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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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실 줄 믿습니다.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 ‘담대함으로 사세요’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오미크론의 범람으로 코로나19에 감염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 시기를 사는 것 같습니다. 증상은 약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안될 수가 없습니다. 행동에 제약이 있더라도 방역 지침을 잘 따라 주셔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구정도 눈앞인데 모두가 지혜를 다해 이 위기를 이겨가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와중에 대선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5년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세우는 과정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릴레이 기도회에 모든 분들이 함께 지원하셔서 주중에 한 시간 교회와 나라를 위해, 환우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면 더 큰 힘이 되겠습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 우리는 위기의 순간을 만나 생명을 보존하고자 애쓰는 아브람을 통해 우리에게 오신 생명의 참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삽니다. 삶의 환경의 변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것은 바로 이 두려움이라고 하는 감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심한 기근이 들자 안전한 이집트로 내려갔다고 기록합니다. 약속의 땅이 그에게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린 결정입니다. 10절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2장 10절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약속의 땅으로 알고 찾아온 가나안이 심한 기근에 빠지자 아브람은 안전한 땅 이집트에서의 거류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명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나안은 아브람의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두려움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 더 강하게 그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로 들어가려고 하니 또 다른 걱정이 앞섭니다. 자신은 셈족으로 피부가 백인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흑인들로서 눈에 보기에 백인이 좀 더 미인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 사라를 미인으로 생각한 이집트 사람들로 인해 그의 생명이 위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아브람은 아내와 의논을 합니다. 본문 11-13절을 같이 읽어 봅시다.
창세기 12장 11-13절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지금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수 없다는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기근으로 거할 수 없고, 이집트에 가자니 그곳에서는 그의 목숨을 보존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착한 아내의 동의에 의존하여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열악한 궁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 계획은 새로운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염려한 대로 이집트로 내려가자 사람들이 사래의 미모를 파라오 앞에서 칭찬하기 시작했고, 파라오는 아브람을 선대하며 충분한 지참금을 지불하고는 사래를 후궁으로 삼습니다. 15, 16절을 봅시다.
창세기 12장 15, 16절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아브람은 아내의 호의로 목숨을 부지하고 많은 재물을 얻었지만, 아내를 빼앗김으로 그녀를 통해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은 최고의 위기를 맞습니다. 창세기에서 사래는 불임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불임을 뚫고 오실 메시야를 준비할 자였습니다. 이런 그녀가 파라오의 후궁이 된다는 사실은 아브람으로서는 엄청난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숨은 부지했으나 약속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습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우리는 이 이야기를 두고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람에게 심한 기근을 허락하셨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충분히 기근을 막으실 수 있으실텐데 이를 방치하시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또한,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통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신 줄 믿지도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습니까? 창조주는 기근을 막지도 않으시고, 믿음의 조상은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을 지키실 수 있는 분으로 믿지도 않는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요?
J1. 하나님의 심정, 태도, 방법
J1. 하나님의 심정, 태도, 방법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아담이 범한 죄의 값은 바로 사망의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 질병의 고통, 가난의 수고, 실패의 낙심, 원수의 위협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고통들은 그것이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죽음은 인류가 피할 수 없는 모든 고통들의 근원이고 모든 두려움의 중심입니다. 그렇기에 죄인들은 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악한 일들도 무릅쓰게 됩니다. 아브람도 생명 보존을 위해 아내와 모의하여 자신들의 관계를 감추어 안전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인간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그로 인해 정직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을 긍휼히 보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세상을 사는 성도는 우리의 죄의 값인 사망을 대신 지불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의 새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로마서 6장 4절입니다.
로마서 6장 4절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하게 하시고, 죄인된 우리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보존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모의와 작당으로는 결코 보존할 수 없는 생명을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지키시고 보존해 주시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사실 본문의 아브람의 삶은 오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근을 통해 아브람을 이집트로 보내시고 그를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오게 하시는 것은 앞으로 2,000년 이후에 오실 예수님의 삶을 아브람을 통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에게 예수님의 출생지를 알려 달라고 말한 헤롯의 악한 계획은 예수님께서 이집트로 피난가심으로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고, 이후 예수님은 헤롯이 죽고 나서 나사렛으로 옮겨 나사렛 예수가 되십니다. 오실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로 성도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실 하나님이시기에 아브람은 기근에 쫓겨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를 가야 했고, 그곳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시는 예수님을 증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J3. 사람이신 예수님
이는 또한 창세기를 기록하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변의 환경적 여건 속에서 약속의 땅을 떠나 이방에서 머무는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오실 메시야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해야 합니다. 이방에서 노예의 삶을 통해 오실 메시야의 고난을 증거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모세에 의해 가나안 땅을 얻고 영원한 새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아브람은 오실 메시야와 그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의 삶을 예표하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가 고난을 겪고 영원한 가나안에서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것입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구원을 통해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구원을 통해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인간은 죽음이라는 심판 앞에서 항상 고뇌하고 두려움 속을 살아갑니다. 생명을 가진 인간에게 생명이 사라지는 죽음은 최고의 위협이고 가장 큰 고통입니다. 이런 고난의 삶을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삶이 죽음이 아니라 영생으로 이어지도록 우리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죽음이라는 죄의 값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 안에서 성도는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1장 4절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이 증거하듯이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모든 믿는 자들의 빛이요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W2. 참 생명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의를 순종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W2. 참 생명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의를 순종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부활의 새 생명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의를 행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능력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온갖 고난과 고통의 삶을 감내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27절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27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러한 고난의 삶은 바울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새생명의 소망이 그의 가슴 속에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얻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영생을 꿈꾸고 천국의 삶을 더 소원하기에 세상의 삶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고난이 찾아와도 인내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에서 사도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그것이 자신에게 훨씬 유익하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1장 23, 24절을 봅시다.
빌립보서 1장 23, 24절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아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사도의 고백은 죽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사는 소망의 삶이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도 유익하나 주님과 함께 사는 영의 온전한 삶은 더 풍요롭고 완전한 소망의 삶이었기에 사도는 고난도 이기고 고통도 감내하며 두려움이 아닌 소망으로 의로운 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생을 선물로 얻습니다. 내 목숨을 내가 지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성공적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은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능력과 그 권세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중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연약한 아내와 모의하여 거짓말로 생명을 보존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의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아브람은 거짓말을 통해 당장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켜 새로운 두려움으로 아브람을 이끕니다. 아내가 왕의 후궁으로 잡혀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셨던 자손에 대한 약속과 민족에 대한 큰 소망이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자기 힘으로 생명을 보존하려고 할 때 얻게 되는 한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복은 설령 죽어도 온전한 것이고 살아서는 소명이 되는 놀라운 소망의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생명의 복을 소유할 때 우리에게 영생의 놀라운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T1. 아브람은 부활의 생명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누린 삶을 삽니다.
T1. 아브람은 부활의 생명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누린 삶을 삽니다.
아브람은 오늘 현재에는 아내의 도움 속에서 불완전하게 살고 있지만, 이후에 그는 부활의 하나님을 믿고 아들 이삭이 죽어도 다시 살리실 하나님을 확신하고 온전하게 순종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직은 부족하여 죽음이 두렵고 공포스러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믿음 안에 거하게 되면, 성도는 놀라운 믿음의 결단과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영광의 백성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구약 성경의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택하시고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흘간 금식하고 왕을 대면하고자 합니다. 당시 왕후가 왕의 부름 없이 찾아오면 왕의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사형을 시킬 수 있는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민족을 살리는 일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살리는 큰 은혜를 얻고 민족을 구원하는 민족의 영웅이 됩니다. 이때의 죽음은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영생을 향한 소망의 결의였던 것입니다.
T2. 세상은 부활의 주님을 알지 못하기에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삽니다.
T2. 세상은 부활의 주님을 알지 못하기에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삽니다.
세상은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알지 못하고,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하심을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이 중심이 된 삶을 삽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폭력과 괴롭힘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악한 가해자가 있는 듯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런 악을 행하는 가해자들은 누군가의 피해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는 한 사람의 문제를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렇죠. 누군가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다른 약자에게 화풀이를 하면, 그렇게 당한 사람은 더 악한 사람이 되어 또 다른 타인에게 복수하고 위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약자여서 피해자였는데 억울함이 용기를 부추겨 가해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의 복을 알지 못하는 한, 세상과 혹 교회 안에 있는 이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의 고리는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큰 소리는 치지만, 다 두려움 속에 살고 있고, 죽음의 공포 아래에서 온갖 악행들을 함부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T3. 성도는 부활 생명의 복을 누리기에 새로운 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T3. 성도는 부활 생명의 복을 누리기에 새로운 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 그는 아내를 의지하여 사람들을 속여 안전을 도모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그것이 유일한 자구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활 생명을 알게 될 때 아브람은 두려움 없이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 날리는 결단을 내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때 아브람은 이미 온전한 의를 따라 살 수 있고, 죽음을 두려움으로 피하지 않는 믿음의 조상으로 만인의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함께 하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우리의 삶은 의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주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은 죽음에, 혹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실 인생은 누구나 죽음으로 인한 고통에 허덕이고 삽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삶의 선택을 결정하고 두려움이 내 삶을 지배하여 어리석은 결정을 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주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의 소망을 주셨고, 아들 안에서 주신 영생의 약속이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이제 성도는 두려움보다는 천국의 삶을 소망하고, 공포와 고통보다는 주님과 함께 사는 영광의 날을 향한 소망이 더 큰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신 죽음보다 크신 분이시고,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움을 이기신 참 승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내 삶의 모든 자리에서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영생의 소망을 붙들고 살기를 결심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물론 죽음의 두려움을 하루아침에 내 힘으로 사그라들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대제사장이신 주님을 붙들때,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기대하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죽음으로부터 기인하는 두려움의 동기가 아니라 아들로부터 주어지는 영생의 은혜를 소망하고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죽음보다 크시고, 두려움을 이기신 참 구속주이심을 깊이 기억하고 믿음 가운데 의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결심 찬송
결심 찬송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