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마음

요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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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러니하다’ 라는 말을 아십니까? ‘모순된 점이 있다’ 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당시 이 스라엘과 이방 나라의 모습 가운데 정말로 아이러니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고대 근동의 민족 주의적인 신관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던 사회적 상황에서 생각해 볼 때, 이스라엘의 신인 ‘하나님 ’의 심판 메시지를 듣고 니느웨가 회개한 사실은 참 아이러니 한 일이었습니다 .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민족이 믿는 신만이 자신들을 통치하고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 니다 . 니느웨에 반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 그런데 그들은 요나뿐만 아 니라 다른 많은 선지자들이 그렇게 여호와께 ‘돌아가자 ’고 외치고 회개하라고 말했음에도 불 구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볼 때 이렇게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하던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보내고 내뱉음을 당한 뒤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한 번 ‘ 니느웨로 가서 네게 명령한 것들을 그들에게 선포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시금 요나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요나는 이제 말씀에 순종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대충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니느웨는 사흘을 걸어야 할 만큼 큰 성읍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요나는 고작 하루 동안 다니며 사십일 뒤에 니느웨가 무너질 것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사흘을 걸어야할 정도면 사실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려면 사흘보다 더 오래 다니며 회개하라고 선포해야 사람들이 다 듣고 회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요나는 고작 하루를 다니며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다녔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사실 그가 하루를 다니며 회개를 선포한 것 도 열심히 선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런데 이 니느웨 백성들의 반응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이스라 엘의 신인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 다른 민족의 신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 의 선포를 ‘믿고 , 선포하고 , 입었다 ’라고 말합니다 . ‘믿는다 ’ 는 것은 니느웨 사람들의 내적 반 응을 보여주는 것으로 ,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금식을 선포하고 베옷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 이는 자신을 낮추며 , 참회하거나 애곡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 선지자 요나도 하나님의 말씀에 올바로 반응하지 않았고, 택함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 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니느 웨 사람들이 요나가 대충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해 반응 한 것입니다.
요나의 선포는 니느웨의 백성들에게 그치지 않고 왕과 대신들도 반응하게 만들었습니다. 왕 은 자신의 보좌에서 일어나 내려왔고 자신의 왕복을 벗고 베옷을 입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왕 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자신의 모든 권력에서 내려와 만물의 통치 자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스스로를 낮춘 것입니다. 왕 역시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금 식을 명하며, 악한 길과 강포에서 돌이키라고 명령합니다 . 단순히 금식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 이 아니라 회개의 구체적인 행위를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 본문 9 절은 ‘혹시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돌이키실지 누가 알겠냐’ 면서 왕이 보인 행동의 이유를 말합니다.
본문 10 절은 이 니느웨 왕의 간절한 마음과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사 재 앙을 내리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원래 그들의 악함과 강포 때문에 그들이 멸망을 받을 것이 었지만 , 니느웨의 모든 백성들이 악한 길에서 떠나고 강포를 멈추자 하나님이 그 뜻을 돌이키 신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니느웨의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받은 유대인들을 책망하는 도구 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 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 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책망을 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의 모습도 참 아이러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초신자들이 도리어 더 순수하게 믿음으로 말씀에 반응하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나가고 , 교회에서 잔뼈가 굵은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험을 앞세워서 예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 가운데 이런 모습들이 참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계 속해서 성경을 통해서 , 또 교회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정결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고 말씀 하시는데 , 여전히 걍팍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우리의 모습 가운데도 이런 모습이 혹여나 남아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새벽기도 까지 나오셨으니 대부분 신앙의 연수가 오래 되신 분들이실테고 , 또 저보다도 오래 신앙생활 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오래 다니다 보니 이전의 많은 경험들에 의해 마음이 닫히고 무뎌진 것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그 누구보다 도 잘 반응하여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저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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