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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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이다
[서론]
저는 어릴적 인생 계획표를 세우곤 했습니다.
그 계획표에 의하면 지금 저는 대통령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목회자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릴적 인생 계획표는 어땠습니까?
그 계획표에 따르면 여러분은 지금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나요?
소위 ‘성공한’ 사람인 유재석은 인생 목표가 없다고 합니다.
그냥 하루 하루 주어진 일에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다른 성공한 사람들은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목표, 비전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에게는 그 목표와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분들이 좋아하는 말씀은 이런거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가 임의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그냥 하루 하루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좋아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안개같은 인생인데 큰 계획을 세워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워야할까요?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야할까요?
둘다 믿음인것 같은데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본론]
믿음이란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정의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싫어하는 반응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시고 난 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안식일을 어긴 예수님이 오히려 자신들의 무지함을 깨우쳐주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믿어왔던 것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인생관, 세계관을 바꾸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또다른 반응은 실망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병을 고쳐주고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들을 보고는 바로 이 분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빵 5개,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였으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어떻게해서라도 자신들의‘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때쯤 예수님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영생을 주는 ‘빵’이라고 가르치자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자신들을 괴롭히던 병이나 고쳐주고 먹을 것을 줄 그런 메시아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신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제자들이 실망하고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런 실망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 필요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필요를 위해 믿는 예수님이라면 어느 순간 우리는 실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말을 잘듣는 램프의 지니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기적을 많이 체험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미워하며 떠나갔습니다.
자신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라서 실망해서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여론이 나빠지자 예수님은 생명의 위협을 받기 시작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지방에는 돌아다니시기 힘들어 지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고향 갈릴리 주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물론 갈릴리도 분위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초막절은 9월말, 10월초에 있는 이스라엘의 최대명절중 하나입니다.
일주일간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지내야 하기에 초막절이라고 부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광야 40년동안 자신들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또한 한 해동안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명절에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모이게 됩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바로 이때다 싶었습니다.
자신들의 형을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실망하고 떠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초막절을 명예회복의 기회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 명절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형,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면 떠난 제자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3절입니다.
형님은 여기에서 떠나 유대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이 하는 일을 보게 하십시오.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님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어차피 기적들을 행하고, 고상한 가르침을 전하는 게 알려지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으면 명절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다시 얻을 기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 좁은 시골무대에만 있지말고 더 큰 무대에서 인정받으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동생들은 형 예수님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요?
5절입니다.
예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의 동생들은 자신들의 형이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봤습니다.
그래서 더 큰 무대에서 자기 형이 능력을 펼치기를 바랬을 뿐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무엇이 그들의 문제였는 지 알 수 있습니다.
6절입니다.
내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의 때는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
형제들이 생각하는 때와 예수님이 생각하는 때가 다르다는 말입니다.
형제들이 생각하는 때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때를 말합니다.
반면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때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때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면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때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때는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버림받아 십자가를 짊어지실 때 입니다.
‘때’라는 단어는 같은데 의미와 목적이 완전히 다릅니다.
과연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믿음을 원하실까요?
먼저,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의 때에 순종하며 사는 믿음입니다.
세상은 자꾸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많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세우고,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을 강조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아니라 내 욕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겉으로는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포장합니다.
그렇지만 속을 까보면 내가 세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예수님이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세운 계획이 성취되면 내가 영광받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계획이나 목표없이 하루 하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꿈과 비전,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모든 것을 순종하며 움직이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계획이 내 계획이냐, 하나님의 계획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계획을 세우면 나의 나라가 세워지고 내가 영광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말하지만 내 욕심이 자꾸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럴경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계속해서 구해야합니다.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언제든지 그 방향을 바꿔야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동생들의 동기가 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형인 예수님이 제대로된 평가를 받기를 바랬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형님이 잘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을 뿐입니다.
우리도 얼마나 이런 실수를 많이 합니까?
좋은 기회가 생겼다 싶으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합니다.
뭔가 안풀리고 꼬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둘다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조건이 안 좋아도 하나님의 뜻일 수 있고, 조건이 좋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고,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요셉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형들에게 속아 노예로 끌려간 최악의 삶이었지만 나중에는 자기 가족과 한 나라를 살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사람들에게 미움받아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봐야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또한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세상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이 생각한 방식은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한방에 유명세를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인 왕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방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그것은 내가 세상을 보고서 그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원하는 메시아는 기적을 행하는 메시아, 병고쳐주고 빵을 주는 메시아입니다.
이것보다 좀더 고상한 사람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이런 메시아는 세상 사람들의 욕망에 conform한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할리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환영받는 메시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치유와 빵, 정치적 해방을 주는 그런 환영받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십자가에 죽는 메시아입니다.
교회 목회자들도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책을 쓰거나, 방송에 나와 유명해지면 교회가 인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방송에 나오기 위해 많은 돈까지 쓰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tv보십시오.
대부분 돈많고 유명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어떤 그럴듯한 핑계를 댈지라도 세상방식을 쓴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음악하는 사람들도 살다보면 이런 유혹 많이 받습니다.
힘있는 사람에게 붙으면 기회가 더 많이 생기거든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보여줄 기회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의 방식일 뿐이지, 주님에 속한 사람의 방식은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십시오.
10절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명절을 지키러 올라간 뒤에, 예수께서도 아무도 모르게 올라가셨다.
여러분 중에 성경을 꼼꼼하게 읽으신 분은 이런 의문이 있으실 것입니다.
8절에서 예수님은 이번 명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왜 10절에서는 올라가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형제들이 원하는 세상 방식대로는 올라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형제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이 움직이신다면 예수님은 세상의 말에 순종한 것이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형제들의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이 원하던 메시아로 오해해서 왕으로 삼으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밀리에 움직이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아무도 모르게 행해야 합니다.
선행을 행하면서 세상이 모르게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법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감동이 있는 법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영국의 ‘찰스 스펄전’이라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대형 교회를 담당하셨는데 부업으로 닭을 키워 계란을 파셨습니다.
사람들은 돈욕심이 많아서 그런다고 욕했습니다.
왜냐하면 한번도 공짜로 누군가에게 계란을 준 적이 없어서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돌아가시고난 후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알고보니 그 계란을 판 돈으로 과부가 된 여인들을 돕고 계셨던 것입니다.
욕한 사람들이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선행이란 이처럼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나와 주님만의 은밀한 기쁨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아무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주님의 은밀한 일이 있으신가요?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사람의 때가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때는 성공한 듯 보여도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의 때는 실패한 듯 보여도 성공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의 시간표에 하나님을 맞추려 하는 시도만큼 위험한 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에 나를 맞추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내 힘으로 내가 세운 나라는 쉽게 무너지고 말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는 견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줄 아는 사람은 세상 방식에 목매지 않습니다.
세상 방식은 우리에게 강력한 유혹입니다.
사람들이 다 하는 방식이고, 매우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도 어렵지만 하나님 방식대로 사는 믿음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기다립시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도전에 어떤 반응을 할 것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반응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한주동안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