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노래

시편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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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여러분은 아침을 어떻게 맞으시나요? 자고 깨고의 시작은 하루를 결정합니다. 어떻게 시작했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평화로운 날의 아침은 참 즐겁고 행복한 시작과도 같습니다. 하루가 기다려지고, 희망이 있는 하루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아침은 그리 행복한 하루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의 고단함과 수많은 문제 거리들, 코로나 19로 인한 외적, 내적 어려움들이 우리를 에워싸서 도망갈 곳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아침을 맞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이러한 아침 속에서 여러분은 하루를 어떻게 이겨내실 건가요? 오늘 시편의 저자는 그 누구보다 문제들로 사방으로 에워싸인 상황 속에서 개인적인 애통을 담은 시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애가 속에서 시인은 소망을 느끼고 있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보는 우리에게도 자신을 따라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배경 : 이 시편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겼던 때에 지은 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은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도망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내외적인 문제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고난과 역경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봅니다. 아들의 배신과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배신은 신하들의 비방과 배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시 속에서 그를 비방하는 소리는 대개 그의 신하들이 한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시의 단어와 청원하는 글을 보면 이 시가 군사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구원과 구출을 구하는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다윗에게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까요? 이 문제는 밧세바의 사건을 기반으로 합니다. 우리아의 살인과 밧세바와의 동침으로 인한 죄의 징계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징계가 어떠한 결과를 줄지는 모르지만 다만 아파할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을 뿐입니다. 그래서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파하며,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시의 구조 : 시편 3편은 4편과 한 쌍을 이룹니다. 3편은 위험한 밤을 지내고 다시금 위험이 다가올 하루를 맞는 시인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원하며 시작합니다. 4편은 위험한 밤 속에서도 자고 깨고 할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는 시입니다. 두 시편 모두 곤경에 처한 사람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시편에서는 대적이 모두 시의 저자를 비방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방을 하나님이 부끄럽게 하시며, 억울함을 갚아 주시는 분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의로하며 청원하는 일을 합니다.
1-2절 벌떼같이 일어나는 원수들에 대한 탄식 A
3-4절 방패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 B
5-6절 천만 대군에게 둘러 싸여도 단잠을 자는 시인 B`
7-8절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길 구하는 시인 A`
이 구조를 통해 1-2절과 7-8절은 연결이 되어 원수는 구원이 없다고 하지만, 시인은 구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원수들은 시인에게 수치를 주고 조롱하지만 주님께서는 원수들의 뺨을 치시고, 그들의 이를 부러트리시는 분임을 찬양합니다. 또한 중반에 자리 잡은 3-4절과 5-6절은 평행을 이루며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수들은 시인을 공격하기 위해 일어났지만 시인은 확신가운데서 누워 잠에 듭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1-2절 벌떼같이 일어나는 원수들에 대한 탄식 A
1연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의 대적에게 시인은 둘러싸여 있고, 대적은 악한 말로 시인을 절망시키는 상황가운데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얻지 못한다”며 시인을 조롱합니다. 이 말은 “너는 지금까지 이겨왔지만, 너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연대도 너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군사적인 규모는 상당히 강했습니다. 시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적, 원수, 악인들이라고 1,7,8절이 밝히고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적대감정과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지금까지 시인을 대적하는 왕의 원수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들의 규모와 내적이며 외적인 수를 보고 “어찌 그리 맣은지요”라고 탄식할 정도였습니다. 이 탄식은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수가 몰려오는 상황 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을 정말로 힘들게 만든 것은 사람들의 비방이었습니다. 그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삼하 16:7-8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하나님이 너의 죄 때문에 너를 버렸다고 거짓 비방은 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그의 족속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비방은 하나님과 다윗의 연대를 부정하는 조소였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크게 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1절 초반부터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비방이 그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있기 때문에 “오 여호와여”로 시작합니다. 그가 찾은 살 길은 자신의 친위대나 군대나 가족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찾은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적용 : 우리도 동일한 상황을 겪습니다. 사람들의 비방에 우리의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내가 원하지 않는 대적적인 상황이 생겨 나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이 원수가 되어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대상이 자녀가 될 수 있고, 부부가 될 수 있고, 친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다윗에게 이런 일이 생겼듯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이러한 상황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는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1절은 오 여호와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고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호소의 대상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하면 격정적인 아침을 맞을 힘이 우리에게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3-4절 방패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 B
애통-애가로 시작된 시편 3편은 이제 확신의 시로 전환이 됩니다. 원수들의 공격과 의문을 뿌리치며 하나님을 찾을 때 모든 문제가 반전을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점점 늘어가는 천만 적군 앞에서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에게는 어떤 반전이 있었나요?
3절은 강한 반의어로 시작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생략이 되어 있지만, 원어와 영어 성경에는 그러나가 나옵니다. 시인은 애통에서 확신으로 강한 전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는 앞의 내용을 부정하고 상반되는 내용을 전개할 때 사용합니다. “너무나 많은 대적들이 자기를 대적하고 비방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으로 자신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3절)”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한없는 추락을 겪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영광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를 막아 줄 수 있는 막강한 힘과 방패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무방비 상태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든다는 것은 왕을 볼 수 있는 직분이 있는 것인데 그는 어떠한 직분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상황과는 다르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광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며,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방패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방패는 한 면만을 막는 방패가 아니라 사면을 메꾸는 방패입니다(원어는 에워싸는 방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기셔서 다시금 자신에게 직분을 회복시키시는 군사적인 승리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용 : 무엇이 다윗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어나게 했습니까? 여러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일어나셨나요? 다윗은 시선을 대적들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한 일이고, 이 것이 믿음의 ‘그러나’를 사용하게 한 힘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대처 방법과 전략을 생각한다는 명목 하에 상황만을 주목하게 된다면 우리의 상황과는 반전되는 ‘그러나 하나님은’을 사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주목할수록 우리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평안을 누리는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삶의 환난과 고통 속에서 취해야 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4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요일 5:15 15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게 부르짖고,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찾고, 부르짖으십시오. 또한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낮추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높이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벧전 5:5-7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를 온전히 높이실 하나님을 바라십시오. 하나님을 의뢰함이 모든 반전의 시작입니다.
5-6절 천만 대군에게 둘러 싸여도 단잠을 자는 시인 B`
시인은 군사적-전쟁의 상황에서 주님의 응답에 대한 확신으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1-2절에서는 비방으로 공격했다면 이제는 천만인이 그에게 쳐들어오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고 고백하며 아주 잘 자고 있습니다. 상황은 종료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쟁터 한 가운데서 그가 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연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그늘 아래서 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대적들의 비방과는 다르게 그는 안전을 누리고 있습니다. 4절의 말씀처럼 수많은 대적이 에워싸서 진을 친다 해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했던 “하나님도 너를 돕지 않는다”는 그들의 비방은 거짓비방으로 밝혀졌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쟁 중에도 안전함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욱 강하게 에워싸 진을 쳐도 그는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잠을 잡니다. 전쟁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죽음과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자는 것은 죽어서 자는 것이나 승리해서 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용사,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실 때는 전쟁터에서도 평안한 가운데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적용 및 코칭 : 여러분은 잠을 잘 수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평안하실 수 있으신가요? 우리는평안을 쉽게 잃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 단잠을 자며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그늘 아래 사는 사람의 삶이 이와같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단잠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실 때, 풍랑을 맞았습니다. 제자들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를 완전히 신뢰하고 계셨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도 하셨지만, 육체를 가지신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주무십니다. 이런 전쟁의 소용돌이와 아수라장 속에서 다윗이 보여주는 모습은 고요와 확신입니다.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고백한 다윗은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깁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두려움을 이기라 말씀합니다. “요일 4:18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랑함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참된 신자, 영동제일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합니다.
7-8절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길 구하는 시인 A`
이제 다윗은 외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시인의 전쟁에 개입하심을 청원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말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했던 말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에 진을 치고 있던 곳에서 움직일 때 앞길을 먼저 가셔서 대적들을 정리하시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민 10:35-36 35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이처럼 옛적에 주님께서 법궤를 전차처럼 타시고, 이스라엘의 모든 원수를 물리치신 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지금 이 시간에 동일하게 해주심을 구하는 말인 것입니다. 시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보호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어느 길인지 모르나, 주님의 보호하심 아래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가셔서 대적들을 흩으시고, 원수들을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들의 뺨을 치시며, 이를 꺽으실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시인의 원수를 어떻게 갚아주시나요? 주님은 그들의 뺨을 치시고, 이를 꺽으심으로 심판하셨습니다. 여기서 뺨은 다양하게 번역이 가능합니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그들의 턱을 치시며, 이를 부수신다”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를 ‘꺽다’는 말은 성경에서 4번 사용되었는데, 대개 거짓말과 무고와 비방을 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형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말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시인을 비방하는 입과 이를 부수셔서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시는 주님의 심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스스로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모든 원수 갚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8절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여러분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께로 말미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환란중의 애가를 마칩니다.
결론 및 적용
1) 교회를 향한 적용
교회는 언제나 많은 대적에 의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이 대적은 외적인 대적이 있는 반면, 내적인 적도 존재했습니다. 외적인 적은 시대에 따라, 교회의 허물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하였습니다. 교회의 제일 연약한 부분을 공격하며 넘어트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소리까지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저들과 함께 하시지도, 저들을 도우시지도 않는다는 비방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런 비방 가운데서 그들의 음성을 듣고 낙심하지 말고, 시선을 하나님께로 집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고 계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구원과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기에 문제 앞에 온전한 평안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2) 성도에게 적용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인생을 어떻게 걸어가고 계십니까? 전쟁과 포화 속의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고 계신가요? 우리의 힘으로 인생을 혼자 살아간다면 우리는 곧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혼자 살아가지 마세요.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말 했던 데로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을 맞이 할 때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간구하십시오. 나를 특별한 상황에서 구원하며 막아 줄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하
지금 여러분을 두렵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 상황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여러분을 말할 수 없는 깊은 스트레스로 짓누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맞아야 하는 대적은 무엇인가요?
3)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할 때 우리의 아침은 대적으로 가득한 아침이 아닌 소망으로 가득한 아침을 맞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이 나를 아버지이시며, 그분이 나를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아침을 맞이한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아침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돌릴 때 소망이 생깁니다. 소망 중에 사는 것이 진리 안에 사는 것이며, 진리 안에 사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온전히 일어나시며 역사하시는 아침의 찬송을 드리는 삶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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