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 강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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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명의 가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희망을 갖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질병이… 그리고 고통이 끝났을 때.. 치료를 받았을 때 많은 환자들은 이 의사선생님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퇴원을 하고 수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도 감사 편지를 주고 계신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환자들이 감사의 마음을 갖는 이유는 자신의 병과 그 심각함이 어떠한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죽을 위기에 처해있고 심각한 상태에 있으며 치료를 하더라도 어려운 치료가 될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 어려운것을 이 명의가 성공 시켜 주었을 때.. 감격과 감사와 기쁨을 가지게 된 것일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환자일수록… 그 감사가 더 크게 다가오겠죠..
오늘 본문은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도하는 그 기도의 내용은 19절에 나오듯이..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까? 앞 문장에 그 내용들이 쭉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고,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가? 하는 것을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내용들은 우리가 앞서 살펴봤던 1장 앞 부분에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3절부터 나오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흠 없게 하시려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그 일!!
7절에서 말하는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그의 피로 속량을 받은 그 사건!!
그리고 10절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 만물을 통일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기업의 보증이 되게 하신 그 놀라운 능력!! 그것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바울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교리적으로, 성경 공부로 이러한 내용을 배우고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바울이 말하는 깨닫는 다는 것은 앞서 환자들이 자신의 처지와 상태를 알고 명의의 그 치료의 그 기술… 그 어려움.. 그 고뇌와 깊은 생각들을 이해하듯이… 바울이 말하는 알다라는 것은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너희가 알아서 기억하기를 원하다고 말하지 않고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 놀라움… 이 은혜를 아는 것은 머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바울은 이 하나님을 아는 일에 대한 기도와 간구를 그의 옥중서신에서만 실어 놓았습니다. 옥중 서신이라는 것은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쓴 편지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자신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었던 환경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자신의 깊은 낮아짐의 처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감옥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자신을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구원하셨다… 나를 자녀로 삼으셨다… 그리고 고치셨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고난에 처할 때 하나님을 아는 그 진가가 더욱 밝히 드러납니다… 직장에서 어려울 때…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 내가 잘난 줄 알고.. 내 힘으로 모든 될 것 같았는데.. 좌절하고 실패했을 때… 그때… 하나님이 이토록 초라한 나를 알고 계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죄악된 영혼을 고치셔서 새사람 삼아 주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고 은혜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바울은 빌3:8절에서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 마음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마음으로 깨달은 성도의 모습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성도의 복됨..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즉..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함을 사도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 성도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고 감사한 일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성령께서 그것을 우리 마음에 비춰주시고… 그것을 깨닫게 해주실 때에 비로서 우리가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을 통해 마음의 눈이 밝아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은 복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부르심의 소망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자기 자녀로 부르실 때에 주신 소망을 가르킬 것입니다. 그 소망은 우리의 개인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도 그 개인적인 부분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공동체 적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알게 되므로 가지게 되는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이 있습니까?
1장 14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는 것.. 그것을 소망하고 바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됩니까? 그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되니… 4절에서처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흠이 없는 존재로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그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임을 깨닫게 되니.. 그 하나님의 소망이 나의 소망이 되고 나의 기도제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망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성도 한명 한명이 거룩하고 흠이없는 그 삶 가운데 발버둥 치며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살다보니… 5장 27절입니다… 그 교회가 영광 스러운 교회가 되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데 이러한 하나님의 소망과 교회의 소망이 여기서 한 차원 더 나아갑니다… 우리를 부르신 소망이 우리를 흠없게 하시기 위함임을 성도들이 깨닫고 그것을 소망하여 삽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그들이 모인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러한 공동체가 하나씩 모여 더 원대한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1장 10절에 나타난 말씀입니다… 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으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기도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미를 깨달아서 그들의 삶을 통해서 거룩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는 그 사명 가운데 쓰임 받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거룩함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다고 18절에서 말합니다.
오늘 한글 번역에서 이 본문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지 않아서 우리가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에서 그 기업은 누가 소유한 기업인가 하니… 하나님이 소유한 기업입니다. 다시말하면 이 기업은 우리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기업이라는 것은 유산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영광스럽고 풍성한 유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에게 영광스럽고 풍성한 유산이 됩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성도 안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도라는 것은 그의 유산의 영광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된다!...
이러한 의미가 잘 나타나 있는 곳이 출애굽기 19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가운데 시내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내산 언약… 시내산 약속이 19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 시내산 언약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십니까? 내가 너희를 어떻게 인도하여 냈는지 아는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하여 어떠한 큰 일을 행하였는지 기억하는가?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하나님 가까이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지금 알고 있는가??
그러면서 언약을 하시는데…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소유가 되겠고… 이 소유는 곧 기업일는 말과 바꾸어 쓸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유.. 기업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쎄골라”입니다.. 이 “쎄골라”는 단어적 의미로 보면 “보물”입니다. 왕이 가지고 있는 그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 이것을 번역으로 소유라고 번역을 했지만은.. 이 안에 들어있는 의미는… 너희는 내 기업.. 보물.. 유산이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 적용해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성도 안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영광이 된다.. 즉.. 성도가 하나님의 보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풍성한 은혜입니까?? 이것은 성도의 특권입니다.
이것을 누가 안다는 것입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은사람… 그 사람이 이 놀라운 은혜.. 자신이 가진 이 놀라운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깨달아 알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영광스러운 존재로 대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이라는 사실을 알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 이듯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는 사실이 나의 영광이 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크심을 알 때 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가 하는 것을 성도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만물이 다 예수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여 있습니다.. 얼마나 크신 능력입니까? 죽음을 다스리신다! 뿐만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인 것을 성도들이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23절에 교회에 대한 유명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먼저 이 부분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에 대해서 먼저 보는 것입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는 누구입니까?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0절에서 그리스도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이유가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생각할 때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 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 본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충만이라고 번역된 “플레로마”가 능동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수동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능동으로 해석이 된다면 이 본문이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케 하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로 인하여 충만케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신학자 칼빈은 이 구절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우리와 연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이 불완전 하다고 인식하신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필요하고.. 우리가 없다면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 구절이 수동으로 해석이 되면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충만케 된다가 됩니다… 이 해석은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해석하는 경향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로 인하여 충만케 된다는 말보다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충만케 된다…
저는 이 두 해석이 둘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 봤듯이 주님께서 우리의 유산이 되기도 하시지만 우리 또한 주님에게 유산이 됩니다… 보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마음의 눈이 열린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보물이 되시고 영광이 되신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게도 우리가 주님의 영광이 된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너는 나의 소유이다!!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보물입니다.. “쎄골라”…
따라서 그리스도와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영광이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교회를 주님의 아내로 표현을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서로에게 충만함이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부족하시다는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담에게 돕는 베필로서 하와가 필요했듯이…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과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그러한 영광이 되고… 성령을 통해서 깨달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의 영광과 큰 기쁨이 되는 지를 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툭하면 교회 욕하고 성도 욕하고 하지만은 우리의 존재가 그렇게 가볍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칼빈의 말을 빌리자면 “남편이 자기 아내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나는 반쪽짜리 인간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자신의 영광으로 생각하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고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여기신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또한 충만함을 얻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충만하게 합니까?? 돈입니까? 나의 사업이 잘되는 것 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까?
그러나 성령을 통해서 마음의 눈이 밝혀진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신이 충만케 됨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되고… 그 소망을 통해서 우리가 거룩해 짐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우리를 영광 스럽게 여기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만물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두시는 권능의 하나님임을 알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로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하듯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소유하게 됨으로 우리가 완전해 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그것이 성령을 통해 알게된 자들이 하게되는 성도의 체험인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이것을 성도들이 누리는 것이 교회의 교회됨의 시작입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 교회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채워 주시는 충만함을 경험하시길 소망합니다.. 의무적인 예배가 아니라…. 사귐이 있는 예배… 충만함으로 내 영혼이 채워 지는 예배.. 그럼으로 그리스도꼐서 우리를 필요로 하듯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예배… 그러한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예배…. 우리의 예배 가운데 이런 놀라운 체험과 앎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