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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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경제 활동의 결과 세상은 일종의 종과 상전의 개념이라는 계급 구조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힘을 소유한 상전들은 종을 부리는 위 치에 있게 되고, 종은 자신을 부리는 상전의 눈치를 보며 그의 말에 복종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질서와 구조는 부정할 수 없는 일종의 규칙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9 년을 살고 있는 지금은 종과 상전이라는 개념은 사라졌지만, 그 구조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 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직접 경제 활 동을 하든지, 나이가 들어 자녀들이 대신 경제 활동을 하고 부양을 해 주든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기 위 해서는 경제 활동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지금도 여 전히 일종의 종과 상전의 개념이 존재합니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에 적힌 그 모든 말씀을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온전하게 똑같이 우리의 삶에 적 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중요한 삶의 원리에 대해 이시간 살펴보고, 각자의 상황 에 맞게 어떻게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실천하기로 다짐하 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종과 상전 각각에게 권면을 주고 있는데 먼저 종에게 준 권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종들은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처럼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종들은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처럼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종들이 육체의 상전에게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엡 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종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을 유의깊게 읽으신 분들은 눈치를 채셨으리라 생각하 는데, 이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표현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향해서 사용하 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하는 경외감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상 대가 가진 권위를 진심으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상전을 향해 이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육체의 상전을 상전으로서 인정하고 그 앞에서 적 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종들은 전심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5절 본문에서 ‘성실한 마음’이라고 번역한 말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보자면 ‘마음의 단일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위선이나 다른 저의가 없는 순전 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 말로 완전히 바꾸어 보자면 ‘일편단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종들 은 일편단심의 자세를 가지고 상전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들은 그리스도께 하는 것처럼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종들이 하 는 모든 일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시는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리스도의 주인 되심의 영역 안에서 행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이런 점 에서 종들이 일상 속에서 육체의 상전을 섬기는 것은, 사실상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의 일부분입니다. 그래 서 바울은 그리스도께 하는 것처럼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종들 은 여전히 종의 신분에 있는 자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들이 아니라 그리 스도를 기쁘게 하는 종들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일을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세와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종들이 피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6절 상반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엡 6:6상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가림’이라는 것은 주인의 호의 를 얻기 위해서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주인이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 말로 하면 ‘알랑방귀’ 뀐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전 앞에서 알랑거리며 아첨하는 이 알랑방귀 뀌는 행 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바울 당시의 종들은 주인이 지켜볼 때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들이 주인에게 특별히 빚진 것이나 신세질 일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알랑방귀를 뀐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은 달라야 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늘의 상전되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은밀한 곳까지 감찰하시며, 언제나 그들을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바울은 6절 하반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엡 6:6하
…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앞서 눈가림만 하는 자들과 상반대는 개념입니다. 상전이 보는 곳에서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상전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마음을 다해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종들은 일들을 해갈 때 “주께 하듯이”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고 주께 하듯이 행할 때 그 마음은 기쁜 마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무감이나 두려움 때문에 육체의 상전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께 하듯이 자원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행해야 한 다는 것입니다. 단지 상전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히 하기도 하고, 겉으로만 열심히 할 수 있습 니다. 이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시고 지켜보시는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면 우리의 자세는 완전 달라질 것입니다. 비록 육체의 상전을 섬기는 일을 하지만 이를 통해 하늘의 상전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종들은 하늘의 상전을 섬기는 자세로 육체의 상전을 열심 히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들이 상전을 대할 때 이렇게 행해야 하는 이유가 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엡 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사람이 선을 행하면 그 사람이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상관 없이 주께로부터 다시 그대로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 당시의 종들은 선한 일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상전들이 미처 알지 못하기도 했고, 알더라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니 앞서 바울이 말한 그 모든 일들은 종들 의 입장에서는 굳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눈가림만 하는 모습으로 살게 된 것입니 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이 종들을 향해 선을 행하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상전이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보상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종들은 더이상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육체의 상전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거나, 상전의 시선에 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육체의 주인이 보지 않을 때도 최선을 다해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는 종들을 하늘의 상전되신 예수님께서 보 상하고 인정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가면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교통이 아직 불편 한 시절에 많은 순례자들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야고보의 신앙을 생각하며 그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성당 의 신부와 수녀들이 이 순례자들을 안내했는데, 매일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순례자들에게 사도 야고보 의 무덤을 보여 주고, 야고보의 행적을 들려주고, 함께 기도하고, 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안내했습니다. 하 루에도 이런 일들을 여러번 반복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신부와 수녀들이 이 일들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니 따분해졌다는 것입니다. 그곳을 찾는 순례자 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 있는 감격적인 일이었지만, 안내하는 이들에게는 지루하고 지겨운 일상이 되고 말 았습니다. 그 결과 정성도, 열정도 없이 대충 안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신부님이 이렇게 해 서는 안되겠다고 느꼈습니다. 일생일대의 감격을 기대하며 찾아 온 순례자들을 최고의 정성으로 모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녀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이제는 더이상 순례자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주님이 찾아오셨다고 생각합시다. 주님이 내 앞에서 서 계신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안내합시다.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정 성을 모아 기도하고, 주께 하듯이 식사를 정성으로 대접합시다” 이 말을 듣고 이런 자세를 가지고 안내를 시작하니 찾아 온 순례자들마다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안내하던 신부와 수녀들이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21세기의 사회 문화는 인류 평등 사상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직장인들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의 노예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습니 다. 그렇기에 당시 종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용주에게 두려워 떨며 순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모습과 자세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든 직장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직장을 하나님께서 주신 일터라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학교를 수료하신 분들은 이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익숙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복음학교의 내용 중 에서 교회에서 일하는 교역자와 교회 일 외에 세상 일을 성직으로 여기며 일하는 세역자라는 개념이 있습 니다. 많은 한국 교회의 사람들이 거룩한 일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하는 일로 국한시키지만, 사실은 세상의 일터에서 거룩을 위해 하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인 직장인들은 세역자입니다.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주께 하듯이 순종하여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물론 탐욕과 부정과 거짓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정직하고 바르게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업주가 이윤 추구에 눈이 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착취하는 곳에서 일한다면 이 모든 일들을 행하기 싫어지는 것이 한편으로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인 격이 없는 소유물로 취급받던 당시의 종들에게 최선을 다해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고 섬기라고 권고하셨 습니다. 오늘도 이시간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주께 하 듯이 감당하라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부당한 기업주의 편을 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이유는 어그러지고 악한 세대 가운데서도 자신의 백성들이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감을 통해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가기를 너무나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 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여서, 비록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주께 하듯이 나 에게 맡겨진 일들을 성실히 감당해 내어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상전된 자들에게는 어떤 권면을 주십니까?
상전된 자도 종들에게 주께 하듯이 행해야 합니다.
상전된 자도 종들에게 주께 하듯이 행해야 합니다.
9절 상반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엡 6:9상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상전들도 종들에게 같은 것들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것이라는 말은 종들에게 요구한 것과 상응하는 태도와 행동들을 의미합니다. 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상전들의 행동도 하늘에 계신 상전과의 관계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즉 상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하는 것처럼 종들을 존중해야 하고, 그들을 그리스 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대해야 합니다. 또한 자신들 역시 그리스도의 종들임을 알고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 며 종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남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권고는 당시 상전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인과 종 사이에는 어떤 공통된 것이 없고 우정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종을 살아있는 도구 정도로 여겼습니다. 이런 시대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상전들에게 종들을 존중하고 형제자매로 대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권고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뿐 아니라 종들을 위협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협박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당시 위협이라는 것은 종을 다루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많은 상전들은 실제로 종들을 위협하고 겁을 주었습니다. 구타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적인 학대도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겠다며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상전들은 비록 종들에게 명령하고 벌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고 할지라도 종들을 구타하고 학대하며, 위협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바울은 권고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9절 하반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엡 6:9하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종들과 상전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종과 상전이 함께 같은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며, 그들 이 하늘에 계신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체의 상전과 종들은 모두 하늘에 계신 주님을 함께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즉 육체의 상전과 종들이 그리스도를 함께 섬기는 동료 종들이라 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상전되신 주님이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어떤 표면상의 가 치나 외적 요소들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권력이 있는 자라고 더 사랑 하지도, 힘 없는 자라고 무시하지도 않고 모두 동등하게 대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아무런 의 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육체의 상전된 자들 역시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입니다. 하늘에 계신 상전께서 아무런 차별 없이 모두를 대하시는데, 그를 섬기는 종인 육체의 상전 역시 아무런 차별 없이 종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서 전역하고 서울의 고시원에서 4달 정도 지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마커스라는 찬양팀의 교육 프로그램을 듣고 싶었던 찰나 전역 이후 복학까지 시간이 남아 서울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군대 교회에서 만난 친구의 추천으로 한 기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게 된 부서에 서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하던 분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준공기업의 본사라 많은 사람들이 일하던 곳이 었는데 그 곳의 신우회에서 열심히 헌신하며 봉사하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3달정도 일하면서 보 았던 그 분의 모습과 태도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아직 대학생 밖에 되지 않았고, 잠시 스쳐가는 아르바 이트 생에 불과했던 저에게 참 잘 대해주셨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부서 내의 다른 모든 동료들과 부하 직 원들에게도, 다른 아르바이트 생들에게도 모두 마음을 다해서 대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마 치 주께 하듯이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고, 주께 하듯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했고, 주께 하 듯이 부하 직원들에게 따뜻함과 웃음을 보이며 진심으로 대했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된 상전들, 사업주들이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직원들을 그저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업을 세우고 발전시키는 동료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복지와 이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사업주는 아니더라도 부하 직원을 두고 일하는 모든 그 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직 장 안에서 직원들과 부하 직원들을 대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관계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 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주께 하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 이 말하는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 고, 특히 새벽 시간에도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낮에는 비교적 괜찮은데 특히 저녁 시간에, 새벽 시간에 오는 손님들은 일명 진상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술을 몇 병을 마셨는지 취해서는 자신이 가져와 야 할 물건들을 저보고 가져오라고 하고, 반말을 하고, 편의점 안에서 술을 마시는 등 여러 가지 하지 않아 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모습에 대해서 저는 그 손님들에게 마땅히 반발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 래서 때로는 알아서 찾아오라고 말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그들에게 나름의 반항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고 나서는 한가지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께 하듯이 하자. 주께 하듯이 하자. 저들이 나를 찾아온 주님이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손님들을 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저의 이 런 태도에도 그들의 모습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 하듯이 그들을 대하 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다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주님 주신 능 력과 힘을 의지하여서 이렇게 노력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모든 일을 행할 때 주께 하듯이 우리의 마음을 다해 최선의 노력으로 행하 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눈가림으로 대하지 않고, 주께 하듯이 기쁜 마음으로 대하 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주께 하듯이 행하고, 직장에서도 주께 하듯이 행하며, 어떤 모임에 나가서도, 교회에서도 주께 행하듯이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가지고 행할 때 하 나님께서는 분명한 약속을 한가지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처럼 행하면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것입니 다. 우리가 주님의 분명한 약속을 기억하며 주께 하듯이 모든 일을 하며 다른 사람을 대함으로 하나님 나 라를 이 땅에서 이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의 종 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