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1-14, 22. 1. 11.(화) :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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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오늘본문에는 물을 통해서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마리아 여인을 직접 찾아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서에서 이 ‘물’을 여러 상황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나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 우리의 참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과 관련하여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다’
특별히 3장과 4장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장: 니고데모는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갔던 사람, 사회적으로 지도계층, 지식인, 부족한 것이 없었던 그는 예수님을 찾아간다. 왜? 그는 마셔도 다시 목마른 물을 마심으로 그의 영혼은 극심한 갈증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직접 찾아간 수가성 여인은 인간 취급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 수가성 여인을 만나게 된 여정을 보면 1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제자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을 능가한다는 소식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정리를 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 집중에 있었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생각에 휘말라시기 전에 진작에 유대를 떠나셔서 다시 갈릴리로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떠나셨을까요? 오직 lost soul,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눈 팔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떠나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누구를 만나러 가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수가성여인은 니고데모와는 정반대로 예수님을 찾아올 수 없는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만사 재쳐놓고 그녀를 만나러 가십니다. 어찌보면 이 수가성 여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찾아오셔야만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존재, 그 분이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으셨더라면, 누군 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해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전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첫 표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임재하심)을 나타내셨던 그 갈릴리로 다시 가시는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에 대해 혐오감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곳으로 통념상 절대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시간이 거린다할지라도 저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꺼려했기에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통해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중해 연안으로 빙 돌아서 가든지
아니면 여리고로 내려가서, 요단 동편으로 올라가서 , 데가볼리 지역을 건너서, 다시 갈릴리로 넘어가면 갔지
절대로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사마리아 사람들이 혼열 족속인 것을 두 눈으로 바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대인들 중에서도 사마리아인과 혼열족속이 되면 사마리아 땅으로 다시 내쫓았다.
이러한 배경을 익히 잘아시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꼭 사마리아로 가셔야만 했을까요?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 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가성 여인을 꼭 만나서 영생을 얻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예수님은 원래 한 영혼을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도 그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위해서 초호화로운 호텔에 태어나지 않으시고 가장 낮은 자의 위치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또 어떤 모습으로 떠나셨낭?
이 세상에서 가장 끔직한 형벌을 받으심으로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바쁘게 살아가면서 누구를 그렇게 찾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유대인들 처럼 둘러오지 않고, 가장 빠른길로 왔는데도 수가성 여인 만날 생각으로 얼마나 열심히 오셨으면 정오가 될 시간까지 피곤하셔서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셨다고 합니다.
9절, 그 때 마침 우물에 물을 길으러 나온 수가성 여인에 물을 달라고 했더니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는데 왜 물을 달라고 하느냐?”라고 예수님께 되 물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조상 야곱도 이 우물을 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서 우물을 파는 수고를 해야 했고, 30미터 이상의 깊은 우물에서 생수를 얻기 위해 대단한 도구를 사용해야만 했는데, 예수님을 보고서 그렇게 하실 분 같이 않아보였던 모양입니다.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여인이 예수님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1.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수는 일반적인 생수가 아니었고,
2. 그녀가 믿고 있던 야곱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회의적이고 낮은 수준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제 입을 열기 시작하십니다.
이 말씀하시려고 유대에서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던 것 처럼 Born Again, Born Above라는 어려운 말을 하시지 않습니다.(하늘에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쉬운 말로 풀어서 ‘하나님의 선물(중생)’과 ㄴ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 았더라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복음을 증거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목마르게 될 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으로는 결코 채움받을 수 없는 영적 갈함을 채움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에 의해서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 임재하심으로,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총체적인 목마름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영원히!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셨던 것 처럼, 먼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깨닫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아 복음을 전할 영혼을 깨닫게하시고 영
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전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는 이 새벽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한 영혼을 위한 마음, #예수님의 먼저 찾아오심, #인생의 참된 문제를 해결하시는 영적 안목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