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을 쌓는 순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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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인사와 환영
S1. 인사와 환영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은혜 충만하십시오’하고 인사 나누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도 조금은 주춤하고 이제 오미크론 변종이 확산되면 위드 코로나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런 작은 기대 속에서 올 겨울 우리 모두 영과 육이 강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깊이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은 아브람을 부르셔서 순종과 예배의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지난 주일에 데라의 족보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확인했었습니다. 그로인해 데라와 그의 자녀들은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란에 와서는 일정 기간을 머물렀습니다. ‘데라’라는 이름이 ‘달’이라는 뜻이고, 당시 우르와 하란이 달을 숭배하는 도시들이었다는 점에서, 데라는 하란이 자신의 거주지로 적절한 장소였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데라가 하란에 머물러 죽고 난 다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 그를 부르십니다. 우리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2장 1-3절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우리가 알고 있는 아브람에게 주신 이 복의 말씀은 스데반에 의하면 갈대아 우르에서 처음 주어진 것으로 아버지 데라가 죽고 난 다음 하란에서 다시 받은 말씀으로 보입니다. 하란에 머물러 있는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다시 그를 부르시며 그에게 복의 삶을 약속하시자 이 부르심을 따라 아브람은 조카 롯과 함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우리 4, 5절을 봅시다.
창세기 12장 4, 5절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우리는 아브람이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통해 하란 거주가 제법 긴 시간이었고, 이 삶이 성공적이어서 재산도 얻고 종들도 많이 얻었던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의 죽음 이후 쉽게 하란을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다시 가나안을 향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오신 하나님께서 더 큰 복, 곧 자녀와 미래에 큰 나라를 세울 것에 대한 큰 은혜의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브람은 하란보다 더 큰 복을 향해 자신의 현재의 성공을 뒤로 할 수 있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주실 은혜의 복이 지금의 삶보다 훨씬 더 위대해 보일 때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물론 이를 두고 아브람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일까 하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더 큰 복을 약속하지 않았다면 그가 과연 가나안으로 옮겨왔을까요? 개인 소유가 늘어나고 하인이 많아지는 하란의 복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민족을 이루고 열방의 복이 되는 더 큰 약속의 땅을 소망했다면 아브람의 믿음은 그저 복을 따라 다닌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참된 믿음이 순종의 삶으로 드러난다면, 아브람의 순종은 그저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 것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의문들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아브람은 아버지로 인해 하란에 머물렀지만, 하란에서의 성공은 가나안을 잊게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사후에 그는 그대로 두었다면 하란의 성공에 만족하여 가나안으로 향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란에서 아브람을 다시 찾아오셨고, 더 큰 복을 약속하시며 그를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아브람은 하란의 복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의 복으로 인해 길을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장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복의 약속으로 인해 그는 가나안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마음, 속성,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께서는 창조 이후 타락한 아담과 바벨탑으로 열방에 흩어진 죄인된 인류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창조주로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죄와 타락으로 인해 멸망의 길에 선 인류를 흩으시고는 이를 구원하시기 위해 새길을 여십니다. 그 길은 다름이 아니라 메시야를 세상에 보내실 제사장 민족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통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구속자로 아들 예수님을 보내실 것을 작정하셨기에 이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아브람을 택하셨고 다시 부르셨던 것입니다. 인간 아브람은 더 큰 복, 더 큰 약속 때문에 믿음의 길을 따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에서부터 아들을 통해 이 땅에 구속주를 보내실 계획을 지금 시간 속에서 성취하고 계신 것입니다.
J2.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아버지의 부르심에 순종하셨습니다.
J2.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아버지의 부르심에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하신 영원한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성을 소유하신 신이시기에 인류가 경배하고 찬양을 드려야 하는 믿음과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구원얻는 믿음을 성도인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 구원의 창시자로,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온전케 하시는 분으로 아버지께 순종하여 이 땅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0절을 봅시다.
히브리서 2장 10절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J3. 예수님의 순종에는 참 예배가 있었습니다.
J3. 예수님의 순종에는 참 예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창시하신 참 하나님으로 땅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을 때, 말씀에 따르는 삶을 너머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예배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경배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17장 1절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님은 말씀을 따르며,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아버지를 예배하고 경외하는 삶의 본질이 함께 하는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아버지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응답하셨습니다.
W1. 예수님은 아버지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을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신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붙들고 이기셨습니다. 우리 마태복음 4장 4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4장 4절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러한 예수님의 순종은 십자가를 위해 기꺼이 체포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른 제자에게 이 모든 것이 말씀을 응하기 위한 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3, 54절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3, 54절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W2. 이러한 주님의 순종에는 참된 예배가 함께 했습니다.
W2. 이러한 주님의 순종에는 참된 예배가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실 때 마지막 죽음의 순간조차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입니다.
마태복음 23장 46절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오늘 본문의 아브람도 비록 순종의 동기는 더 큰 복을 찾아서이긴 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본문 7-9절의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2장 7-9절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W3.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참된 예배와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W3.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참된 예배와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은 예배와 함께 하는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행하는 순종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제단을 쌓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참 예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삶과 예배의 삶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배와 삶을 분리하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아모스 5장 22-24절 입니다.
아모스 5장 22-24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치 신학자들은 이 말씀이 교회가 사회의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씀이라고들 해석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참된 제사, 참된 예배는 이웃을 향해 사랑의 정의를 행하는 열매를 통해 그 진실성이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순종하는 삶은 바른 예배를 드리는 삶이고, 바르게 예배하는 자는 사랑을 행하는 참된 순종의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삶은 예배의 자리에서 결정납니다. 참 예배에 참여한 자만이 진정한 말씀 순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T1. 아브람은 부르심의 은혜를 통해 참된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T1. 아브람은 부르심의 은혜를 통해 참된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람은 원래 우상을 숭배하는 자로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불러 주심으로 그의 생애는 참된 순종의 길을 걷는 삶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신 아버지의 복된 약속은 아브람을 세상에 머물러 살지 못하고 주님 나라를 향한 새로운 소망의 삶을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음성은 아브람의 마음에 이전에 믿고 살던 우상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케 하여 온 땅에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감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의 것에 매여 사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붙들고 영원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새로운 삶이 그의 인생의 소원이고 꿈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로 달려가던 중에 자신을 부르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도 바울을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은 그가 걷던 박해와 핍박의 길을 멈추었고 생명의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저도 대학교 4학년을 보내며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던 시절에 마음 속에 주신 놀라운 도전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편리함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헌신하라’는 말씀이 저의 마음에 찾아왔을 때 저의 인생은 청소년 시절의 모든 계획을 바꾸고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부르심의 본질을 알아가는 저의 삶은 힘이 안드는 것은 아니지만, 소망과 희망을 노래하는 삶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하는 삶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중에 내 영이 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T2. 세상은 주님의 부르심을 모르기에 예배와 순종을 알 수 없습니다.
T2. 세상은 주님의 부르심을 모르기에 예배와 순종을 알 수 없습니다.
순종하는 삶, 말씀을 믿고 따라 사는 삶은 내 힘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나의 지식과 나의 학문이 말씀의 삶을 열지 못합니다. 바울의 학문이 그의 눈을 열지 않았습니다. 저의 지식도 저의 길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음성이, 우리를 찾고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이 순종을 알고 예배를 알게 했습니다. 참된 순종, 말씀을 따르는 삶이 온전한 예배의 삶에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지금도 예배를 방해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섬김이 예배에 있는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은 그렇게 교회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T3. 성도는 부르심 안에서 참된 순종과 예배의 삶을 살게 됩니다.
T3. 성도는 부르심 안에서 참된 순종과 예배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는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기에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 그 본질의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는 삶이 있음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과 같이 하란에서 멈출 수도 혹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멈춘 그 자리에서 다시 나를 부르시고 약속의 땅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부르심 안에서 참된 말씀 순종과 온전한 예배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진정한 은혜가 되어서 우리를 순종으로 이끌고, 주시는 약속은 우리를 예배로 인도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길은 순종과 예배입니다. 참된 순종, 곧 부르심의 말씀을 따르는 길은 온전한 예배와 그 말씀을 향한 순종이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부르심 안에서 예배와 삶은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게 주신 부르심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이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준비된 예물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와 함께 하는 삶입니다. 하박국의 경고와 같이 하나님의 소유인 예물들을 도둑질하고 감사의 마음을 겉치레로 내버린 예배는 그 자체로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의 삶은 참된 예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듣고, 경외와 두려움으로 경배의 삶을 살 때 성도의 인생 길은 참된 순종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주님이 사신 모습에 맞추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에도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길 줄 아는 참된 예배자로 사셨고 또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삶은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비록 부족했지만,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부족한 중에도 가나안을 향해 출발했고, 다시 찾아오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하란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으며 오실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계시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온전히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예배의 삶을 사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참된 예배를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죄인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순종하시며, 참으로 아버지를 경외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부름에 순종하여 믿음의 길을 온전하게 걸어가는 참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단 찬송
결단 찬송
446 주 음성 외에는
446 주 음성 외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