기도했던 순간들보다 은행의 전화 한통이 더 안심을 주었던 것이죠.
결국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을 더 의지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 보다는 은행을 더 신뢰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시겠지!”라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도 좋고 / 이성친구도 좋고 / 배우자도 좋고 / 좋은 직업도 좋다.
심지어 돈도 좋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 인생을 책임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다면,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우상일 수도 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좋은 대학 포스터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공부해도 좋다.
그러나 대학에 떨어지면 내 인생도 같이 벼랑끝으로 떨어지는 것이라면,
내 인생이 실패자라고 여겨진다면,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지금까지 인도해오시고 앞으로 인도해가실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몸짱 연예인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다이어트를 해도 좋다.
예전에 저는 ‘공유’형님의
열심히 운동을 했었다. 자극을 받으면서 한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나를 지배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골룸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 삶 가운데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로마서 1장 25절은 말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었습니다.
창조주되신 하나님보다 지음받은 피조물들을 더 예배하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찬송을 받으실 분입니다. 아멘.”
그리고 그 우상들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 좋은 것들이다.
남들도 다 원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들이 우리를 망쳐놓고 우리를 배신한다.
왜냐하면 우상은 우리에게 진짜 행복과 기쁨을 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을 수도 없으며 우리의 마음에 귀기울이지도 못한다.
결정적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짜 행복과 기쁨을 주실 수 있으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며, 우리가 주님께 용서를 구할 때 친히 용서해주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12-13절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노하시면, 이집트 백성이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것은, 그들을 산에서 죽이고 이 땅 위에서 멸망시키기 위해서였구나’하고 말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십시오.
주의 종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해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 그 땅을 영원히 물려받게 할 것이다’하고 주님 자신을 걸고 맹세하지 않으셨습니까?’”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셨던 일들을 회상하며 기도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14절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처음에 뜻하셨던 것과는 달리 자기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중고등부 친구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만들어낸 어떤 우상 / 사람 / 가치를 올려놓고 있다면,
이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불신 / 다른 신을 향한 경배와 숭배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애굽 노예 생활로부터 지금까지 인도해오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