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UNLIKELY
Disgust
0UNLIKELY
Fear
0UNLIKELY
Joy
0UNLIKELY
Sadness
0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15UNLIKELY
Conscientiousness
0.13UNLIKELY
Extraversion
0.44UNLIKELY
Agreeableness
0.6LIKELY
Emotional Range
0.23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Anger
Disgust
Fear
Joy
Sadness
Language
Analytical
Confident
Tentative
Social Tendencies
Openness
Conscientiousness
Extraversion
Agreeableness
Emotional Range
Anger
< .5
.5 - .6
.6 - .7
.7 - .8
.8 - .9
> .9
찬송 352[십자가 군병들아]
기도 김영숙 권사
본문 마16:15-16 (신p.27)
서론
우리가 교회에사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분명 예수 그리스도 라는 단어일 것이다.
설교에서나, 기도에서나, 찬송 중에도 이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이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기독교가 이 단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겠고, 더 나아가 이 단어가 우리의 믿음생활에 결코 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의미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물어보면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오늘 설교는 이 주제에 대한 것으로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무엇이며, 그에 대한 유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선포하려 한다.
배경
먼저 본문의 배경은 이렇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로 이동하신다.
이 지역은 당시 헤롯 대왕의 셋째 아들인 빌립이 통치하던 지역이었다.
특히 이 지역은 바알과 그리스 신으로 알려진 판 이라는 이름의 신, 그리고 로마 황제를 신처럼 숭배하던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다.
그렇다보니 빌립보 가이사랴는 자연스럽게 우상들을 조각하는 장인들과 세공업자들, 그리고 우상도매상인들이 넘쳐났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상상력을 더해보면 당시 상황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우리도 큰 시장이 열렸을 때 가보면 길 양옆으로 수많은 상인들이 자기 물건들을 팔기위해 제품들을 진열해 둔 것을 보지 않는가?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동하면서 길거리에 늘어선 수많은 우상을 팔던 상인들을 보셨을 것이다.
길 양옆으로 쭉 늘어선 온갖 기이하게 만들어진 우상들도 보셨을 것이다.
그 우상들을 사기 위하여 사람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자기 마음에 드는 우상을 집어들고 기쁘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쉴 세 없이 밀려오는 우상 제작 주문에 바쁘게 우상을 조각하는 사람들로 분주했을 것이다.
바로 이 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명확하게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뭐라고 평가하는지를 물으시고, 이제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제자들의 수장이자 대변자로서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일행들은 길거리에 즐비한 우상들을 보았다.
렘10:3-5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상들을 가리켜 말씀하시길, 그것들은 기술공이 도구를 써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며,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여 사람이 메고 다녀야 할 무능하고도 헛된 것들임을 말씀하신다.
이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복이나 화를 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왜인가? 영원부터 영원까지 오직 참되고도 바른 신은 우리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고백처럼, 눈 앞에 진열된 수많은 우상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며, 어떤 능력도 없는 우상들과는 달리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분이 아니요, 우리에게 너무나 멀리 계신 분도 아니며, 지금도 살아계시고 그분의 주권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
이러한 예수님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고백하는가?
“그리스도" 라고 고백한다.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의미한다.
구약에서 그토록 예언되어왔던 참 메시야, 참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어로 메시야, 헬라어로 그리스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예수님은 실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성령으로 한없는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모든 권세와 능력을 충만히 부여받으셨다.
예수님이야말로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참 메시야, 참 그리스도이시다.
구약에서 어떤 일을 공적으로 시작할 때 기름부음을 받던 직분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였다.
이 세 직분,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부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였다.
즉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왕이시요, 참된 제사장이시며, 참된 선지자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한다.
세 가지 직분, 왕, 제사장, 선지자이다.
왕 직분
왕은 어떠한 직분인가?
일반적으로 왕은 자기 백성들을 대적으로부터 지키고,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평안히 다스리는 자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했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잃어버린 바 되었던 자기 백성들을 찾아 다니셨다.
눈 먼자와 걷지 못하는 자, 심지어 나병환자와 같은 사회적으로 격리된 자들을 찾아 다니셨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자들을 만나셨으며, 죄인들을 회개시켜 죄에서 돌이키도록 사역을 감당하셨다.
또한 마귀의 권세에서 고통받던 자들을 치유하셨고 거센 풍랑으로 인하여 사그라들 것 같던 제자들을 지키셨고 보호하셨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왕직 수행의 절정을 보여주셨으니, 자신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심으로 택하신 백성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이 은혜는 도무지 세상의 것들로는 측량할 수가 없어서 세대와 지역과 민족과 혈통을 막론하고,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모든 이들이 이 은혜를 입기에 충분했다.
이를 통해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시는 사랑과 자비의 왕되심을 온천하에 드러내셨다.
제사장 직분
제사장은 어떤 직분인가?구약에서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택하신 백성들을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화평을 이루는 희생제사를 전담하였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던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참 제사장으로 고백하였다.
그들의 고백처럼 주님께서는 장차 시험에 빠질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모든 세대의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오랜 기간동안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사죄선언을 해주셨다.
주님은 실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그 정점이 바로 십자가였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화목제물로 올려드리셔서 단번에 우리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다.
선지자 직분
그렇다면 선지자는 어떤 직분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에 대언하던 직분이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참 선지자로 고백했다.
마태복음을 보면 주님은 산상보훈의 말씀을 전해주셨고, 천국비유나 종말비유등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전해주셨다.
우매하여 깨닫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시고, 종교지도자들이 잘못 이해했던 말씀을 교정해 주시기도 하셨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숨이 끊어지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셨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기까지 성경에 기록된 일점일획도 놓치지 않고 다 순종하시고 다 이루셨던 것이다.
지금도 그리스도 직분을 행하시는 예수님
주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제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다.
예수님만이 그들의 진정한 왕이요, 제사장이며, 선지자이심을 그들은 믿음으로 고백했다.
그리고 사도들의 신앙고백을 따라 초대교회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여전히 그리스도의 세 직분을 수행하고 계심을 그들은 확신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교회를 세워간다.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었던 그 고백을 그대로 우리도 동일하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
속으로 한번 대답해 보시라.
여러분들도 2천년 전의 예수를 지금과 앞으로도 영원히 여러분의 그리스도로 고백하시는가?
그저 습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은 하지만, 이 두 단어에 담긴 의미에 대해 마음으로 확신하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계시는가?
한번 생각해보라.
만일 그리스도께서 과거 사도들에게만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셨고 지금은 그 직분을 수행하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그들만의 그리스도이지 오늘날 우리의 그리스도는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예수는 그들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과거 기독교 역사간 택하셨던 모든 교회의 그리스도이셨고, 지금도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교회의 그리스도이시다.
왜그러한가?
베드로를 비롯하여 제자들이 고백했던 그 때에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오늘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해서 그 직분을 수행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 직분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공생애기간동안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신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기에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것인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오늘날 어떻게 그리스도의 직분을 수행하고 계시는가?
지금도 왕 직분을 행하시는 예수님
왕이신 예수님은 2천년 전 뿐만이 아니라 오늘도 왕으로서 교회를 다스리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왕으로서 다스리신다.
주님은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세우신 직분자들을 통하여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
주님께서 친히 자기 몸된 교회를 다스릴 직분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교회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방식이다.
또한 주님은 전능하신 왕으로서 사탄마귀로부터 택하신 교회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언제나 자기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하신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때로 시험과 고난을 받을 때에도 주님은 교회의 왕이 되셔서 모든 택하신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환난에서 도우신다.
고전10:13 말씀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세상의 위정자나 왕들은 아무리 선한 왕, 아무리 정직한 위정자라 할지라도 완전한 공평과 정의를 시행할 수 없다.
그들 중 대부분은 탐욕으로 물들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일하며, 공평과 정의를 굽게 만든다.
그러나 신실하신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지키시되 끝까지 책임지시는 사랑의 왕이시다.
주님은 지금도 온 우주만물 뿐만 아니라 택하신 교회를 다스리시고,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시며, 언제나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하시고, 환난이나 시험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서 예수님이 우리의 가장 좋은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지금도 제사장 직분을 행하시는 예수님
또한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지금도 그 직분을 감당하신다.
주님께서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백성들이지만, 아직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의 구속은 장차 주님 오실 날에 완성될 것인데, 그 전까지는 죄의 영향 가운데 살아가므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죄를 범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죄에 대하여 애통해하며 주님 앞에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 죄를 주님은 계속해서 용서해 주신다.
그 죄가 얼마나 심각하든, 얼마나 많든, 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들의 죄를 주님은 계속해서 용서해 주신다.
또한 주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지금도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여러분, 질문 드린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사도신경을 생각해보라.
“장사된 지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장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기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그렇다면 그 곳에서 지금 무얼 하고 계신가? 주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즉 이 자리의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신다.
롬8:34 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여러분 생각해보라.
가끔가다가 기도좀 해 달라고 기도제목을 알려주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다.
그만큼 저를 비롯한 목사님들을 신뢰하시기 때문에 개인적인 기도제목들도 알려주시는게 아닌가.
물론 그렇게 기도제목을 받을 때마다 그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나 목사가 아무리 탁월하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딱 알맞는 기도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속사정에 대해 완전히 알기 어렵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최선인지 우리도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친히 기도하신다고 말씀한다.
빌립보 가이사랴의 대로변에 늘어서있는, 살아있지도 않고 참되지도 않은 거짓 신들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사랑과 인애와 자비와 긍휼이 넘치시는 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든든한가?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소식인가?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리스도되심을,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되심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선지자 직분을 행하시는 예수님
또한 주님께서는 과거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선지자 직분을 감당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참 선지자로서 지금도 택하신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신다.
어떻게? 주님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 일을 진행하시는데,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말씀의 선포인 설교를 통해 이 일을 이루시고, 내적으로는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하여 이 일을 감당하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세우신 말씀봉사자인 목사를 통하여 그 말씀을 설교하게 하심으로,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서 주님은 선지자 직분을 지금도 행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여러분, 모든 예배의 순서들이 다 중요하지만 특별히 설교의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그 시간에 말씀을 전파하는 목사가 어떤 양복을 입었는지, 머리스타일은 어떤지, 넥타이 색은 어떤게 좋은지 이런거 평가하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말씀봉사자를 통해서 지금 교회에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시길 바란다.
세우신 목사를 통하여 지금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말씀하시는 선지자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란다.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오늘도 선지자 직분을 주님은 감당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여러분, 지금까지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직분을 과거에는 어떻게 성취하셨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어떻게 감당하고 계시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은 과거 특정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들이 고백했던 바와 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에 대한 동일한 믿음이 요구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그리고 쉽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이 고백에 담긴 의미를 다 알지도 못한 채로 마치 “a는 b이다” 라는 수학 공식처럼 습관적으로 외워왔다.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질문하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대해 여러분 뭐라고 고백하시겠는가.
교과서적인 대답 말고, 여러분들의 진실된 고백이 무엇이냐 이 말이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예수를 전능하신 왕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이 땅을 살며 잠시 잠깐의 고난 속에서 주님을 불평할 수 있는가? 비록 지금 고난의 순간을 만났지만 그럴지라도 전능하시고 사랑의 왕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이 있는데 주님을 원망하고 떠날 수 있는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의 유일한 왕이 되시며 끝까지 우리를 책임지시는 전능자가 계신데 당장의 손실과 손해로 인하여 신앙을 저버리는 일이 가능한가.
주님께서 지금도 여러분들의 삶 구석구석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 되심을 정말로 믿으시는가?
정말 믿으시는가?
주님께서 지금도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심을 정말로 믿으시는가?
주님께서 선지자로서 지금도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친히 선포하고 계심을 확신하는가?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전능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군이 주이신 예수께서 사망권세까지 이기시고 승리하셨기에 우리는 그 전능하신 날개 아래에서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제 아무리 밖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우박이 쏟아지며 비바람이 불고 땅이 진동하여도, 제 어미의 날개 아래에 거하는 새끼들이 평안함을 누리는 것처럼, 교회를 돌보시고 다스리시는 왕, 우리를 지키시고 붙드시는 분께서 전능하신 왕이시기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어려운 일이 있고, 환란을 만나고,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닌다 할지라도, 우리의 전능하신 왕은 이 모든 일들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실 분이심을 확신하라.
만군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유의 주인께서 우리의 왕이시다.
모든 문들이 들리게 하시고, 모든 존귀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온 세상의 주인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다.
그분께서는 자기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지신다.
예수님의 왕되심을 확신하며 그분의 날개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한다.
또한 예수님은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시고 지금도 그 직분을 수행하고 계시다.
예수를 완전하신 대제사장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이 자기 구원을 확신하지 못한 채로 불안해할 수 있는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데, 더 나은 기도를 받기 위하여 우상들을 찾아갈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분명하게 믿고 고백하는 자들은 또한 예수께서 완전한 대제사장되심을 믿는 자들이다.
성경은 예수를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행운이 임할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말씀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아주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말씀한다.
주님께서는 완전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한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
그것도 자신의 피, 보혈로 말이다.
그분께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려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올려드리셨기에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는 그분께서 이루신 구원이 완전하며 온전히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우리가 입은 구원의 은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루어진 것이고, 성령께서 이를 보증하시기에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은 자의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는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자비와 긍휼이 넘치시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지금도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과 위로가 되는가? 가장 나에게 필요한 기도로, 가장 정확한 기도로 아버지께 아뢰시는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힘과 위로를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완전하신 선지자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그 직분을 수행하고 계신다.
예수를 선지자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말씀을 의심하거나 믿지 못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말씀을 선포하시는 일을 무가치한 일로 여기거나 가볍게 여길 수 있을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분명하게 믿고 고백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선지자적 직분을 수행하고 계심을 믿는 자들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또한 세우신 말씀봉사자들의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은 여전히 선지자 직분을 수행하고 계신다.
교회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듯, 초대 교부였던 어거스틴을 비롯하여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변화받지 않았는가.
또한 베드로의 복음설교를 듣던 수천명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반응했던 것처럼, 얼마나 많은 회중들이 설교가의 설교를 통해 강력한 회심을 경험했던가.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선지자 직분을 수행하고 계신다.
말씀과 설교를 통하여 어린 영혼들이 죄를 깨닫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 양문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강설되고 있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변함없이 우리에게 선지자 직분을 감당하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란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교회에 말씀하신다.
그것은 개개인의 직통계시로서가 아니라, 오직 택하신 말씀봉사자를 통해서이다.
“내 양은 내 음성을 아나니..." 라고 말씀하셨다.
예배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시는 모든 양문교회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찬양/ 지존하신 주님 이름 앞에
기도하자.
주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어찌보면 그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 단어에 담긴 귀한 의미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확실해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지금도 신실하게 이 직분을 우리 가운데 감당하고 계시는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전능하신 왕이시며, 우리의 인애와 자비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선지자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고백하길 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길 원합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 왕이요 제사장이며 선지자의 직분을 수행하시되 영원까지 신실하게 감당하실 우리의 그리스도 되심을 믿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 믿음이 날로 더해져가게 하시옵고,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된 유익들을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325[예수가 함께 계시니]
< .5
.5 - .6
.6 - .7
.7 - .8
.8 - .9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