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하나 됨과 성장
Notes
Transcript
“교회의 하나 됨과 성장”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개신교의 교단 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것을 최근에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8년 국내 종교 현황에 대해 조사를 했는데, 국내 개신교 교단의 수가 374개인 것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천주교는 딱 1개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374개의 교단에서 믿는 분은 분명 한분이신 하나님일텐데, 우리나라의 교회가 외적으로 볼 때 이처럼 300개가 넘는 많은 모습으로 분열되고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2005년에 국내 전체 종교 비 율에서 23%로 불교가 1위, 개신교가 18%로 2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10년 뒤 2015년에는 감사하게 도 개신교가 19.7%, 불교가 15.5%로 국내에서 종교를 믿는 자들 중에서 개신교 신자가 가장 많다는 결 과가 나왔습니다. 2015년 당시 967만명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숫자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인구의 약 1/5 이 개신교가 자신의 종교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국내에만 374개 의 개신교 교단이 있는 이 한국교회가 정말로 하나되고 있는지,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성장해 가 고 있는지는 의문이 드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저 양적인 성장이 진정한 부흥이라고 여기고 몸집 불 리기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닌지, 전세계에서 가장 큰 개교회가 있는 우리나라의 모 습을 보며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 전체의 모습이 아닌지, 또한 우리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실천적인 권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선 본문의 내 용을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에 대해 강조하며 선포했었는데, 이제 그 은혜를 입 은 자들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실천적인 권면을 던져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권면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우리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 신분을 허락해 주신 자입니다. 이처럼 새 신분을 얻은 자들은 성령께서 하 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절과 3절의 말씀을 원어에 조금 더 가깝게 번역을 하자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면서, 평화의 매는 줄로 성령께서 하 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십시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 는 것’은 1절 하반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은 ‘성령의 하나 됨’을 뜻합니다. 성령께서 실현하신 하나 됨을 뜻합니다. 앞서 2장에서 하나 됨이라는 것은 본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 가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둘을 한 몸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하나 됨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한 성령 안에 서 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눈에 보이게 드러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의 메시지가 전파되며, 이
를 듣는 이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이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하나 됨 은 복음 전하는 자나, 듣는 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님을 통해 실현됩니다. 성령님은 복음을 듣 는 자가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서로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게 하십니 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하나 됨 입니다.
바울은 이런 성령의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고 촉구합니다. 우리 성경에서 ‘힘써 지키라’고 번역한 것은 명령어가 아니라 본래 부정사가 사용되어서,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라’라고 번역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여기 사용된 단어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또는 파괴하지 않 도록 지키라’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성령의 하나 됨이 실현되어서 소유 하고 있으니 이것을 잃어버리거나 파괴하지 않도록 잘 지켜나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과 능력 으로는 하나 됨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고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은 ‘평화의 매는 것’입니다. 이 평화, 평안이라는 것은 평 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효력을 가집니다. 2절에서 바울은 성령 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을 말하는데, 바로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입니다. 성도들은 서로 대립하고 분열하는 것을 피하고, ‘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면서’ 평화를 이루고, 그 평화로 성령의 하나 됨을 지켜야만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스푸다존테스’라는 단어를 사용해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은 매우 긴박한 것이며, 즉각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성령의 하나 됨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니, 성령의 인도하 심을 받으며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서 성령의 하나 됨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성령의 하나 됨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4절부터 6절의 말씀에 나타납 니다. “부르심의 한 소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같이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 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주님도 한 분이시며, 성령도 한 분이시며, 몸도 하나이며,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며, 소망도 하나이기에 교회의 하나 됨은 근본적 으로 영원하며 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우리가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 력을 다할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앞서 3장 10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교회가 온 세상 사람들과 하늘 에 있는 영적 세력들에게 만물의 통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 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 교회된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는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이와 더불 어 오늘 본문을 통해 실천적 권면을 하나 더 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교회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7절에서 바울은 “그러나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에 따라 은혜가 주어졌습니다”라고 말 합니다. 이 부분의 중심 개념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 즉 교회의 영적 성장입니다. 예수님께서 각 사 람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교회의 성장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사도들과 선지자들, 복음 전 하는 자들, 목사와 교사를 세우신 분명한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때 7절에 나타난 ‘은혜’는 죄인을 구원하는 은혜가 아니라, 교회의 성장과 봉사를 위 한 ‘은사’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주었다’라는 뜻을 가진 ‘에도켄’이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교회에 일꾼들을 ‘주셨음’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서 교회의 사역자들은 단지 교회가 세운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께 서 교회를 위해 주신 ‘선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교회에 일꾼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 목적이 12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 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교 회에 사역자들을 주신 직접적인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목표는 ‘성도들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고, 또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는 목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 니다.
12절에서 ‘온전하게 하여’라고 번역된 단어는 ‘완전한 자격을 갖게 만드는 것, 적절하게 구비시키는 것, 완전하게 갖추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역자들은 봉사의 일을 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성도 들을 구비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의 ‘봉사’라는 단어는 원래 ‘식탁 시중’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은 살든지 죽든지 다른 지체들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 다. 한스 큉이라는 신학자는 “성도들을 구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는 것은 단지 성도들이 맡은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격을 바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는 적절하게 구비된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나타냅 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입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맡은 은사에 따라 봉사의 일 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세워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각자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는 개인의 유 익을 채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다른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은 사역자들에게 가르침과 훈련을 받으면서 자 기 개인의 유익보다 다른 성도들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자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13절의 말씀은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감당해 나가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 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 지 이르리니” 교회의 일꾼들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되,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기까지, 온전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또 그리스도의 충만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역자와 성도들이 함께 도달해야 할 영적 성장의 목표가 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의 하나 됨’에 이르러야 합니다. 성도들이기에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으며 믿고 있지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알아야 하며,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믿어 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고백 을 할 때 ‘사도신경’을 통해 우리가 믿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향해야 할 영적 목표는 또한 성도들이 모두 ‘온전한 사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라는 것은 ‘완전히 성숙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14절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와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미성 숙한 영적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은 잘못된 교훈의 풍조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들은 진리 위에 굳게 서서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를 주면 같이 가자고 하면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따라가지만, 성숙한 사람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과 같 습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의 성숙한 분량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라고 번역한 것은 원어의 의미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합니 다. ‘그리스도의 충만의 성숙한 분량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조금 더 나은 번역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이 라는 것은 교회 성장의 목표로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의 성숙 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도달해야 하고, 유일한 성장 목표를 그리스도로 삼고 달려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일꾼을 주신 목적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 는 데 있으며, 또한 성도들이 영적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 게 하는데 있습니다. 영적 어린아이는 세상의 유혹과 풍조에 쉽게 넘어지지만, 성숙한 자가 되면 그런 상 황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 어린 아이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15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번역한 단어는 ‘진리를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상 ‘진리를 말하다’라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들 은 이 복음의 진리를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음의 진리를 인식할 수 있게 하려면 이 진리를 말과 함께 사랑의 삶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영적 성장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목표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마지막 날이겠지만, 성도들은 구속이 완성되는 날을 고대하며 부 단히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16절을 보시면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기 위해서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 도께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반드시 머리인 그리스도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래야만 교회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성장에 필요한 모든 자양분인 성령의 은사들, 지혜들, 능력을 그리 스도께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양제일교회를 시무하시는 홍성욱 목사님이 쓴 “교회만이 희망이다”라는 책에 나와있는 예화를 하나 소개하며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호주에 높은 파도 덕분에 젊은이들 사이에 파도타기 좋은 장소로 알려진 한 해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도가 너무 거세 종종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사고를 보다 못해 한 사람이 낡은 모터보트를 수리하여 해변 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파도타기를 하다 위험을 당한 젊은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사람에게 구조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해변가에 작은 움막을 짓고 그 안에서 바다를 응시했습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이 사람의 선행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을 돕겠다는 사람과 돈이 몰려들어 오기 시작 했고 초라한 움막은 현대식 건물로, 구조 장비는 최신식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정치인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이 구조한 젊은이들의 부모와 형제들, 친구들이 감사 인사차 그곳을 방문했 습니다.
간단한 수영복만 입고 있었던 사람은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 복장을 갖추어야 했고, 오는 이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식당을 만들었고, 먼 곳에서 오는 이들을 위해 숙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라했던 움막은 현대식 건물의 해변종합클럽이 되었습니다.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자신이 왜 이 일을 시 작했으며, 자신이 죽어가는 생명을 어떻게 구조했는가를 설명하기에 바빴습니다. 이 사람은 온종일 사람 들과 만나 식사하고, 기념사진을 찍으며 시설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 사람은 어느 날부터인가 더 이상 사람들을 구조할 수 없었습니다. 바다를 쳐다보았던 사람이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는 바람에 그 순 간에도 해변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영혼구원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겉치장에만 집중하는 작금의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래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로 그리스도로부터 양분을 공급받 아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적 성장의 목표로 삼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몸집 불리기에 바쁩니다. 온갖 행사와 돈으로 사람을 불러 모아, 복음이 없는 그저 허울뿐인 교회로 몸집 불리기에 바쁜 것입니다. 2015년 당 시 한국인의 5명 중 1명꼴로 예수를 믿는다고 말했다는데, 과연 이들 모두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 자 들인지, 그리스도를 내 삶의 성장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자가 얼마나 있었는지 염려되는 것이 요즘 한국교 회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 권면한 사도 바울의 편지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리고 한국교회에게도 강력한 권면 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들을 지키고 있는지, 원어의 본래 의미처 럼 ‘온갖 노력을 다해가며’ 지키기를 다짐하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의 성장의 목표가 어디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성장의 목표가 그저 교회 몸집불리기에 있는 교회들이 여전히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된 교회의 성장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고,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몸된 교회 전체가 자라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성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머 리이신 그리스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들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안의 매는 줄을 가지고 사랑과 오래참음과 겸손과 온유로 서로 용납하며 성령께서 하 나되게 하신 것들을 힘써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강단에서 매주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 도로부터 온전한 양분을 공급받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아니라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써 세상 풍 조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건히 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우리 자신 이 되며 또한 우리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는 우리 대구청구교회 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