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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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고 실제 내가 죽는다는 생각 이 들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두려워합니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이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불 로초를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진시황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피해 더 오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자신이 죽은 뒤에 영적인 존재로 세상에 남 는지, 죽으면 그냥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인지, 혹은 윤회를 믿는 자들은 나중에 어떤 존재로 태어날 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또 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과의 단절 때문에 죽 음이 두렵다고 말합니다. 관계의 단절과 불확실한 상황들이 죽음이 두려운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된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겠습니까? 성도된 자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빠 지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되십니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죽음에 대해 물어보면 그래도 구원의 소망 때문에, 부활의 소망 때문에 죽음이 그렇게는 두렵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성도 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지 이유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은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 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상태에 대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자는 자들 에 관하여 슬퍼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바울은 앞서 실라와 함께 데살로니가에 있 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이 복음에 대해 악한 마음을 가지 고 있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기득권자들이 자신의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실라에게 로마 황제에 대한 소요를 선동했다는 혐의를 씌워서 바울과 실라가 계획보다 일찍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 회의 성도들에게 종말의 때에 관해서 모두 전하지 못한채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울 이 떠난 이후에 시간이 지나다 보니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죽는 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 작했습니다. 그러니 성도들 가운데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죽고 난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 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죽음에 대한 불안함과 걱정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특별히 주의 재림의 날에 죽은 성도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의 재림 전에 죽었으니 재림 때에 그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참여치 못할 것으로 생각이 되니 소망 없는 슬픔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에 대해 인식한 바울은 편지를 보내 소망 없는 자들과 같이, 믿음 없는 자들 과 같이 슬퍼하지 말고 소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바울이 자는 자들에 관해 소망을 가지라고 말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기에 소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데살 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의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에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 셨듯이 성도 가운데 죽은 자들 역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아니라 ‘자는 자들’ 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음서에 잘 나타나듯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 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놀라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가 죽음 가운데서 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성도가 죽었을 때 마치 인형과 같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의 죽음 에 아무런 감정 없이 애도하지 않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입니다. 바울은 “소망이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종종 주변 지인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때가 있습니다. 장례식에 가보면 믿음이 있는 자들의 장례식장과 믿음 없는 자들의 장례식장은 그 분위기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의 장 례식에 가면 어떻습니까? 참 슬프디 슬픈 곳이 바로 믿음 없는 자들의 장례식입니다. 하지만 교회 다니 는 가족의 장례식장에 가면 똑같이 슬픔은 있지만 부활 소망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 친가는 지금은 몇 분 믿음을 가지고 계시긴 하지만 어린 시절 친가를 생각하면 항상 제사를 드려 서 제사상에 절하지 않기 위해 아픈척하고 숨어있던 그런 유교적 사상이 강한 집안 저희 친가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고등학교 때 제 증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숨을 거두시기 직전 에 예수님을 영접하셨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친가의 대부분의 어른들은 믿음이 없었기에 관 위에 십자 가 있는 천을 씌우긴 했지만 그 위에다가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휘황찬란한 장식 같은 것을 해서 무덤 까지 가지고 간 기억이 있습니다. 관이 문제가 아니라 친가 어른들이 장례식부터 해서 하관하고 그 이후 까지 참 많이 슬퍼하셨던 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자신들이 가진 생각으로는 이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단절되었고,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소망 없는 자들은 주변의 죽음에 대해서 마음 다해 슬퍼합니다. 죽으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소망 없는 슬픔이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저희 외가는 이모들이 많이 계신데 대부분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 가을에 제 외 할머니께서 소천하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어릴 적에 많이 업어 주시고, 기도해 주셨던 참 사랑이 많 으셨고 항상 기도하고 찬양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동일하게 슬픔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슬픔은 증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친가 친척들이 가졌던 그 슬픔과 는 본질적으로 다른 슬픔이었습니다. 친가 가족들의 슬픔은 소망이 없었기에 오는 슬픔이었습니다. 하지 만 외가 가족들의 슬픔은 사랑하는 가족이 숨을 거둔 것에 대한 아쉬움의 슬픔이었습니다. 죽음 뒤에 어 떤 일들이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외가 가족들은 소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재림 의 때에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이 마음 가운데 있었기에 죽음으로 인해 슬픔은 있었지만 절망과 같 은 감정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있으니 죽음에 대한 인식이 믿지 않는 자들과 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믿는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한다고 말합니다. 너무나도 놀랍고 감사한 이 사실을 기억함으로 우리가 소 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 다.

둘째로 우리가 부활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강림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과 16절에서 바울은 주께서 “강림”하신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강림’이라고 번역된 말
은 ‘재림’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림하신다는 사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 재림하 신다는 사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에게 위로의 말을 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 아닙니다. 바울 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한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이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 오거나 천사를 대신 보내서 마지막 때가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강림은 조용히 몰래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강림 때에는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납니다. 감히 상상할 수 도 없는 엄청난 소리들과 함께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강림, 즉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 가운데 나타난 분명한 진리입니다.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입니 다. 예수님의 승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1장을 보시면 천사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던 제자들을 향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본문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 후서 등 여러 서신을 통해 바울은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강림을 기대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재림 날에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며, 산 자 들도 함께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라 내가 너 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 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나팔 소리와 호령과 함께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시며, 그 때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무덤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87문은 우리가 부활에 대해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말햊줍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해 믿어야 할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죽은 자는 의인 과 악인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부활할 것을, 그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변화될 것을, 그리고 무 덤에 묻혀 있는 죽은 사람들의 바로 그 몸이 그들의 영혼과 영원히 다시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일어나게 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의인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과, 그들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권능 가운데 신령하고 썩지 않는 몸으로 일어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 다.” 이것이 우리가 부활에 대해 믿어야 할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죽은 자는 다시 그 몸이 부활 하여 영혼과 연합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을 믿는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된 우리에게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소망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하여서 먼저 죽은 성도들은 다시 육신을 입고 부활할 것입니다. 또한 살아있는 자들도 함께 하늘로 올 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사실이 있기에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다른 소망 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고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 든지, 아니면 살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던지 간에 우리는 하늘로 올려져서 함께 예수님을 영 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음 가운데서 구원의 소망, 부활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재림으로 인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부활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 니다.
우리가 죽음이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두려움 가운데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경 속에 갇혀서 글자로, 책 안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성경이라는 오래된 책 속에 기록되어 있는 죽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며, 우리와 항상 동행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는 온전하게 되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하며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가 되어서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성자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인도해 주십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잘 드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 삶이 힘듦 가운데 있고, 여전히 우리 가운데 여러 문제들이 있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계시지 않 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공기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해서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것과 같습 니다. 짙은 안개에 가려서 산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당장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산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우리 삶 가운데 직면한 많은 어려움들이 마치 짙은 안개와 같이 우리의 눈을 가릴 지라도 여전히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여전히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종말의 때에 관해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들의 죽음에 대해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슬픔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소 망 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슬퍼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 까? 우리가 죽음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예수 그리스 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죽은 자도 살은 자도 다 함께 하늘로 올려져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 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간이기에 죽음이라는 너무나도 큰 산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 믿는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혹시 주변에 죽음으로 인해서, 또한 다른 두려움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자들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자신이 죽음의 두려움에 여전히 사로잡혀 계시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에 나타난 사실, 예수 그리스도 로 인해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위에 믿는 자들 가운데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 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예수님으로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을 가지고 서로 위로하 라고 말합니다. 다른 인간적인 말이나 자신의 경험들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위로하라고 말합니다. 삶에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시며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위의 힘 들어하는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으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부활 소망을 가지고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 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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