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랑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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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사랑이 있습니까” 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사울이 왕이 된 이후로 다윗과 솔로몬을 거쳐 단일 왕국으로서 나라가 이어져 갔지만 ,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이 왕이 되며 나라가 반으로 갈라집니다 . 우리나라처럼 남북으 로 나뉘어졌는데 북 이스라엘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두고 , 남 유다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두고 나라가 분열되었습니다. 나라가 분열된 이후에 북 이스라엘은 왕들이 앞서서 우상숭배를 하며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그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여 돌아오게 하고자 했지만 북 이스라엘의 백성은 계속해서 우상숭배에 빠져 죄를 짓고 살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호세아라는 선지자입니 다 . 호세아는 ‘사랑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순종하기 힘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 바로 음 란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처음으로 임하셔서 하신 말씀 이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이해하기 힘든 명령이었지만 , 호세아는 이 명령에 순종하여 고 멜과 결혼하였고, 이스르엘과 로루하마, 로암미라는 세 자녀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지 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마음을 다 잡아야 했지만 , 고멜은 계속해서 세상으로 나가 방탕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면 호세아는 가서 고멜을 데려오고, 다시 고멜이 나가면 다시 찾아가 데려오는 삶을 반복했습니다 .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 싶지만 , 하나님께서 는 호세아에게 고멜과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몸으로 깨닫게 하 셨습니다 .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이전의 삶을 청산하지 못하고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영적으로 음행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마음이 아프실지 호세아의 결 혼 생활을 통해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결혼 생활을 통해서 호세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교훈을 주셨습니다. 호세아가 선지자인데 음란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이름이 ‘긍 휼이 없다’,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지었으니, 뒤에서 얼마나 욕하며 수군거리며 이야 깃거리로 삼았겠습니까. 그런데 호세아에게서 듣게 된 말을 통해 그런 결혼생활의 모습이 바 로 하나님과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이 뒤에서 이야기하 고 비웃던 그 호세아의 결혼 생활이 자신들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자존감은 강하게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 정작 그 삶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하신 후에 하나님은 계속해서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 에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십니다 . 제사장들과 이방 예배 , 우상 숭배 등을 책망하시고 하나 님을 떠난 그들의 영적 음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늘 본문 이 등장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해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 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선포의 내용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확신을 가지고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 다 .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찢으시고 치셨지만, 하나님께서 다시금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 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고 통을 주신 하나님만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두려워 다시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이스라엘에 게 희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 선지자의 선포를 신뢰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보시면 이스라엘의 패역함으로 인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심판을 선포하시지만 ,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 자체에 목적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다시금 그들이 당신 앞에 회복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며 치유를 위해 찢으 시고 치시는 것이기에 언제나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절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시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이틀 후에 살리시며 셋째 날에 일으키신다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2 일 뒤, 3일 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나타난 시간 개념은 조금 긴 시간을 의미합니 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것이 조금 더딜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함이 그들의 삶 가운데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처럼 국가적인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었 습니다 . 당시 국제적 제국이었던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할 의사도 보이지 않았고, 남 유다 와도 평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들의 생활은 매우 윤택해졌습니다. 그러면 더 하나님 을 찬양하고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더 나아가야 했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사회적, 종 교적으로 매우 타락해 있었습니다 . 소수 권력자와 정치가들이 유착하여 불법을 행하고 , 가난 한 자를 겁탈하고 착취했습니다 . 법관들도 뇌물을 받고 의인들을 괴롭히며 ,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동정은 전혀 없는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종교적으 로는 종교형식주의와 혼합주의가 만연하여졌습니다 . 벧엘의 성전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도 했지만 , 동시에 술과 음행이 곁들여진 바알 숭배도 이어졌습니다 . 하나님을 이전에 시내산의 하나님 , 광야의 하나님으로 이해하며 과거에 계신 분으로 생각하고, 지금 농사를 짓는데 도움 을 주는 것은 바알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끝없이 죄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상태가 이렇다 보니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죄를 하루아침에 회복시키지 않으신 것입니다 . 마치 많은 병들이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즉각적으로 치유될 수 없고 , 천천히 여러 가지 처방을 통해서 병을 치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 몸에 깊숙이 밴 병세를 한 번에 다 퇴치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고칠 수 없듯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랜 시 간 동안 죄 가운데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회복시키실 것을 호세아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 호세아가 이렇게 이스라엘을 향해 두 번씩 말하며 ‘ 여호와 알기’를 강조한 이유는 호세아 4장 에 나타납니다. 호세아서 4 장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며 이스라엘의 상태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망하게 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에 있었기에, 호세아는 이제 ‘ 힘써 여호와를 알자 ’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알 아가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사단은 죄를 지은 자에게 다가와서 지속적으로 ‘네가 어떻게 하나 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느냐. 너도 스스로 왜 하나님께서 너에게 징계를 내리시는지 알지 않느냐 . 이제 하나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접근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께 접근하고 다가가려는 모든 방법은 다 소용이 없다 ’고 말합니다 . 이 말들이 사실인 것처럼 느 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여호와를 힘써 알아가야 합니다. 호세아는 그 이유를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 리에게 임하시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들이 무슨 뜻입니까? 새벽 빛이라는 것은 매일 우리에 게 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일 새벽이 되면 다시금 밝아 오는 것이 바로 새벽 빛입니다. 늦은 비는 무엇입니까? 늦은 비는 곡식을 여물게 하고 익게 해주는 비입니다 . 이 비가 없으면 곡식은 결코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은 아 무 힘도 없이 메말라버리게 되었지만 ,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과 같이 어김없이 그들에 게 비취게 될 것이며, 늦은 비와 같이 대지를 적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열매 맺게 하실 것 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그들의 행실을 지적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인애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 다 . 그들의 인애가 얼마나 없었던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인애를 보고 ‘아침 구름이나 쉬 없 어지는 이슬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침 구름과 같이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이슬과 같이 금 방 사라지는 것이 이스라엘의 인애라고 한탄하며 지적하십니다.
본문에서 ‘ 인애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 헤세드’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헤세드라 는 말은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호세아서에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 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했고, 이웃을 향한 사람들의 사랑을 말할 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 인애 ’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충 성하는 사랑 ’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너희에게 이러한 인애가 없다고 지적하시며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깨닫기 원하신 것입니다.
본문 6 절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 하노라”고 말합니다 . 타락한 이스라엘이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아무런 진실성 없이 드리던 불성실한 제의행위보다는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 지 말고 , 번제를 드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주위의 이웃들 을 향한 사랑이 없이 나와 드리는 그런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 없이 예배나 종교적인 의식들을 행하는 것 에 대해 극렬히 거부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아모스는 호세아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 자인데 아모스 5장에는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족속을 향해 이렇게 말 씀하십니다. “너희의 절기들이 싫어서 나는 얼굴을 돌린다 . 성회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 가 역겹다.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소제가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 화목제물로 바치는 살 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비파 소리도 듣기 싫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 형제와 이웃들과의 온전한 화목이 없는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 장에는 서기관과 바 리새인들의 모습들을 계속해서 지적하시며 “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일명 ‘ 사랑장’ 이라고 불리는데 그 내용이 어떻습니까.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 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꽹과리가 될 뿐이고, 내가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주고 남을 위해 불에 뛰어든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지식이 없고 ,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종교적 행위나 예배 등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돌 리시고 역겹다고까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과 같은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은 모습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생활 오래하고, 교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고, 매 년 어떤 절기들이 있고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예배시간에 예배를 잘 드리고는 있는데 , 우리 안에 사랑이 아침 구름이나 이슬과 같은 모습으로만 남아있지는 않습니까. 여전 히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지 않은데 그것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남들이 볼 때는 누구보다 신실하고 믿음 좋아보이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지만, 정작 그 속에는 사랑이 없어 온갖 부정한 것들이 가득 차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 은 모습이 혹시 우리의 모습이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칠하여 보기 좋은 무덤의 표면을 다 깨부수고 하나님 앞에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 하나님께서 말씀하 신대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시길 바랍니다. 이웃을 향한, 하나님 을 향한 사랑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려서 하나님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고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