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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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 범죄 영화
자꾸 등장하는 인물 그러나 아직 누가 범인인지 판단하기는 이르다.
더 음침한(?) 음모가 드러나고 진짜 범인이 드러나며, 원래 범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음모에 빠진 경우도 드러난다.
오늘도 비슷하다.

죄를 뒤집어 씌우는 음모.

예수님에 대해 아랫사람들이 넘어가니까.
인기를 꺾고
로마의 권세를 힘입어 그를 잡으려고.
너무나 잘 알듯이 간음한 여인을 잡아왔는데, 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걸 물어 본 것. 이게 올가미가 되는 것이.
내용은 간단하다. 모세 율법에 이러한 여자 돌로 치라 했어요. 어떻게 할까요?
곰곰히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레위기 20:10 nkrv
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명기 22:22 nkrv
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런데 “반드시 죽을 지니라”를 실행하면? 로마의 식민지 법에 걸린다.
요한복음 18:31 nkrv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머리를 쓴 거다. 어떻게 해도 걸리도록(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자 다시 말씀 드리지만, 교회 다니고 믿은 지 오~래된 이들은 바리새인에게 적용시키는게 적용점이 많다. 차마 간이 콩알만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정죄함에는 망설일지 몰라도.
내게 서운해 한 사람, 내 맘대로 안되는 사람을
마음에서 판단하고, 때로는 내가 집행하려고 하고, 마음 가운데서 온갖 안 좋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살짝 비틀어서.

내 마음대로 기준을 살짝 비틀지 마라

우리는 남 이야기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에게 불리한 것은 다 빼고 그 사람이 잘못된 것만 이야기하지 않는가?
때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러지 않는가?
이게 선악과다. 옳고 그름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
자, 이 여인이 왜 잡혀왔는가? 간음 했으니까.
오늘 이게 왜 음모인지 조금 더 살펴보자.
모여서 회의를 하니 그런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다시 본문 신 22:22
신명기 22:22 (nkrv)
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런데 동침한 남자는 어디갔는가?

예수님은 아신다. 바로 벌하시지는 않아도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
요 8:6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무엇을 쓰셨을까?
분노를 삭이기 위해 낙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여인과 동참한 사람의 이름을 썼다는게 가장 설득력있다.
요 8: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그래 우리도 죄있지 하면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고 그런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자리가 아니다.
한편, 유대 구전 율법인 미쉬나(Mishinah)에는 당시 돌로 쳐죽이는 사형법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첫째, 사형 선고받은 자를 법정 밖으로 끌고 나간다. 둘째, 집행자는 죄수 앞 10규빗(약 4.56m) 지점에 서서 죄수의 죄를 자백받는다. 셋째, 4규빗(약 1.82m) 앞에서 사형수의 겉옷을 벗기고 자리에 꿇어 앉힌다. 넷째, 사람 키 두 배 정도 거리에 떨어져 서서 첫 번째 증인에게 돌을 주어 죄수에게 던지게 한다. 다섯째, 다음에는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증인으로 하여금 죄수에게 돌을 던지게 한다. 여섯째, 참석한 군중들 모두가 돌을 던져 죽인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
현장에서 있던 증인1, 증인2
기억하라, 공격할 때 항상 빈틈이 많은 법인데. 우리가 다른 이를 정죄하고 공격하려고 할 때, 그 때가 도리어 내가 가장 숨기고 싶고 부끄러워하는 일이 드러나게 됨을 기억하라.
시편 32:1 nkrv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음란한 삶을 살며, 음란한 이야기로 공격하려니 죄가 드러남.
도대체 어떻게 간음한 여인을 통해 예수님을 공격 하려는 생각이 드는가? 간음에 빠져 살든지 거기에 아주 가까우니 나오는 발상이다. 왜 세금 바치는 것이 가한지 아닌지 그것으로 질문하는가 돈에 관심 많고, 자기들이 뭔가 받아먹기 좋아해서이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헤아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러나 더 한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단단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때로, 유구무언일 정도로 죄인이었다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회복되는 경우가 있다.
본문에서도 예수께서는 여인이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여자여!” 부인, 이 정도의 표현이 적당하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런데, 용서해 주신 것이지, 여기에서 막 나서가지고
응, 메시야가 나를 용서해주셨는데 말이야.
나를 꾀었던 것들이 말이야 하면서 음모를 만들었던 그 사내들을 최소한 이 사람은 정죄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럴 때가 많다. 참 많다.
그건 더 망신이다.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았던 1만 달란트 빚지자의 모습이다.
내 나름대로 편집하지 말고,
주님 앞에 나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서운해도 나가고,
부끄러워도 그 분 앞에는 나가고
내가 감추고 싶고, 용서 받고 싶거든 정죄하지 말고
죄짓지 말고 순결하고
“음란”, “간음” - 성경에서 우상 숭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하나님만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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