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방어

성막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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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식이 아닌 내용을 채우라 2. 외부가 아닌 내부 (언약궤)를 먼저 만들라 3. 거룩함의 중심은 내면에서 시작된다 4. 지성소는 더 이상 죄의 심판이 영향을 주지 못하는 Mercy seat이다 5. 속죄소를 통해 우리를 밀착방어하고 계신다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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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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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K]

한 주 잘 지냈죠? 여러분의 중심에 성막을 세우고 그 곳에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 예배하는 삶을 살아낸 한주였기를 바래요.
그렇게 삶을 잘 살았어도 이 곳에서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아요. 그 이유는 이 장소가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삶을 살고 또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다 알지 못해요. 그리고 여러분도 저의 삶을 완전히 알지 못하겠죠.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 나를 숨기고 방어하면서 이 자리에 앉아있어요. 나의 삶을 내가 아는 것이죠.
때론 예배를 드리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해요. 왜냐하면 예배를 드리는 중에도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생각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지금 그런 마음과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면 부탁해요. 그 생각에 지지 마세요. 그거 중요하지 않은 생각이에요. 미안해요. 여러분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고, 또 반드시 해내야 하는 어떤 과제나 업무 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저와 여러분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와서 찬양하고 예배 드리며 앉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요. 내가 어떤 모습이던지 간에 나를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살았던 간에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불러주셨어요. 왜요? 삶의 성막을 세우고 중앙에 그 분의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하고 살았다 해도, 여러분이 하는 찬양, 기도 그리고 예배를 너무나 받고 싶으시기 때문이에요. 지금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하는 것이 있어요. 마음의 문을 여는거에요. 특히 가장 깊은 곳의 문을 열어야 해요. 그리고 힘 빼세요. ‘오늘 은혜 받고 말겠어!’ ‘어떤 말씀하시는지 들어보겠어!’ ‘내 힘듦을 아시니까 해결해주실거야’ 등등 여러 생각들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마음을 열고 예배를 드려주세요.
찬양과 기도를 크게 하는 것 중요해요. 그런데 그런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예배를 드리러 왔잖아요.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왔잖아요. 예배의 내용을 만들어야 해요. 우리 스스로가 말씀을 나누는 이 시간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아야 해요. 몸만 와서 앉아 있다 가지는 않은가. 계속해서 돌아보아야 해요.
예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말씀하셨어요. 예배는 절대 절대 쉬운 것이 아니에요.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이 보내는 이 시간. 몸만 왔다 간다면요. 다른 생각하느라 예배에 집중하지 못한다면요. 아무 내용도 만들지 못하고 가는거에요. 입과 몸으로 찬양하고 듣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 아니에요. 만약 저와 여러분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했다면요. 예배에 집중할 수 없는 지금 상황이라면요. 괴로워해야 해요. 그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에요. 예배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영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자리잖아요.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기도 해요.
왜 제가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예배 그리고 우리의 힘을 빼고 마음을 열라고 말하냐면요.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에요. 말씀을 통해 내 힘을 빼고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받아드리는 이 시간 되기를 소망해요.

[BOOK]

만약 우리가 함께 집을 짓는다고 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도면도를 그리겠죠. 그리고? 집의 외벽을 쌓겠죠. 콘크리트차도 부르고 철근도 쌓고 하면서 외벽부터 공사를 진행하고 외관이 만들어지면 그 후에 내부 및 인테리어를 하겠죠? 외부공사 후에 내부 공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사의 순서에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을 보면 공사의 순서가 좀 이상해요. 도면도는 하나님께서 그려주셨어요. 그렇다면 그 도면도를 따라 성막의 외부부터 짓기 시작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법궤. 여호와의 언약궤를 먼저 지으라고 말씀하셔요. 언약궤의 위치는 성막의 가장 깊은 곳에 있어요. 일반적으로 가장 깊은 곳. 중요한 곳에 들어가야 하는 내부의 물건을 먼저 짓는다면? 비난을 받을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상하게도 가장 안쪽에 있는, 오직 대제사장만 볼 수 있는 언약궤를 먼저 만들라고 하셨어요.
왜 언약궤를 먼저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요. 언약궤를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너희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곳. 그 곳이 예배가 일어나는 장소이다. 거룩함의 중심은 잘 꾸며진 외관도, 멋지게 연주하는 것도,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도,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함의 중심은 바로 내면 가장 깊은 곳. 삶에 세운 성막. 그곳에서 시작된다. 그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아까 예배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어요. 언약궤가 바로 내용이에요. 바깥의 모습 ‘성막’이 아닌 ‘내면의 중심’이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에요. 예배의 형식도 중요해요. 형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우리는요. 나에게 익숙한 예배의 순서와 형식들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 순간 집중을 하지 못해요. 마음이 막 흔들려요. 형식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고 그에 따라 하나님을 구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색다른 예배 형식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릴 가능성이 존재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해요.
저는 학부 때 비교종교학 수업을 들으면서 로마 카톨릭의 미사에 참여한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 때 참 신기했어요. 로마 가톨릭의 그 예전이 참 많고 길었거든요. 찬양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해야하는 의식들이 참 많았어요. 예배가 이렇게 형식화되는 순간 위험해요. 성막에 의미를 부여하면 위험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예배가 형식화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그저 습관처럼 예배에 참여하게 될 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나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돌아보면서, 내가 써 내려가고 있는 예배의 내용이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 해야만 하는 것이에요.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한번씩은 들어 봤을거에요. 종교개혁이 일어난 여러 이유들 중 한 가지가 바로 예배의 형식화 때문이어었어요. 예배가 점점 형식화 되어 가면서, 수많은 순서와 전통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된 줄 알아요?
예배의 주인이 실종되었어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정작 그 예배를 받아야하는 하나님. 예배의 주인이 사라져버렸어요. 주객전도가 일어났어요. 주인은 하나님인데 내가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고3 일 때 였을거에요. 수능이 10일정도 남은 상황이었는데 살던 지역에 교회 연합 부흥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다녔던 교회의 성가대가 부흥회 때 서야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성가대 반주자였어요. 수능이 10일 남았는데 성가대 반주를 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나는 수능이 며칠 남았던 상관없이 반주를 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수능이 점점 다가오니까 솔직히 좀 쫄리는거에요. 그런데 믿음 좋은 척하려고, 나는 목사가 될거니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 애써 그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결국 부흥회 때 반주를 했어요.
그 때 저의 마음이 어땠는지 알아요? 하나님 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배 나왔어요.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알죠? 지금 10일 뒤에 나에게 무슨 시험이 있는지 알죠? 성가대 연습, 부흥회 그리고 그 이후 시간까지 나는 거의 반나절이라는 시간 공부를 포기하고 이 자리에 왔어요.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야 해요. 내 성적 책임지셔야 해요. 부끄럽지만 이런 마음이 있어어요. 여러분은 어때요? 저랑 비슷한 생각들 해본적 없어요?
나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지금 업무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맡은 사역이 있어서 마음이 급한데 그 것을 티내지 않고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었던 적 없나요? 중요한 시험이 있거나 혹은 어디 놀러가야 하는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던 적 없나요? 이 상황이 바로 주객이 전도 된거에요. 예배를 받으셔야하는 주인인 하나님을 무시하고 지금 내 상황에만 몰두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거에요. 예배가 나에게 습관처럼 하나의 형식처럼 굳어져버렸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예배를 통해 실종된 우리의 진짜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반드시 되찾아야 해요.
쉬고

[LOOK]

하나님께서 성막보다 언약궤를 먼저 지으라고 하셨고 그것을 지성소에 두라 하셨어요.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는 뜻이에요. 지성소는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배의 기본이 되고 출발이 되는 장소에요. 우리에게도 동일해요. 그곳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목표이자 결론이 되는 곳이 지성소에요.
이 언약궤는요.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자에요. 양쪽 끝에 동그란 고랑이 있고 그 곳에 막대를 넣고 제사장들이 어깨에 올려서 메고 운반하도록 만들어진 상자에요. 운반 하도록 만들어진 상자라면, 그 안에 무엇인가를 넣어야 했겠죠? 성경에 보면 증거판, 만나를 담은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 혹은 증거판만 들어있다고 이야기 해요.
증거판,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 혹은 증거판. 중복되는 것이 있죠. 바로 증거판이에요.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증거판은 들어있었을 거에요. 증거판은? 하나님이 직접 십계명을 새겨 넣으신 두 돌판을 이야기 해요. 여기에서 우리는 증거판이라는 이 단어에 한번쯤 의문을 가져야 해요. 왜 십계명이라 하지 않고 증거판이라 했을까요? (쉬고) 의도적으로 증거판이라고 말한거에요.
십계명. 지켜야 하는 열 가지 계명. 법령 / 증거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증거하는 것.
단어의 다른 의미가 느껴지나요? 지켜야 하는 열 가지 계명.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증거하는 것. 이 단어의 뉘앙스가 너무 달라요. 만약 십계명 돌판이라고 지칭하면서 언약궤 안에 넣었다면 이스라엘과 우리는 앞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사아가야 하는거에요. 지키지 않으면 죽게 되는 어떠한 법조문이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증거판이라 표현한다면요.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버려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는 의미를 담은 계명. 명령이 아니라 그것은 나와 너 사이에 언약이다. 내가 너를 지키고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고 너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나의 마음의 표현이다. 너는 그것에 반응하여 이 것을 지켜야 한다.라는 것을 증거 해주는 것이 되어요. 성경의 저자는 의도적으로 십계명 돌판이라 하지 않고 증거판이라 말하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절대 떨어질 수 없고, 그 것은 이것이 증거한다. 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에게는 이런 증거판이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장해주는, 증거해주는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우리가 드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 예배에요.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증거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내가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고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지시겠다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 그것이 바로 예배에요.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을 서로 확인하고 증거하는 시간. 그것이 바로 예배에요.
그러니까요. 예배의 결론과 목적은요. 하나님과의 관계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아요.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내가 드리는 예배의 도장에는 “하나님과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붙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라고 하나님의 도장에는요. “그래 잘왔어.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기죽지마 내가 너와 함께 하잖아. 나는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라고 적혀 있는 것과 같아요. 서로의 마음이 담긴 도장이 예배 시간에 찍혀지는 것이죠. 그래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친밀해지고 깊어지는 것이에요. 은혜를 받고 누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예배이기 때문이에요.
쉬고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예배의 끝일까요? 아니에요.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남았어요. 바로 언약궤의 뚜껑이에요. 증거판을 넣고 그 위를 덮는 뚜껑을 속죄소라고도 이야기 해요. 이렇게 생겼어요. 그룹 둘이 서로 마주보고 호위하는 조각을 붙인 뚜껑이에요. 그룹은 쉽게 말하면 호위 천사에요. 창세기 3장에 처음으로 등장해요. 3장 24절을 보면 그룹들과 두루도는 불 칼이 사람들이 생명나무에 다가 오지 못하도록 지키게 하셨다고 하거든요. 그것처럼 그룹은 무엇인가를 호위하는 역할을 해요. 그리고 하나님에게 접근하거나 함부로 나아갈 수 없게 하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해요. 그런 존재들이 뚜껑 위에 붙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그룹들의 시선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거나 혹은 앞을 보고 있지 않아요. 언약궤를 바라보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그룹들의 시선이 바로 아래를 향하고 있어요. 마치 누군가가 그룹들 사이를 지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속죄소를 영어로 번역하면 Mercy Seat이에요. 자비가 내리는 자리에요. 그룹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 자리는요. 자비가 내리는 자리에요. 그룹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다시는 그곳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룹이 있는 그 자리는 바로 우리가 죄를 지은 자리에요. 그룹이 지키고 있는 그 자리는요. 우리가 감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곳이에요. 죄를 지어서 쫓겨난 자리라구요. 죄가 시작되는 그 곳. 죄로 물들어진 그 곳. 그 죄의 자리를 하나님께서 이제는 자비의 자리로 바꾸어주겠다 말씀하시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그룹이 있는 자리는 너를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다. 너의 죄를 묻고 그에 대한 벌을 주는 자리가 아니다. 나는 너를 용서할 것이다. 나는 너를 다시 품을 것이다.를 뜻해요.
죄 때문에 쫓겨나 나를 만날 수 없게 된 그 자리. 지금도 너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죄를 짓고 나를 밀어내고 나를 잊으려 하지만, 나는 그 것까지 용서해주겠다. 죄를 지어서 죄로 물들어진 그 자리라 해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너가 다시 이 자리에 용기를 내고 나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너가 나를 찾을 때 내가 바로 대답할 수 있도록 내가 이 자리를 자비의 자리로 바꾸어놓겠다.
쉬고

[TOOK]

속죄소는 단순히 증거판을 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막아놓는 역할을 하는 뚜껑이 아니에요. 나는 너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해요. 죄를 용서하는 속죄소로 언약궤를 덮었어요. 왜 덮었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너와 나의 관계를 증거하는 이 증거물을 내가 보존하겠다. 너가 언제든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고 안심할 수 있도록 내가 지키겠다. 관계를 돌아보고 언제든 나에게 오면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겠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에요.
여호와의 언약궤를 고대 에티오피아어로 타보트라고 해요. 이것은 노아의 방주를 뜻하는 테바와 같은 단어에요.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죠? 고페르 나무로 만들고 역청으로 물이 세지 않도록 발랐어요. 방주에 탄 사람들과 동물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물이 세지 않도록 역청을 발랐잖아요. 그것처럼 하나님께서 증거판을 덮은 속죄소를 통해 ‘너가 다신 죄로 인해 죽지 않도록 내가 막아주겠다.’, ‘죄로 인해 너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가지 못하도록 내가 막을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거에요.
이스라엘은 성막이 아닌 언약궤를 만들며, 그리고 속죄소를 만들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말을 듣지 않는 백성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귀찮은 일까지 시키는 신이 아니구나. 아무 의미 없이 내부에 들어갈 가장 중요한 것부터 지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구나. 이것을 통해 우리를 나를 향한 그 사랑을 다시 깨달으라고 하시는 것이구나.
예배의 장소에만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릴 때 그 앞에서 머리만 숙이고 있는 겉모습의 예배. 형식의 예배가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 내면에서의 예배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구나. 그것을 점점 깨달아가기 시작해요.
이것을 우리도 동일하게 깨달아야 해요. 당시 언약궤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어요. 대제사장만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대제사장조차 마음껏 볼 수 없었어요. 대제사장들이 입는 옷을 보면 옷 밑단에 방울과 석류 모양을 섞어 달고 그리고 긴 줄로 묶고 나서 들어갔어요. 만약 대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죄의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면 그 앞에서 바로 죽었어요.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으면 줄을 당겨서 대제사장의 시체를 밖으로 꺼냈어요.
만약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미 죽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도 죽지 않아요.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휘장이 찢어진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잖아요? 예수님께서 직접 제물이 되어 휘장을 찢으신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 이렇게 나아 올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예배에 집중해야 해요. 죽지 않는 기회를 주신 것을 기억하며 집중해야 해요.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우리의 마음을 쏟아붓고 내용을 채워 나가야 해요. 우리 이런 기도 하잖아요. 한 주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은혜를 달라구요. 왜 그렇게 기도해요? 예배를 통해 나에게 공급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잖아요. 영적인 공급. 무한한 끊어지지 않는 영적인 공급을 알기에, 느끼기에 그러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 생각해요.
마귀는 이 영적 공급을 끊기 위해 아주 혈안이 되어 있어요. 영적 공급을 끊어버리는 것이 사탄의 주된 공격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죠. “피곤하지? 자. 설교가 시작되면 눈을 감아. 너 자는거 아무도 몰라.” “목 아프지? 마스크 써서 찬양하는지 안하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안 불러도 돼” “너 업무 마무리 안했는데 이렇게 예배 드려도 괜찮겠어?” 영적 공급을 끊어내는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마세요.
저는 삼국지를 좋아하는데요. 삼국지에 보면 마속이라는 인물이 나와요. 제갈공명이 마속에게 길에 다 진을 치라고 말해요. 그런데 마속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산 위에 진을 치라 명령해요. 그러자 부관들이 위나라가 산을 둘러싸고 우리를 포위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보급로 특히 물줄기를 끊으면 이길 수 없다. 우리는 끝이다. 라고 말해요. 그런데 마속은 뜻을 굽히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적의 움직임들를 쉽게 살필 수 있다. 라고 고집을 피우죠. 마속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위나라는 산 위에 진을 짓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가 보급로와 물줄기를 차단했어요. 그리고 마속과 병사들은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전투에서 지게 되었어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바로 이것과 같아요. 영적인 공급을 받지 못하도록 그 보급로를 끊어버리면 되거든요. 예배를 통해 영적 공급을 얻고 새 힘을 얻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공격하고 공격해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성막의 외관보다 안에 넣을 것을 먼저 지으셨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내가 너와 만나야 한다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삶의 성막을 짓고 그 중앙에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 이유는요. 하나님은 나의 삶과 전혀 무관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특정한 삶의 자리가 아니라 그 모든 삶의 자리에서 나를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하고 계셔요. 진짜 간절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만나기를 원하고 계셔요.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죄가 여러분의 마음에 밀려들어가지 못하도록 속죄소로 막고 계셔요. 여러분의 깊은 내면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마음 속에 다른 것들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싸우고 계셔요.
이제 저와 여러분이 반응 할 때에요. 우리 예배자잖아요. 각자의 삶으로, 그리고 마음에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잖아요. 예배자는요. 이미 용서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예배와 예배자는 구분될 수 없는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예배와 떨어질 수 없는거에요.
하나님께서 내 삶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계시고, 사망의 죄가 우리를 덮지 못하도록 막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했다면 우리 반응해야 해요.
삶의 성막을 세우고 중앙에 그 분의 자리를 내어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해요. 마음의 깊은 곳까지 예수님께 열어드리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일하실 자리를 기꺼이 내어드세요. 그리고 힘을 빼고, 그분을 받아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래요.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설교를 끝내려 해요. 찬양하기 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2-3분 묵상했으면 좋겠어요.
오늘 당신의 예배는 무엇으로 채워졌나요?
오늘 당신의 예배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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