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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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한인교회에 한 사람이 찾아와 목사님께 “목사님, 지금 저의 심정은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는 것 같습니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갈급함을 채워줄 교회를 찾기 위해 시드니의 수많은 교회를 찾아다녔지만 그런 교회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아직까지도 찾지 못해서 이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그 사람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사실 목사님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십중팔구는 다음 세 가지 중 한 가지 반응이 옵니다.
우선 ‘아직 우리 교회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래요’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교회가 어떻게 다른 교회와 다른지 열심히 설명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설명을 듣고 설득이 된 경우는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듣는 말은 ‘교회들이 다 그렇죠. 특별히 좋은 교회가 어디있겠습니까?’라는 말입니다. 결국에는 아무리 돌아다녀봐야 쓸데없는 일이니까 그냥 그 교회에 오라는 결론으로 끝나곤 합니다.
마지막은 제가 하도 교회를 자주 옮기다보니 반 경계심, 반 귀찮음으로 대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혹시 제가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사람은 아닌지, 혹은 어차피 다른 교회로 갈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 분이 이렇게 말하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지는 무슨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를 생각할 때 자주 마음 속에 떠올리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골로새서 3장 16-17절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목사님이 생각하는 좋은 교회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라며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그 분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각자 생각하는 좋은 교회의 기준이 다 다르겠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골로새 교회는 좋은 교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가 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으니 인사치레로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나온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걱정 되는 교회가 있는데 골로새 교회는 항상 감사가 먼저 나왔다고 말하니 골로새 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골로새 교회가 어떠했기에 바울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가 넘쳤는지 살펴보고, 우리교회도 이와 동일한 은혜가 있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첫째로, 좋은 교회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습니다.
첫째로, 좋은 교회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습니다.
4절과 5절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로새 교회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믿음, 소망, 사랑이 있다는 것은 교회를 향한 놀라운 칭찬입니다. ‘대구청구교회에 믿음이 있고, 소망도 있고, 사랑도 있더라’ 이런 칭찬을 누군가 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지금 골로새 교회가 이런 칭찬을 사도로부터 들은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예수님과 연합하여 예수님 안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가진 사랑이 모든 성도를 향해 있다고 말합니다. 내 마음에 들고, 나와 친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골로새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적 가족인 형제 자매들을 소중히 여기고, 친절하게 대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믿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던 또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소망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과 사랑의 근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관된 소망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늘에 보관된 소망 때문에” 믿음과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소망으로 인하여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쌓아 둔 것은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 하늘에 소망을 보관해 두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미래에 소망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소망을 보관해 두셨다고 하셨으니 이 소망은 막연하거나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보관해 두신 소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우리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도의 기업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몸의 부활, 디모데후서의 의의 면류관, 디도서에서 말하는 영생이 모두 소망입니다. 지금 이 모든 것이 하늘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하늘에 보관된 모든 소망을 받아 누리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굳건히 서고,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듯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과 사랑이 하늘에 보관된 소망에 근거하여서 우리 교회의 노년에서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충만해 우리 교회도 골로새 교회처럼 좋은 교회라 칭찬받고 인정받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처럼 좋은 교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우리 안에 무언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결과입니다.
둘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복음의 열매입니다.
둘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복음의 열매입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복음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 하반절에서 6절 말씀입니다.
“…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진리의 복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복음을 성도들이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자 그들에게서 열매를 맺고, 더 나아가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간다고 말합니다. 이 복음의 열매가 바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는 참 좋은 교회였지만 그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단 때문이었습니다. 이단의 미혹과 위협이 골로새 교회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골로새서가 쓰여질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체계적인 교리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다 보니 구약성경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기초가 매우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으니 이단의 미혹은 골로새 교회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요소였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 교회는 아주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복음의 열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진짜 복음은 어떤 이단의 공격이나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교회를 지키고 성도를 지킵니다. 골로새 교회가 진정한 생명의 복음을 가진 교회였다는 증거 중 하나는 복음의 증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사는 증인이 있었습니다. 그 증인 중 한 사람이 빌레몬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회 건물을 지어놓고 예배드린 것이 아니라 성도 중 한 사람의 집을 교회로 삼고 그곳에서 모였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모였던 장소가 빌레몬의 집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를 쓰면서 함께 빌레몬서도 썼는데,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는데 큰 재정적 손해를 끼치고 도망을 쳤습니다. 당시 도망친 노예는 누구든지 잡아서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가 복음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알고, 빌레몬도 신실한 성도인 것을 알았기에 오네시모에게 다시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아가라고 하면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거듭났으니 이제는 종으로 여기지 말고 형제로 여겨달라’고 편지를 보낸 것이 빌레몬서입니다.
성경에 이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전승에 의하면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맞아들이고, 신앙으로 더 양육해서 에베소의 지도자로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빌레몬은 집사였는데 도망친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지도자로 세우고 그를 섬긴 것입니다. 이 일이 소아시아에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복음이 뭐길래, 예수를 믿는게 뭐길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는 아름다운 소식이 된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금산교회의 조덕삼과 이자익 이야기입니다.
조덕삼은 금산에서 장사를 해 큰 돈을 벌어 잘 사는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이자익은 남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친척집에 살며 일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자익은 열 두 살에 집을 나와 무작정 금산으로 갔는데, 금산에는 평야가 넓고 농사짓는 집이 많아서 머슴 살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자익은 금산으로 가던 길에 조덕삼을 만나 그 집 마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테이트 선교사가 선교하던 중 금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마침 조덕삼의 마방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 테이트 선교사에게 조덕삼이 먼저 찾아와 복음을 듣고 회심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금산교회는 조덕삼 집 사랑채에서 모이고 있었는데, 교회가 성장해서 새롭게 예배당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1909년 교회에 시험거리가 생겼습니다. 장로 선출 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워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장로 후보가 조덕삼과 이자익이었는데 선거 결과 이자익이 선출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덕삼은 결과에 승복했고, 자기 집 마부였던 이자익을 장로로 섬겼습니다. 이후 장로가 된 조덕삼은 선배 장로 이자익이 신학 공부하는 것을 후원했고, 이자익은 금산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도 조덕삼 장로는 변함없이 교회와 이자익 목사를 잘 섬겼다고 합니다.
어떻게 빌레몬이나 조덕삼이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들 안에 심겨진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은 그냥 듣고 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능력입니다. 복음이 마음에 심기면 말이 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우리 삶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복음을 주일마다 들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기만 했지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직분자라고 하면서, 심지어 목회자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처음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예수 믿는다는게 별로 어려운게 아니고 그냥 교회만 나오면 되고, 삶은 이전과 다른게 없는 것이구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마다 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복음의 열매를 맺어 나간다면,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그 누구든 우리를 보고 ‘예수 믿는 건 저런 것이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저런 삶을 살아가는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진짜 십자가의 복음을 얻었다면, 복음의 열매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던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빌레몬의 집을 드나들었겠습니까. 금산교회 성도들 역시 조덕삼과 이자익의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았겠습니까. 빌레몬의 가정과 조덕삼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성도들이 다 보았습니다.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지도자로 세우고, 마부 이자익을 선배 장로요 목사로 섬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성도들이 깨닫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해야한다는 설교를 들은 것이 아니라, 복음을 깨달아 복음의 열매를 맺고 그렇게 살아내는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눈으로 복음의 열매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복음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먼저, 장로님 먼저가 아니라 지금 이 말씀을 이 자리에서 들은 여러분 각자가 먼저 하시길 바랍니다. 어디서 자리 깔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믿음을 나누고, 소망을 나누며, 사랑을 나누어 가시길 바랍니다.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아서 어렵겠지만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서로의 삶을 보며 서로 서로 확인하시고, 때로는 실패하는 것을 보면 기도해 주고, 기다려주면서 소망을 가지고 믿음과 사랑의 삶을 함께 살아내자고 격려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복음의 열매가 맺어져 내가 먼저 그 삶을 누리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누리고, 나아가 우리가 전도해야 할 이웃들에게 복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좋은 교회에 다니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