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창조, 부름받은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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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과학
신앙과 과학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설명하는 말 중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 다들 들어보았죠? 포스트모더니즘과 4차 산업혁명이 가리키는 변화가 각기 다르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신앙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낸 놀라운 변화를 가리키는데요, 정말 이전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이 시대에 점차 구현이 되가고 있습니다. 놀라운 기술의 발전과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의 실용화라는 주제를 생각하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웃긴 짤이 생각났습니다. 잘 보일지 모르겠는데, 사진 좀 띄워주세요. 2008년이면 실제로 제가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요, 당시 말년 병장이 몰래 가지고 들어온 햅틱 핸드폰을 보면서 비슷한 대화를 나눴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무튼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그것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더욱 편리하고 윤택해진 것은 과학 기술의 발전 덕분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주어지는 혜택과 과학을 연결시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참 쉽습니다. 대부분이 이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지 않지요. 하지만 우리의 신앙과 과학을 연결시켜 본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바른 신앙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과학을 통해서 배우고 접하는 내용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았을 겁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왠지 모르게 신앙과 과학을 함께 연결시킨다고 하면 이 시대의 교회에 대한 압박 속에서 신앙의 중심과 지조를 지키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참 풀기 어려워보이는 딜레마입니다. 과학이 주는 혜택은 누리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과학이 밝혀낸 내용들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하다니요. 과연 신앙과 과학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영원한 원수 같은 것일까요? 오늘은 과학과 신앙 간에 가장 큰 쟁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창조의 주제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사실 한 번의 설교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다 알아볼 수도 없고, 창조의 주제에 대해 과학과 신앙 간에 벌어진 쟁점에 대해서도 다 살펴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 우리가 성경을 통해 읽어내야 하는 것에 집중할테니, 이 주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겁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
하나님의 천지 창조
성경의 제일 첫 책은 창세기이고, 성경의 제일 첫 절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위대한 선포로부터 시작합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리고 우리가 오늘 다 읽지는 않았지만, 1장 전체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창조하셨는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2장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동산을 맡은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 쓰여 있구요. 문제는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이 지금껏 과학이 밝혀낸 것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16절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창 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여기에 나오는 두 큰 광명체는 해와 달을 말합니다. 광명체는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을 뜻하구요. 그런데 달이 항성이 맞나요? 달은 밤에 빛을 내기는 하지만 태양 빛을 반사하는 태양계에 속한 행성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벌써 성경의 텍스트와 과학이 발견한 내용 간에 심각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찾아볼까요? 11절과 12절에서는 채소와 나무들, 20절부터 22절까지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물과 하늘에서 살아가는 생물들, 24절과 25절은 땅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창조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절부터 28절까지는 이 모든 것들과 구분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요. 성경이 증언하는 것을 그대로 읽어보면 모든 생물이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곰은 곰으로, 참치는 참치로, 메뚜기는 메뚜기로 처음부터 딱 그 모습과 그 습성대로 창조된 것이지요. 하지만 과학이 밝혀낸 것에 따르면 지구의 모든 생물들은 처음부터 그 모습과 그 습성대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공통된 조상으로부터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과 습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성경이 틀렸고 과학이 맞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현타에 빠지고, 또 눈에 불을 켜고 분노하며 달려들 몇몇 청년의 모습이 예상이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과학이 틀렸고 성경이 맞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저 스스로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과학이 주는 혜택은 누리면서도 과학이 밝혀내고 그동안 한 번도 반박된 적이 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모순적인 존재가 되겠지요.
우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성서가 어떤 책인지부터 조금 살펴봅시다. 여러분 성경이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진리를 담은 책일까요? 아니면 영적인 진리, 혹은 하나님에 대한 것을 담은 책일까요? 지난 주에 이야기 한 것처럼,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본분의 기준이 되는 영적인 진리를 담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부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에 대해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만드신 책인데 어떻게 오류가 있을 수 있냐며 이 성경이 증언하는 모든 내용은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오류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성경과 성경이 만들어지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조금은 편협한 생각으로부터 나온 주장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경이 만들어지도록 인도하신 놀라우신 섭리에 대해서 우리는 ‘성서영감설’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부릅니다. 그리고 ‘성서영감설’에는 여러가지 견해가 함께 있는데, 그 중에서 앞서 말한 좁은 시야를 가진 성서영감설을 ‘기계적영감설’이라고 부르지요. 기계적영감설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글자 하나하나를 기계처럼 받아 적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성경이 이렇게 쓰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불러주신 것이기에 모든 면에서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여겨요.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이 쓰여질 때 이런 식으로는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이 쓰여질 때는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뤄가시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적으로 다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대하세요. 성경이 쓰여질 때 하나님은 인간의 인간됨을 즉,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가지고 있던 저마다의 성격이나 재능이나 교양, 문체, 용어들을 최대한 활용하셔서, 비록 인간의 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긴 하지만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저마다의 저자가 그들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문화 속에서 하나님에 대해 기록한 기록들의 모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자들이 속한 시대적인 한계를 인정해야 해요. 창세기의 경우에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후대의 일이긴 하지만, 그 뼈대가 되는 내용들은 아마 모세와 그 이전의 조상들로부터 구전되어 내려왔습니다. 최소 대략 기원전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내용들이죠.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인 지식이 없었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밝혀진 사실들을 알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기록한 모든 기록이 틀렸고, 전혀 가치가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비록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 과학적인 부분에서 오류가 보이긴 하지만, 그들이 믿고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기록한 것들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성경은 과학책이 아니라는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에서 과학적인 오류가 발견된다고 해서 전혀 당황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특히 창조에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과학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고 경험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어떤 분으로 드러내고 계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을 다시 한 번 바라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계셔서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진리를 처음부터 강력하게 선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현대 과학은 세상이 빅뱅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무신론에 대한 근거는 될 수 없어요.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인간이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물리적인 작용도 없는 이 영역에 대해서는 인간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이 말하는 무신론 또한 사실은 그들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뭉뚱그려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성경이 증언하는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가, 아니면 신은 존재하지 않고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믿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양쪽 모두에게 과학적인 근거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 여러분 괜히 과학을 근거로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지 맙시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을 이어서 볼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어두컴컴한 가운데 아직 아무런 형태도 없이 뒤죽박죽으로 존재하던 이 세상을 질서있는 모습으로 조성해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3절부터 25절까지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계획하신 질서에 따라 세상을 조성해가시는 모습을 고대 근동의 세계관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3절부터 25절까지의 긴 텍스트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원래의 형용사 “טוֹב”는 좋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선하다, 아름답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보시기에 좋고, 선하고, 아름답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질서있게 조성하셨다는 뜻이지요.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이렇게 좋고, 선하고, 아름다운 질서를 가진 분이시자, 이 세상을 그렇게 질서있게 만드신 분이라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또 한가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구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인데요, 이 구절이 또 많은 논란이 됩니다. 이 구절에 과학적인 진리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비판하며 모든 생물들이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지요. 하지만 청년 여러분, 아까 말했던 것처럼 창조의 기사를 가지고 과학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예요.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있다는 점을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래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이어서 26절부터는 인간의 창조가 나옵니다. 특이하게도 인간의 창조는 다른 생물들의 창조와 다릅니다. 다른 생물들은 그저 “있어라!” 말씀하시니 그것이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에 비해,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전에 특별한 선언을 하시고 창조하시지요. 또한 다른 생물들은 말씀으로만 창조하시는 것에 비해, 인간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직접 빚어서 만드셨습니다. 여기에 담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자세히 좀 살펴봅시다.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신의 형상”이라는 개념은 고대 중동 지역에서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개념이었는데요,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에게 사용되던 칭호였습니다. 이 신의 형상이라는 단어는 당시 왕들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아서 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는 자들 즉, 신적인 권위와 능력을 가진 자들임을 지칭하는 말이었지요. 놀랍게도 성경은 왕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으신 목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실제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인간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자로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통치를 대행하는 자라는 말보다는 청지기라는 말을 많이 쓰죠. 그리고 처음부터 인간이 번성하여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이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계획하셨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특별하게 지어진 존재이자, 동시에 만물을 향해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할 책임을 가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에게는 세상을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곳, 선한 곳,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어 갈 책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계속해서 “하나님”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이 이제는 좀 인식이 되죠? 인간을 창조하신 기사에서도 “진짜 흙으로 만들어진게 맞나?” “진화론은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생물이 최초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를 거듭해서 생겨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하며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이 책은 과학책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서 읽어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한 책임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 여러분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그 특별한 책임을 잘 수행해가고 있나요? 성경은 인간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증언합니다. 최초의 인간으로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일에서부터 그 일이 시작되는 것으로 이야기하지요.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 이러한 영적인 진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지를 다 잊은 채 살아가는 인간들에 의해 세상은 점차 황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과학 기술이 놀랍게 발전된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 세상이 인간의 손에 의해 더욱 극심하게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과학 기술이 이루어 놓은 놀라운 업적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들이 타락한 인간들,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치료제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우리가 전쟁에서 얼마나 인간들을 더 손쉽게 더 많이 학살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과학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우리가 자연을 얼마나 더 빨리 더 끔찍하게 훼손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과학은 우리의 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우리가 누구로부터 이 세상에 왔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인지 설명해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가 누구로부터 왔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인지 깨닫게 해줄 수 있을까요? 단순히 깨닫는 것 뿐만이 아니라 무엇이 죄로 인해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권세와 능력을 갖추도록 할 수 있을까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러한 회복이 일어난다고 증언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우리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부름받은 청지기
부름받은 청지기
오늘 우리가 창세기 1장을 통해 읽어낸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선하게, 아름답게 질서를 조성하셨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져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청지기입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하여 이러한 것들을 망각하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권세와 능력을 잃어버린채 살아가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권세와 능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진리를 아는 자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처음부터 계획하셨던 일을 이루어가시고자 합니다. 어떤 일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온 땅에 가득하여, 우리가 서 있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질서대로 이 세상이 계속해서 가꾸어지고, 이러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좋으심과 선하심과 아름다우심이 드러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일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시되, 우리가 충분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권세와 능력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만 우리가 이러한 일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롬 8:19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타락한 인간의 손에 의해 고통 당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가 이러한 일을 이루어가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에게 맡겨진 이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해봅시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부름받은 청지기입니다. 오… 하나님 보잘 것 없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은혜로써 하나님 앞에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그 부르심에 충성할 수 있도록 모든 능력과 권세를 덧입혀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부르심에 응답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