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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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내용”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 시간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기도를 하실 때 어떤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기도를 하십니까? 보통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많이 아룁니다. 나의 필요들과 나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며 기도합 니다. 내 개인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자녀의 진로와 건강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실 것입니다. 물 론 이런 기도들 역시 우리가 기도해야 할 중요한 기도의 제목들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타나는 기도의 모 범들은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 을 위해 하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며, 또한 그 기도를 능히 이루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세가지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16절 말씀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 시오며”라고 말합니다. ‘속사람’이라는 말은 바울서신에만 나오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속사람’이라고 말하 면 그리스도인이 회심할 때 입는 ‘새 사람’이라고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속사람’이라는 말 은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부분, 즉 마음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새 사람’이라는 것은 성령으로 새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존재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고, ‘속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이나 심령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은 성도들의 마음이 강건하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사랑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마음이 강건해져야 했습니다. 도덕적으로 문란한 이방 사회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또한 악한 영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도 마음 이 강건해 져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며, 우유부단하여 죄의 유혹 에 쉽게 굴복하고, 시험과 고난이 닥쳐올 때 쉽게 무너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 히 세워나갈 수 없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강건하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마음을 강건하게 하실 것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큰 능력으로 자기 백성의 마음을 강건하 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성도들의 마음과 눈을 밝혀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성도들의 마음을 강건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 40절과 41절의 말씀에는 사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대적들 앞에서도 담대히 예수님의 부활 을 증언했으며, 예수의 이름 때문에 채찍질 당하고 능욕을 당하여도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령님 은 성도들을 내적으로 강건하게 하셔서 복음의 진리를 담대히 전하게 하시고, 모든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오래 참게 도우십니다. 또한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하시며 박해와 고통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건히 지키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이와 더불어 17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달라고 간구합 니다. 바울이 간구하는 것은 성도들이 회심할 때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내주가 아니라, 믿는 자와 함께하시 는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함께 하심을 가키립니다. 바울은 여기서 ‘카토이케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일시 적인 체류가 아니라 한곳에 정착하여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것, 또는 오랜 기간 거주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속적으로 거주하시는 곳은 바로 성도들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사람의 인격, 생각, 의 지, 감정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거주하신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 중심에 계시 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내주는 믿음을 통해 가능하 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변함없이 그분을 신뢰하 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마음을 거처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 을 통해 속사람이 강건해 지고,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면, 그 결과로 성도들이 사랑 안에 뿌리 를 내리고 견고해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18절과 19절에서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 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 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많은 주석가들은 이것이 그리스 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수사적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존 스토트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인류를 포함할 정도로 충분히 넓고, 영원토록 계속될 만큼 충분히 길며, 가장 타락한 죄인에게도 도달할 만큼 충분히 깊 으며, 그를 하늘로 올릴 만큼 충분히 높다고 말합니다. 즉 바울은 이 기도를 통해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 이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도록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8절에서 우리 성경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라고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조금 틀린 번 역입니다. ‘넘치는’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뛰어넘는’, ‘초월하는’을 뜻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기 에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바른 번역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극히 크고 위대해서 아무도 그것을 완전히 알 수 없음을 뜻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 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이 있어야만 비로소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을 수 있기 때 문입니다.
사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도록 바울이 간구하는 목적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 을 사랑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없고, 진정한 성숙에도 이를 수 없기에 바울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 기를 간절히 구한 것입니다.

세번째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정도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이 기도는 세번째 간구이면서 동시에 전체 기도의 절정과도 같은 부분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정도까지 충만해지는 것 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어상에서 19절의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라는 말 앞에는 ‘에이스’라는 전치사가 붙어있는데 이는 목표 를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즉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정도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생명, 능력을 포함한 하나님의 완전함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선물과 은혜의 풍성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정 도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바울의 간구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의 모든 부요함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함의 수준까지 이르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서 4장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충만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개념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 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경지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보다 더 대담한 기도는 없을 것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존재의 경지에 이를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과 지혜가 우 리에게 한없이 부어진다 한들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될수는 없습니다. 바 울이 이처럼 대담한 간구를 한 이유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고 그 신분에 합당 한 삶을 살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참모습을 주변 세계에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 성도들은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이 영적 성장의 기준과 목표를 바로 하나님으 로 잡고, 하나님의 충만의 정도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본문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 실 이’시기 때문입니다.
20절에서 ‘더 넘치도록’이라고 표현된 단어는 최상급의 표현으로서 ‘한량없이 많이’나 ‘훨씬 더 풍성하게’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무한한 사랑 과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무한히 사랑하시기에 그들이 합당한 것을 구할 때 구한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주기를 원하시며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제 송구영신예배의 말씀 을 통해 들었던 것처럼 ‘엘샤다이’의 하나님이시기에, ‘전능한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그분께 합당한 것을 구할 때, 우리가 구한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주실 수 있으시며, 훨씬 더 풍성히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기도에 대한 기적과 같은 이야기를 보았는데 잠시 나누기 원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 들이 먹을 수 있을만큼만 재료들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냐고 주인이 물으니, 남편이 전쟁통 에 죽어서 기도 밖에는 드릴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당신의 기도제목을 써서 자신에게 주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내주겠다고 말합니다. 주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될것을 종이에다가 기도제목을 써서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다고 주인이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 부인이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주면서 ‘우리 아이가 지난 밤에 아파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제목을 적었다’며 대답합니다. 주인은 귀찮았는지 기도 를 읽어보지도 않은채 오래된 저울 위에 기도제목이 적힌 종이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빵을 하나 들어 서 저울에 올렸는데 이 저울이 꼼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식료품들을 올려도 저울이 움직이지 않자 주인은 당황했습니다. 저울에 공간이 없게 될만큼 식료품을 올려도 저울이 움직이지 않자 봉투를 주며 알 아서 담아가라고 주인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부인이 돌아갔고, 주인은 나중에서야 이 저울이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주인은 이 일이 있은 후 몇년동안 종종 이 일을 생각하며 의아해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정말 우연의 일 치인가. 왜 그 부인은 기도제목을 미리 써왔던 걸까. 왜 하필 그 부인은 저울이 고장났을 때 가게를 방문했 던 걸까. 그 부인의 기도제목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였다고 합니다.
이런 기적과 같은 기도의 응답들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이처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 시고 우리의 기도에 대해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성도의 기도에 훨씬 더 풍성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사랑 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능히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바울이 간구한 기도 내용의 세가지 부분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잘 이루어 지고 있는지 우리의 영적 상태를 되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속사람이 얼마나 강건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강건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영적 무기력입니다. 영 적으로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지 않는 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 실천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연약함으로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며, 우리를 얽메고 있는 죄의 사슬을 단호하게 끊어버리지 못합니다. 죄의 유혹이 다가올 때 ‘cut’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원래 연약한 존재라서 쉽게 실패하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기에 다 용서해 주실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이런 삶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속사람의 상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 속사람은 강건하며 영적승 리의 삶을 간구하고 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사람을 능히 강건하게 하시 는 분이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알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바 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반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 고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관계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그분으로 기뻐하는 삶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커 다란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교회 안에서 쓸데 없는 것들에 시간과 에 너지를 허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은 물질과 명예와 자기 영 광을 구하는 일에 몰두합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에서 만족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고 그 사랑의 지식으로 충만하게 채워진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잘아시는 찬송의 고백처럼 구주를 생각만 해도 우리 안에 기쁨이 넘쳐나고, 그리스도 한 분만으 로도 우리는 만족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정도까지 충만해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또 간구해야 합 니다.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 다. “우리를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정도까지 충만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 서 건져 주신 목적은 단지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천당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 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 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바울의 간구의 내용들이 이루어지기를 우리도 간절히 간구하시기 바랍 니다. 또한 이 내용들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들이 그저 우리의 유익이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이 강건하여 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의 정도까지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는 그런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 여서 우리의 삶이 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 심까지 우리도 이르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현실적이지 않은 것 같고, 이런 말들은 성경에나 적힌 것이지 내 삶에는 이루어지지 않 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을 훨씬 더 풍성하게 이루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샤다이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 것들을 기대하며 우리의 기도의 내용들이 바뀌어져 가며, 내 삶의 모습들을 점검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 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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