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3장 1-37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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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요시아 왕이 행던 행적들을 살펴 봅시다. 1절 부터 보시면 사람들을 보내어서 유다의 모든 장로들 즉 어른들과 리더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아옵니다. 그는 백성들과 함께 여호아의 성전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읽었던 율법책의 내용들을 백성들에게 읽어줍니다. 또한 3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함께 지킬것을 그의 백성들과 함께 언약을 합니다.
4절 이하에는 성전안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 하늘의 별을 섬기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모든 기구들과 물건들을 성전 밖으로 나르게 하고 기드론 골짜기 에서 이것들을 모두 불태우게 합니다. 5절에는 산당에서 분향하려고 세운 제사장들을 모두 쫓아 버립니다.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버렸습니다.
6절에는 아세라 목상을 모두 불태워 공동묘지 위에 뿌렸습니다. 7절에는 성전에 있던 남창의 집을 깨긋히 정리합니다. 이 집은 여인들이 아세라 숭배에 쓰이는 천을 짜는 집이었습니다.
8절 -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부터 제사장을 철수 시킵니다. - 산당에서 이런 임무를 감당하던 제사장들을 모두 철수 시킵니다. 이들은 성전의 제사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들이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은 제사장들과 나누어 먹게 했습니다. - 그들의 신분에는 제한을 두었지만, 백성으로는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16절의 내용은 열왕기상 13장 1-32절까지의 내용과 연관이 있습니다.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1)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여로보암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보내졌습니다(1절). 유다에서 올라온 한 선지자가 악한 길에서 그를 돌이키게 하기 위해 보내졌습니다. 그것도 그가 우상에게 드리는 제사의 때맞춰서 그가 그의 제단에서 분향하고 있을 때에 보내졌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들이 돌이켜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제단에 대해서 예언된 것이 나옵니다. 때가 되면 다윗의 그 제단에 대해서 예언된 것은 때가 되면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한 왕이 나서, 그 제단에서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제물로 드리고 사람의 뼈를 불살라 그 제단을 훼파하리라는 것이었다(2절). 선포된 메시지는 엄청난 선언이었습니다. 사물을 향해서 선포를 합니다. – 요시아라는 왕은 356년에 태어날 일을 예언합니다. (열왕기하 23장 15-20절) 이것이 350년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 하나님의 사람의 이야기가 그대로 임했다고 선언합니다. (16절 후반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그가 이루실 사실에 기반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봅시다. –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입니다. 그 죽은 사람들이 본 것입니다. 18절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350년이 지나도 사실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3절을 이제 봅시다. 재가 쏟아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재가 땅에 쏟아집니다. 이것은 신성 모독 죄 입니다. 여로보암 왕이 벧엘과 단에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신성 모독 죄에 해당 된다는 것입니다.
4절 – 손을 내밀어 선지자를 잡으라고 합니다. 그때 손이 마비가 됩니다. 5절 읽어봅시다. 재가 갈라지고 쏟아집니다. 말씀이 사실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6절 읽어봅시다. 여로보암의 하나님이 아니라 신앙이 끝나버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전과 같이 고쳐졌습니다. 고쳐진 이유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33절 -34절 악한 길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멸망하게 됩니다. 모든 대가 끊어짐의 멸망을 받습니다.
1)그가 봉헌한 제단이 더렵혀지리라는 것.
2)그가 세운 산당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공의의 제물이 되어지리라는 것.
3)이 일이 '다윗의 집'에서 난 자에 의해 되어 지리라는 것. 이 예언이 성취된 것은 그 후 약 356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있을 확실한 것으로 선포되었다.
(3) 이 예언의 진실함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징조가 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단이 갈라지며 희생 제물의 재가 쏟아지리라는 것이었다(3절). 그 징조는 즉시 일어났다(5절).
(4) 하나님의 사람을 잡거나 혹은 치려고 뻗었던 여로보암의 손이 말라 버렸다(4절).
(5) 갑자기 말라 버린 그의 손이 그의 순종으로 그 자리에서 치유되었다(6절).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양심을 건드렸을 때 겸허해지지 않았던 그는 그 말씀이 그의 뻐와 살에 닿자 교만한 마음이 꺽이고 말았다. 그는 이제 도움을 청하게 된다.
(6)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친절한 초대를 거절하였다. 이 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1)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자가 벧엘에서 먹거나 마시는 것을 금하셨다(9장). 이는 그들의 저주스런 우상 숭배와 배교를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다.
2)여로보암은 자기의 손이 치유되자 몹시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 선지자에게 기꺼이 자신의 감사를 나타내고자 했으며 그의 기도의 대가를 지불하고자 했던 것이다(7절).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가족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거부합니다. –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 우상 숭배의 삶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다른 길로 돌아갑니다. (중요한 퍼포먼스입니다)
Ⅱ. 한 늙은 선지자의 미혹 13:11-22
장소가 벧엘로 바뀌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의 출발지와 회복의 상징입니다. 자비 은혜 긍휼의 집이 벧엘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나이가 많아서 늙은 것이 아니라 선지자 노릇을 한지가 오래 해먹은 사람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우상숭배의 현장입니다. 이늙은 선지자의 이미지는 타협하고, 타락한 선지자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로보암에게도 속지 않던 그가 늙은 선지자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1) 늙은 선지자의 사악함(11-18절) : 아들들에게 그가 어느길로 갔는지 물어봅니다. 아들들에게 묻습니다. 그 선지자가 가는 길을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1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사람이 간 길을 보았습니다. 다른 길로 돌아간 길을 본 것입니다. 13절 읽어봅시다.
14절을 읽어봅시다. –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갑니다. 상수리 나무 아래서 유다의 선지자와 북이스라엘의 만남을 합니다. 늙은 선지자가 제안을 하나 합니다. (15절)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자고 합니다.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십시오) 나는 그대와 집으로 들어가지도 돌아가지도 떡도 물도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유는 17절입니다. –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길을 보내신 부탁 때문에 거절합니다.
이제부터 어려워 집니다. 18절에 보시면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다.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르기를 –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무것도 먹지말고 다른길로 가라고 합니다. 천사를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길 떡도 먹이고 물도 먹이라고 합니다. 둘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야기 합니다. – 성경에서는 18절에 판정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속입니다.
19절을 읽어봅시다. –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속은 것인지 속아 준 것인지 봅시다. 20절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임합니다. 21절에 그의 입을 통한 선언입니다. - 22절입니다.
유인한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선언합니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은 집을 떠나 먼곳에서 죽임을 당할 것을 예고하는 말입니다. 23절에 나귀를 타고 돌아갑니다. 24절을 봅시다. 나귀를 타고 가다가 사자를 만나서 찟겨 죽습니다. 나귀는 죽이지 않고 사자는 시체 옆에 서 있습니다. 나귀와 사자가 시체를 지키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25절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늙은 선지자에게 보고합니다. 늙은 선지자는 죽은 사람이 누군지 압니다. 27절을 봅시다.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그곳을 갑니다.
28절을 봅시다. 나귀와 사자는 그 옆에 서 있고, 사자는 먹지도 않고 나귀는 찢기지도 않았습니다. 사자의 생리적인 현상은 시신을 먹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 밖에 없습니다.
29절 – 시체를 수습합니다. 그를 위하여 슬피 우니라
이 늙은 선지자는 죽은 선지자를 수습하고 와서 진정한 애통이었습니다. 그 죽은 선지자를 향해서 오 내 형제여 라고 합니다.
31절 자기 아들들에게 유언을 합니다. –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곳에 나를 합산하라고 합니다. 나도 그 사람의 길로 가겠다. 나도 그 사람의 가족이 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개 같은 모습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32절을 봅시다. –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이 늙은 선지자의 변화는 유다에서 올라온 선지자를 통해서 늙은 선지자가 돌아오는 계기가 됩니다.
이 죽음은 – 속은 것인가? 속아 준 것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보여줍니다. 33절을 다시 봅시다. 여로보암은 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선지자의 죽음을 앞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처럼 절대로 변하거나 주님앞에 나아가지 않습니다.
알고도 속아주시고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실 그리스도를 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북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늙은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다른 길로 돌아가다 죽임을 당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길이고, 다른 길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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