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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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시간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저는 뉴스를 많이 보지 않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뉴스를 볼 때면 자주 접하는 뉴스가 있습니다. 바로 존속 범죄에 관한 뉴스들입니다. 지난 화요일에도 대전에서 30대 자녀가 부모를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 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무시하고, 심지어 마치 불필요한 짐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 가운데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부모를 향한 자녀의 어떤 행동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사 랑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모습이지만, 생후 7개월 된 아이를 방치한채 술 마시고 게임을 하다가 아이가 사망했다는 뉴스도 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 대한 규칙을 성경 말씀에 분명히 기록해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 할 규칙을 말씀해 주셨고, 오늘 본문에서는 자녀와 부모가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타난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 대한 율법은 에베소서에 와서야 기록된 것이 아니라 모세오경과 이후의 여러 말씀을 통해서도 계속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우리에 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잘 아시는 십계명의 제 5계명에도 기록되어 있을만큼 자녀와 부모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고도 명확합니다. 이시간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말씀 대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녀’ 라는 단어는 나이가 어린 자녀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자녀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나이가 어리든 성인이 된 자녀이든 자녀라면 그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종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로서 의 순종을 가리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양육을 하고 양육을 받는 관계이고 보살피고 보살핌을 받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양육을 받고 보살핌을 받는 자녀들은 마땅히 양육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부모에게 순 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가 부모의 모든 말에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부모가 시험기간에는 교회에 나가 지 말고 공부하라고 말할 때 그 말에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사업가 집안에서 부모가 이럴 땐 로비도 좀 하 고 이런 건 관행상 돈을 더 남겨도 된다고 하는 말에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 는 것이 자녀가 마땅히 행해야 할 순종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성경에서 예수님을 ‘주’라고 표현을 하 는데 여기서 ‘주’라는 것은 ‘주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예수님의 주인 되심을 강 조하는 표현입니다. 세상은 흑암의 권세가 다스리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흑암의 권세에서 벗 어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진 자들이며,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주 안에서” 가 말하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그 리스도인 가정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그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자기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예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기 에 부모가 잘못된 교훈으로 가르칠 때는 그것에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 예수님께 순종해야 만 합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그 이유가 1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1절 하반절에는 번역하지 않은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이라는 단어인데, 본문의 “이것이 옳으니라”라는 말 앞에 있습니다. 1절을 이 단어까지 포함해서 읽어 보자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왜냐하 면 이것이 옳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처럼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기독교 뿐만 아니 라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종교 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이든 기본적으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자녀가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이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적 본성에 속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의 한 부분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단순히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근 거해서 자녀의 순종이 옳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주 안에서 자기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은 이유는 그것이 주님 앞에서 합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의 주인되신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을 기뻐 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2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녀의 순종을 강조하기 위해서 출애굽기 20장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습 니다. 십계명의 제 5계명의 부분인데 이를 인용하여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복이 따른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가정을 세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세우시고 부모에게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는 책임과 함께 자녀를 가르치 고 지도하는 권세를 위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각 사람들은 부모를 경외하라고 명 령하시고, 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특별한 약속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들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종종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수는 있을지라도 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 은 그렇지 않는 자녀들보다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분명하게 약속하 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자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심과 동시에 이를 어기는 자에 게도 경고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셨습니다. 레위기 20장에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가 나열되어 있는데, 9절 말씀에는 만약 누가 자기의 부모를 저주한다면 그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21장 18 절부터 21절까지는 패역한 아들에게 내릴 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 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 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은 당시 재판이 이루어졌던 성문 앞에 끌고 가서 돌로 쳐 죽임을 받게 하여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고 봄을 통해 다시 금 올바로 지키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질서를 따라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준 엄하고도 확고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효도를 잘 해서 부모님께 좋은 선물을 사드리고, 해외 여행을 보내 드리고 이런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 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잠언 23장 22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 경하는 것인지 상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청종하며 어머니를 경히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를 즐겁게 하며 어머니를 기쁘 게 해야 합니다. 음녀나 이방 여인을 쫓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술을 찾거나 즐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잠언이 말하는 부모 공경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모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경히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는, 교회에 와서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의 모습을 보이면서, 정작 가 족들에게는, 특히 자녀가 부모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부모 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고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우리는 부모님의 기쁨이 되 어야 합니다. 마음을 부모님께 드림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자녀들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얼마나 부모님의 말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고 또 공경하는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 보시길 바랍 니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주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았는지, 내가 정말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 았는지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가까이 살면서 얼마나 자주 찾아 뵈었는지, 혹 멀리 계신 부모님께 얼마 나 자주 안부 전화를 통해서 안부를 물으며 부모님의 기쁨이 되었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 다. 이전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 보며 오늘 말씀을 기억하여서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공경하는 삶을 살아가셔서 모두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 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 자녀만 부모에게 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 역시 자녀에 대해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서 부모에게 하는 권면에서 특별히 아비 들 즉 아버지라고 말한데는 당시 사회 문화의 영향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자녀 교육의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모가 아닌 아버지에게 이런 권면을 주었지만 지금 우리의 문화를 비추어 볼 때 이는 아버지에게만 주는 그런 권면이 아니라 부모 모두에게 주는 권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쓰여진 당시에는 가정에서 가장의 권한은 강했습니다. 특별히 자녀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 사회에서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서 절대적인 권세를 휘둘렀 습니다. 만약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 자녀가 태어났다면 그를 죽일 수 있었고, 원하지 않는 딸이 태어나면 그를 버리거나 노예로 팔 수도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도 그 권한은 강해서 그를 때리고 감옥에 가둘 수도 있었고, 심지어 죽일 수 있는 권한이 가장에게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자녀들은 부
모에게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접받기 힘들었고, 부모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있다보니 자녀는 아무리 부모에게 화가 나더라도 그 화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자기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4절 말씀을 읽는다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 수 있는데, 당시 가장들에게 있 어서 이 권면은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다른 삶의 원리와 방식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자녀가 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자녀들을 하나님의 관점으 로 바라보고, 자녀들과의 관계를 주 안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말을 오늘 본문이 하고 있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더이상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존 재임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존재를 올바로 인식하고 자녀의 인격과 감정,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더이상 자녀들을 화나게 할 수 있는 모든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며, 권위를 남용하고, 지나친 요구나 지나 친 잔소리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모들은 이런 모습을 벗어버리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교훈’이라는 단어는 바로잡음, 훈련, 훈육을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훈계’는 ‘책망’이나 ‘훈계’를 의미하며 말 로 교육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교훈과 훈계는 주의 교훈과 주의 훈계라고 바 울은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속한 교훈, 예수님께 기뻐하시는 훈계를 의미합니다. 즉 부모들은 자녀들 을 예수님께 속하거나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훈육과 훈계의 방식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교육하는 자기 나름의 방식이나 철학들이 있습니다. 나는 특별히 그런것이 없 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모두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자녀를 교육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유명한 교육학자 의 방식을 따라서 자녀를 교육시키기도 합니다. 온갖 사교육과 입시 코디네이터를 붙여서까지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부모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부모나 어떤 교육 학자나 세상의 방법 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과 원리대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말씀합니 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은 어떤 방법이겠습니까? 다른 누구의 모습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 의 모습을 본 받는 것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 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 니다. 심지어 고난 가운데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제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해 친히 생선을 굽고 아침 밥 을 준비하셨고, 그들에게 다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들을 우리 부모들이 닮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지 그 덕목이 모두 예수님의 모습 가운데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관습이 무엇이든지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를 양육할 때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 을 가지고 자녀를 끝까지 사랑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한다는 것은 부모 자신의 의사와 목표에 따라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목표에 맞게 양육하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모두 자녀가 자신 의 자녀이기 이전에 주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기 자녀 들이 부모의 뜻에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주님을 알고 주님께 순종하도록, 그 리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녀들을 주님의 뜻과 기준에 맞게 양육하려면 반드시 훈련과 훈계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운동선수라고 할지라도 훈련이 없다면 좋은 운동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훈련 없이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 에 합당한 가치와 원리에 따라 살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할때는 잘못을 분명히 가르 치고 고칠 수 있도록 훈계해야 합니다. 요즘은 자녀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해서 잘 훈육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혹은 크면 다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하고 어릴 때는 자유롭게 잘 성장하도록 내버 려 두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수천년 전에 쓰여 진 것이니 현대의 많은 심리학자들이 알아낸 자녀 양육의 방법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또 내가 이성적으로 고민해 본 방법과 다르고 고지식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따르지 않는 것은 매우 무지한 생각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서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주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22장 6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땅히 행할 길, 즉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에게 가르치면 아이가 장성하여 늙더라도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삶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하 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우리 속담 중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이 잠언 22장 6절의 말씀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 아간다면 늙어서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는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의 아들들 역시 제사장의 직분 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행실이 매우 나빴습니다. 하나님의 제물에 손을 대고, 심지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하는 등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 날에 두 아들이 모두 죽는 비극을 엘리 제사장이 겪게 되었습니다. 만약 엘리 제사장이 어려서부터 자녀를 하나님 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났겠습니까. 성경을 통해 드러난 엘리의 모습을 볼 때 그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처럼 보여지기에, 자신의 자녀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이런 비참함으로 그에게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을 주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주의 훈련과 훈계로 양육 해야 하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부모가 먼저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와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 역시 세상적인 방법으 로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경쟁에서 남들을 이기고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그들과 달라야하지 않겠습니까.
왜 하나님은 왜 교회에서는 왜 성경은 나에게만 이런 말씀들을 강요하냐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자녀도 성공했으면 좋겠고, 내 자녀도 돈 많이 벌어서 힘들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내 자 녀도 좋은 직장에 다녀서 안정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왜 이런 것들을 우리가 바라면 안되냐고 원망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이 내 자녀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어쩌면 모든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한편으로는 세상의 기준에서 잘 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 돈 잘 벌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좋은 스펙을 쌓아서 잘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5계명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말씀에는 오늘 본문의 3절에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 되고, 주 너의 하나님이 네게 준 좋은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그들을 공경하는 자녀에게는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모든 자녀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우리의 삶에서 나의 부모님, 나의 자녀들에 게서 나타나는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모님이 계신 모든 자녀 된 성도님들은 주 예수님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을 공경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고, 이것을 지킬 때 감사 하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까지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이런 복까지 내려주시니 우리가 감사함을 가지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그리 고 자녀를 양육하시는 모든 부모 된 성도 여러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시고 오직 주 예수님의 교훈과 훈 계로 자녀를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내 뜻과 내 방식대로 양육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쳐 오르고, 왜 그렇게 자녀를 키우냐고 세상이 손가락질 한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우리 모든 대구청구교회 성도님들의 가정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올바로 세워지며, 세 상이 감히 따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 세상을 살아내는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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