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23-36, 22. 1. 10.(월) : 소명에 올인하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

새벽설교 :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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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은 오직 예수님만을 높이며 주의 길만을 예비하는 아름다운 2인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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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분에 등단
*찬송가 : 32장 만유의 주재
*성경봉독 : 요 3:22-3:36 // 교독, 마지막 절은 합독
*설교
하나님으로 부터 소명을 받은 인생은 참 복된 인생입니다.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소명을 깨닫고 주를 위해 헌신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 정말 복되고 귀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소명된 삶이 휘청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 소명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적 가치로 희석될 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소명에 올인하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을 대조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22~24절

1.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심
제자들과 함께 유하심
시간을 함께 보내시면서 무엇을 하셨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정확히 알 수 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본질적으로 제자들과 함 께 하셨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실 때에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례를 베푸심
당시 세례를 베푸는 사람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세례요한도 있었다.
예수님 이전부터 요한은 세례를 먼저 베풀어 오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으로 부터 세례를 받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례의 창시자는 세례 요한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을 것이다.
어디서 세례를 베풀었는가?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품
요단강의 중간 부분을 에논 이라고 한다면
에논에서 북쪽에 갈릴리 바다가 있고
에논에서 남쪽에 사해가 있다.
에논의 이름은 double spring
한마디로 물이 엄청 많은 곳, 즉 세례받기에 너무 좋은 곳이었다는 말!
22절 하반절 : 사람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 했다는 말씀이 등장 : 독자로 하여금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고하고 있다. 긴장감을 가지고 본문에 요한의 액션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한다.

25~30절

그러한 긴장감이 꺼지지 않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요한의 제자 중에서 유대인과 더불어 변론을 함 : 어법상 요한의 제자 전체로 봐도 무관하다.
정결의식을 통해서 그들이 진짜 논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들이 철저히게 믿고 있었던 세례요한의 인기가 떨어지고
이제는 요단 강 저편에서 세례요한이 증언하던 예수가
요단강 저 편에서 세례를 베푸는데
사람들이 다 그쪽으로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염려인가요? 정말 세례요한을 걱정한 말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실세가 사라질까봐 걱정하는 것일까요?
올바른 소명의식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세상의 인기에 세상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어떤 삶의 풍파에도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믿음의 경주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그 소명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음을 인식하고
나 자신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받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참된 주인이시며 구원자이심을 드러나타내다 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다가 갈거냐?”
우리의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길이라면 기꺼이 그렇게 살다가 가겠습니다.

27~30절

27절, 하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을 수 있습니다.
28절, 소명을 밝힙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 “그리스도 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자일 뿐이다 이 사실을 너희는 증언해야 한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지 신랑 친구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우리의 삶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31~36절

“위로 부터 오시는 이/하늘로 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산다”
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앞서 그가 고백한 것 처럼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언어철학자 ‘비켄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언어만큼 존재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 없이 우리가 어찌 오늘까지 생명을 부지 하고 살수 있겠습니까?
성도님들의 언어가 늘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나타내닌 인생이 되길 축원합니다.
세례요한의 제자와 같은 세상과 타협하는 그릇된 소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그러니 나는 평생에 이 진리를 외치며 내 생애를 마무리 하겠다고 평생동안 고백하시면서 주님께 받은 소명을 다하시며
오직 예수님을 드러나타내는 거룩한 2인자의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소명에 올인하는 인생
세상에 올인하는 인생이 되지 않기 원합니다.
세상 실세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코드인사랑 전혀 상관 없는 인생을 산다할지라도
성령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 살다 영광스러운 주님을 다시 기쁨으로 만나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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