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본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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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본받는 자”라는 제목으로 이시간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유럽이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길지는 않지만 한국 교회사를 둘러보면 훌륭 한 분들이 많이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의 사역을 되돌아보기 위한 사업회 같은 것 들을 통해 이분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 도산 안 창호 선생 등 여러 인물들을 위한 기념사업회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분들이 걸어갔 던 발자취는 우리나라의 큰 자원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이분들을 기념하고 또 이들의 발자취를 후대에 가르치는 것은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긍지를 느끼고 이들과 같은 삶을 본받게 하기 위 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분들의 삶을 본받아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당장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 을 생각해봐도 우리가 그 삶을 분명히 알지만 그분의 삶을 본받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그 원수같은 자가 사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를 살리고자 탄원서를 넣고 그를 양 자로 삼아 함께 살아간 손양원 목사님의 삶조차 우리는 본받기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자녀, 내 손주들이 조금만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어도 참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스스로 되돌아 볼 때 이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요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이런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할 자격이 있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은 결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 았습니다. 본문 5장 1절의 말씀은 누가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본문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시 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옛 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엡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음을 통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방법에 대해 본문 25절 이하에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린다”는 것은 구원 받은 성도라면 옛 사람에 속한 모든 행위들도 함께 벗어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구원받은 성도들이라 하더라도 그 즉시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을 입는 완전한 존재 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죄 와 사망의 종노릇하던 이전의 생활을 다 청산하고 의와 거룩함의 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옛 사람의 본성과 행위가 남아 있어서 죄의 유혹에 빠지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 는 새 사람이지만 아직 완성된 새 사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옛 사람의 본성과 행위를 벗어 버림으로써 마땅히 되어야 할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어서 이 런 모습을 갖추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말합니다.
거짓을 벗어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새 사람을 입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웃과 더불어서 진실을 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한 ‘동료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 다. 구원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의 한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한 몸으로서 서로 진실을 말해야만 합니 다. 이 ‘진실을 말하는 것’은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신뢰 하고 믿으며 진실을 말할 때 공동체는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불신이 가득하고 거짓만이 오간다면 결국 그 공동체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분’이라는 것, 즉 ‘화’는 성도들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깨뜨리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옵니 다. 성도들은 옛 사람을 벗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자존 심이 상하거나 또 손해를 입게 되면 화를 냅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내는 화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의한 일들을 보고 들을 때 분노하는 것은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에게 바람직한 것이고, 또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뜻이 꺾이거나 방해하는 일로 인해서 감정적으로 내는 화는 다른 사람을 응징하려는 마음, 분풀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잘못 된 것입니다. 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화는 미움이나 증오심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약 1:19-20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이 말씀처럼 우리는 화 내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화를 내더라도 속히 풀어야 합니다. 해가 지도록 화를 품고 있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틈’이라는 것은 ‘기 회’라는 단어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즉 성도들이 화를 내고 풀지 않게 되면, 마귀는 그것을 개인의 삶이나 공동체 안에 싸움을 일으키는 ‘기회’로 사용하게 됩니다. 마귀는 이 화를 이용해서 성도들 사이에 미움과 증오심을 증폭시키고 서로 다투게 하여서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기회로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귀에게 아예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화를 냈다고 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풀어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계속해서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도둑질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28절에서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라고 번역된 말은 “더는 도둑질하지 말라”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금지 를 뜻하는 현재 명령형이 사용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동작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에 베소 교회 성도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도 도둑질을 계속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학자 어네스트 베스트는 이 말씀이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당 시 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이때는 일자리도 부족했고 임금도 굉장히 낮았습니다. 그리고 이들 을 위한 사회복지 제도는 없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으니 일용직 노동자들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일터나 다른 곳에서 도둑질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 중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리 그 삶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도둑질 하지 않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은 새 사람을 입은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 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도둑질하지 말고 도리어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이 요청은 앞서 2장 10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선한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가리킵니다. 남의 물건을 탈취함으로 해를 끼치는 것 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일하여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수없이 강조되었던 ‘고 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선대하라’는 말씀은 구약 시대 성도들 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 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자신도 일자리가 없거나 수입이 변변찮아 가난하더라도,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써 일하여 자신의 가족을 부양 하고,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그 모습으로까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새 사람을 입은 자는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엡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구원받은 성도들은 ‘악한 말’, ‘더러운 말’, ‘불건전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 하는 모든 종류의 불평을 포함하여 음란한 말, 비웃는 말, 냉소적인 말, 비꼬는 말 등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은 성도들의 공 동체인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다른 성도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악한 말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선한 말을 해 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은혜를 끼친다’는 말은 ‘영적으로 유익한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는 말, 실의에 빠진 사람을 격려하는 말, 불확실한 상황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지혜로운 말을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영적 유익을 주고 그들을 세 우는 말이 선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 12:18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이 잠언의 말씀을 우리가 항상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악한 말이 아니라, 다른 사 람을 도와주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선한 말을 하는 자의 모습을 갖춰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 성경에서 ‘근심하다’라고 번역된 말은 ‘괴롭히다’, ‘슬프게 하다’, ‘몹시 슬프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슬퍼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성 령님께서 슬퍼하시는 것입니까? 원어에서 30절 맨 앞에는 ‘그리고’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25 절부터 29절까지 나온 옛 사람의 모습으로 인해 성령님께서 슬퍼하신다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고, 화를 내며, 도둑질하고, 악한 말을 하는 그 모든 행위가 성령님을 슬프게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된 이후에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여전히 이런 옛 사람의 모습을 보일 때마다 성령님 이 슬퍼하며 애통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슬프게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침을 받았기 때 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구별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성령님을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도장을 찍어 두셨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하게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은 미래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이루어지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감으로 성령을 기쁘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우리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엡 4:31-32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 같이 하라
31절에는 여러가지 옛 사람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악독’은 화해를 거부하는 ‘몹시 강한 분노나 증오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노함’은 ‘밖으로 분출하는 격렬한 분노’를, ‘분냄’은 ‘화가 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떠드 는 것’은 ‘고함을 치는 것’을 뜻하는데, 서로 고함을 치고 말다툼을 벌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모습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악한 모습들, 옛 사람의 모습들 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 사람에게 어울리는 덕목들을 취해야 합니다. 서로 친절히 대하며, 불쌍히 여기고,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자하게 대해 주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친절함으로 인자하게 여
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를 향해 자비를 베 풀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보시고도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 다.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새 사람을 입은 성도들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방 식이며,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교회를 세워나가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25절부터 32절까지의 본문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 6가지의 모습을 갖춰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라. 화내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선한 말을 하라.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라. 서로 용서하라. 이 권면들 가운데 스스로를 돌아보시면 분명히 내가 약한 부분 들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약한 부분을 강하게 단련시키고, 하나님을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 다. 또한 특별히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힘써 실천해야 할 것이 있다면, 거짓을 벗어 버리고 이웃과 더불 어 진실을 말하라는 권면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거짓과 부정 앞에 서게 되고, 우리 자신 또 한 이런 죄들을 짓기도 합니다.
19세기 중반에 조선에서 22년간 선교하다가 순교한 프랑스의 가톨릭 주교 앙투완 다블뤼는 조선인들은 지독한 거짓말쟁이들이라서 아무리 조심해도 그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19세기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가들과 위정자들, 기업가들, 그리고 시민들까지 입 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짜 뉴스’까지 떠돌며 나라를 혼란스럽 게 하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서 팔고, 먹지 못할 음식을 급식소에 제공하고, 물건 값을 속여서 판매하는 등 다 말할 수도 없을만큼 많은 거짓과 속임수들이 이 사회에 난무하고 있습니 다.
이처럼 거짓과 불신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보니 그리스도인들마저 거짓에 물들기 쉽습니다. 타의 에 의해 정말 어쩔 수 없이 남을 속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고, 경제적 손실을 보지 않기 위 해서 적극적으로 남을 속이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세금 적게 내려고 사업장에서 허위로 장부 를 조작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짓이 팽배한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하는 것은 분명 힘겨운 일입니다. 교회에 있는 저 나 목사님들이 이런 상황을 잘 모르시니까 쉽게 말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우리 대구청구교회 성도 여러분 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거짓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같이 남을 속이고 내 이익을 취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새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본받는 자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악하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 내 앞에 직면한 모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 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거짓말하지 않는 삶,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 는 삶, 손가락질 당하고 무시당하며 심지어 직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말 씀에 순종하기로 다짐하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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