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키는 삶
Notes
Transcript
우리가 하는 흔한 오해 가운데 회개에 관한 오해가 있습니다. 흔히 기도하면서 회개기도라 말하는 그 기 도의 행위를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회개 때문에 죄를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 다. 다소 충격적인 말일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회개기도라는 기도를 통해서는 죄를 용서받지 못합니다. 회개에 관한 책을 보다가 이 부분을 잘 설명한 예화가 있어 이 내용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연쇄살인을 저질러서 법정에 섰습니다 이 사람은 재판을 받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 지 마음 깊이 깨닫고 판사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죄를 고백하고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담 긴 고백이 얼마나 진실하고 절절했던지 판사가 그만 감동을 받고 무죄를 선언해 버렸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 판사를 향해 사람들은 무엇이라 말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판사를 향해 불 의한 판사라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법정에 선 피고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이 약간의 감형 사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무죄 선고를 내려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법 이 정한 대로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 형법이 정한 죗값을 치러야 하고, 판사는 당연히 그 법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판사가 이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무죄를 선언 한다면 그는 법을 어기는 것이고, 그는 불의한 판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에도 법이 하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32절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 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회개한다고 해서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죄인은 사형이다’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경은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라고 말하지 않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경은 회개하는 누구나 죄를 용서받노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핵심은 우리가 하는 회개라는 행 위 때문에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를 다시 가져와 말씀드리자면, 누군가 그 연쇄살인범의 죄를 대신 지고 감옥에서 40년 동안 형벌을 살았습니다. 아니 아예 사형 판결을 받고 대신 죽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제는 그 연쇄 살인범에게 다시 형을 집행한다는 것은 오히려 부당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며 이루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자 기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지시고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향해 ‘너는 죄인이니 사형이다’라고 정하신 그 법적인 형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대신 나의 형벌을 받 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죗값을 치루신 덕분에 우리에게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 다. 즉 죄 용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라는 기초 위에서 회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언약백성들이 받아야 할 형벌은 모두 면제되고 해결되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 내용을 “언약백성은 이제 지옥에 갈 밑천이 사라졌다”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우리는 지옥에 가고 싶어 도 지옥갈 밑천이 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백성 이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대신 치르셨고, 언약백성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공로를 확보하게 되었습니 다. 이것은 나의 어떤 행위로 인한 공로가 아니라,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공로를 실제적으로 누리고 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회개와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 니다. 우리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나아가는, 첫번째 회개라 할 수 있는 회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 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모든 공로 전체를 ‘영단번에’ 받게 됩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 래의 모든 죄를 속죄함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받아들여주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기쁘 게 무죄라 선언하시고, 이에 더해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삼아주십 니다.
시광교회를 섬기시는 이정규 목사님은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평생 짓는 죄를 회개로 용서받을 수 있다는 오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회 개라는 ‘행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근거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착각입니다. 오늘 거짓말이 라는 죄를 지었는데 회개하면 그 죄를 용서받고,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살면서 짓는 죄를 하나하나 회개할 때마다 용서받는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을 단지 죄를 지우는 수단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회개해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저도 한 때 회개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생각에 빠져 살았던 적 이 있었습니다. 죄라는 것이 좀 덜 짓게 되면 편하고 좋을텐데 속상하게도 매일 매일 죄를 지으며 살아가 니 마음에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회개 기도를 얼마나 간절히 해야 이 죄가 해결되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A라는 죄를 짓고 나면 얼마쯤 기도하며 회개하면 해결이 되는 것인지, A보다 더 큰 죄라 생 각되는 B라는 죄를 지었을 때는 그래도 조금 더 기도해야 이 죄가 해결되는 것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 습니다. 이런 생각에 빠져 있으면 자연스레 다가오는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깜빡하고 기억하지 못 한 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죄는 어떻게 하면 해결할지 고민하다 가 나온 결론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들 도 다 용서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라도 기도해야 나중에 천국가 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오랜 시간 믿어왔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 말 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 시피 그것은 은이나 금 따위의 없어질 물건으로 값을 치르고 된 일이 아니라 흠도 티도 없는 어린 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얻은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지 나의 회개 라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구원받기 이전의 죄는 십자가로 용서받지만, 이후의 죄는 회개로 용서받는다는 오해입니다. 우리 가 회심할 때 이제껏 지은 모든 죄는 용서받았지만 이후로 짓는 죄는 회개라는 행위로 하나하나 지우고 용 서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단 한구절도 없는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런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위험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가 회심할 때까지만 효력이 있고, 이후 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어떤 공로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고 여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평생의 모든 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지시고 죽으셨 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죄를 다 속함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속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앞서 말 한 것처럼 우리 죄는 다 속죄함 받아버려서 이제 지옥갈래야 갈 밑천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오해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십자가로 다 용서받았으니 이제는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오해입니다. 이것은 구원파라는 이단이 주장하는 핵심 교리입니다. 회심할 때 우리의 죄가 다 용서받았으니 이후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회개하는 것은 회심할 때 용서받은 것을 믿지 못하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며 다시는 회개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런 오해는 회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십자가에 대한 설명이 맞다면 이 말은 맞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속함받았으니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 오해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회개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아가야 합니다.
회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우리는 회개기도라는 것에 초첨을 맞추고 이해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통해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들으면 ‘회개기도 하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도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자들을 향해 ‘회개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는 메 시지를 들었을 그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10절 말씀은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말합니다. 12절에는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말하고, 14절에는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말 합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는 말에 그 누구도 기도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회개 기도라 는 어떤 의식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탐욕이라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할 뿐이었습니다. 이렇듯 회개는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죄에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행동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사 람은 이제껏 악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멀리했던 것에서 돌이키기 위해 죄를 고백하는 회개 기도도 해야겠 지만, 자신의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라는 것은 단순히 회개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 기도 자체에 죄를 지우는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없애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여 날마다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분 명하고 확실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롭게 살려는 선한 마음이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자는 죄를 짓습니다. 최근 주일 설교에서 목사님도 언급하셨듯이 우리는 매일 매일, 매주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자를 여전히 사랑하셔서 그를 징계하기 위해 기도에 응답도 하지 않으시고 신자를 멀리하십니다. 이 징계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인데 마치 아들이 잘못했을 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해서 회초리를 드는 것과 같습니 다. 회초리라는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신자는 회개하게 됩니다. 속죄가 아니라 회개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말했듯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속죄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은 이미 다 해결되었습니다. 형벌은 끝났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멀어져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내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이루어 낸 흠 없음을 근거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사람들”이라는 담임목사님의 책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서 나의 삶이 어떠했든지간 에 뻔뻔스럽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내 삶은 죄로 인해 시궁창 같지만 예수님의 십 자가로 인해 나는 이제 의롭게 되었으니 죄의식 없이 그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책 에는 “성경에서 ‘돌이킨다는 것’은 다음부터 그 죄를 반복하여 짓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를 고백할 때에 십자가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섰는가를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계속해서 강조하지 만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에 관하여 내가 하나님께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그냥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어차피 내 죄는 다 해결되었고, 나는 십자가로 인해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니 그냥 뻔뻔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기 좋은 내용이 다시 목사님 책에 등장 합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애쓰다가 10가지 정도의 죄만 지은 사람과 100가지 정도의 죄를 지은 사람 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죄를 지으면, 또 자주 죄를 짓게 되면 회개하 기 전까지는 죄를 지은 만큼 그의 안에 성령이 탄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자주 짓게 되고, 반복 되게 짓게 된다면 그 죄로 인해 성도로서 누릴 참 행복과 기쁨을 그 죄를 짓는 시간만큼 맛보지 못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 시간만큼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에 빠져 있는 그 시간동안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죄의 결과로 평강이 사라지고 감사가 줄어듭니다. 이것을 “구원받은 성도가 감수해야만 되는 아픔”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죄를 지으면 그 시간만큼 우리 는 손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귀한 사 역을 힘있게 해야되는데 죄에 빠져있으면 그 시간만큼은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 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성화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성화란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 한 성품을 닮아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즉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계속해서 말한 회개의 삶이 결국 성화의 삶과 같은 말입니다.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 회개 의 삶입니다. 담임목사님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사람으로서 죄를 이기고, 죄의식에 빠지 지 않기 위해서는 죄와 반대되는 개념인 주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교제를 하 여서 그분과 함께 있으면 생각이 같아집니다. 한마디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해 지는 것이고 이 것이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강조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죄인은 사형이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형벌을 다 받았습니다.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시고 우리 죄를 모두 속죄해 주셨습니다. 회개라는 행위로 죄 용서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회 개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것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 우리가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손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너 이제 그만 죄랑 친하게 지내고 나랑 교제하자. 나랑 더 교제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아라. 죄 그 것 좀 그만 보고 날 좀 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나의 모 든 감각과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회개의 삶, 하나님께로 나의 방향 을 돌이키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