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속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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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늘의 입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늘의 입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론]
독일에 있었을 때 아내와 제가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 무엇일까요?
알리올리오?
그건 간단해서 자주 먹던 음식이구요.
김치볶음밥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아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사람은 외국에 가도 입맛은 한국사람입니다.
그게 우리의 DNA입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입맛이 조금 바뀌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입니다.
내가 몸은 비록 다른 나라에 속해있을지라도 내 입맛의 소속은 바뀌지 않습니다.
여전히 한국입맛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내 입맛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법은 내 입맛, 즉 내 마음에서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이냐는 입니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철학자인 제임스 스미스는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을지라도 여전히 세상의 것을 가장 원하면 그의 소속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세상입니다.
오늘 내 입맛은 무엇인지 확인해봅시다.
이를 통해 내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여전히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변론하는 장면입니다.
주제는 예수님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다툴까요?
아버지가 누구냐는 것으로 다투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도 자기들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42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 아버지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면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보면 얼마나 반갑습니까?
그냥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근감을 느낍니다.
소속이 같기 때문이죠.
그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에게서 온 예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하나요?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으려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뭐라고 하시나요?
너희들의 아버지는 '악마'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아버지가 악마면 자식은 뭐가 되나요?
악마의 자식이 되는거죠.
마구새끼들이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들이 화가 날만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왜 그들의 아버지가 악마라고 주장하실까요?
그들이 악마의 입맛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44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거짓말하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악마는 사람을 파괴하고, 죽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게 악마의 입맛, 악마의 본성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속인게 누구인가요?
뱀이죠.
뱀은 사탄, 마귀, 악마를 의미합니다.
사탄이 뱀의 모양을하고 나타난거죠.
그러면서 아담과 하와를 어떻게 속이나요?
하나님이 진짜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이렇게 속이죠?
그러면서 이거 먹어도 안죽어.
이거 먹으면 너희들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
이렇게 거짓말하고 속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죠?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한 반역의 댓가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게 바로 이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거짓말하고 속여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게 마귀의 DNA인거죠.
그런데 그 DNA를 누가 가지고 있다는 건가요?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그 DNA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구새끼가 되는 것이죠.
45-46절입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말하는데도 그들이 믿지 않으니 그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의심할수는 있죠.
그런데 수많은 기적들과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빛이 왔는데도 그들은 빛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어둠에 있고 싶었던 것이죠.
47절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듣지 않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면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첫번째,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우리의 소속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신뢰하고 믿는 사람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이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믿는 것이고, 세상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바로 너야.
네 인생은 네 것이야.
네가 하나님같이 되어야해
이렇게 우리를 속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속였던 마귀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우리를 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맺지 못하게 만들고, 우리를 죽음의 저주가운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아니 누구의 말을 듣고 싶습니까?
달콤한 세상 소리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마귀의 존재를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분명히 천사와 마귀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조용히 돕고 있는 존재가 천사입니다.
반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방해하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미혹하고 우리를 진리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런 마귀와 싸우려면 영적 전쟁을 벌어야 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영적인 전쟁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신앙은 천지차이입니다.
영적으로 전혀 무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전쟁터에서 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이유는 이러한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소리들은 무시하고 하나님께 주파수를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세상의 소리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됩니다.
그 세상의 소리 속에는 우리를 미혹하는 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귀는 절묘하게 그런 말들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요즘 저도 할인행사에 꽂힌게 있어 쇼핑 어플을 자주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제가 인터넷을 볼 때마다 그게 광고로 뜨는 거에요.
계속 제 마음에 폭격을 하니까 자꾸 다시 들어가보게 되더라구요.
내가 그걸 살 때까지 계속 제 마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정말 무섭더라구요.
마귀가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속이기 위해 세상의 소리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귀를 기울일 때까지 우리 마음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의식적으로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우리의 소속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께 속한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해야 합니다.
그들의 입맛은 세상 입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좋아하는 입맛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어야 합니다.
저도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 입맛에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욕 좋아하고, 돈 많이 버는 것, 쾌락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난 후 제 입맛은 극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물론 오래된 습관은 쉽게 변화 되지는 않았지만 입맛 만큼은 세상 입맛이 아니었습니다.
자, 그럼 이렇게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마귀의 자녀라고 했으니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48절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도 하고, 귀신이 들렸다고도 하는데, 그 말이 옳지 않소?]
이게 무슨 말인가요?
예수님에게 욕을 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혈통이 섞였다고 해서 아에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개, 돼지 취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그녀의 삶을 변화시켜주셨죠.
그리고 그 사마리아에 며칠을 머무르시면서 그 동네 사람들도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불만을 품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소문냈습니다.
또한 분명히 목수 요셉의 아들인데 자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하니까 귀신들린 것으로 소문낸 것입니다.
그냥 미쳤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욕하는 것은 엄청난 신성모독입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 말씀처럼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무엇을 보면 우리가 어디에 속해있는 지 알 수 있을까요?
두번째, 우리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소속이 드러납니다.
50절입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나를 위하여 영광을 구해 주시며, 심판해 주시는 분은 따로 계신다.]
또 54절입니다.
[내가 나를 영광되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헛된 것이다. 나를 영광되게 하시는 분은 나의 아버지시다.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분이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영광스럽게 여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
도대체 '영광', Glory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위엄,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많이 착각합니다.
자기의 일에서 성공할 때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말합니다.
연예인들 보십시오.
상받을 때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말합니다.
간증하는 사람들 보십시오.
대부분 성공하거나 큰 병에서 치유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실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욕망에 따라 자기 힘으로 이룬 것이라면 그게 자기 영광이지, 하나님 영광이 아닙니다.
그냥 겉치레로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큰 성공이나 성취를 할 때에만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 계획이나 뜻이 이뤄지지 않았을 지라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설령 매우 작은 일일지라도 오늘 하루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해주십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해주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51절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의 말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영생은 육체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가 연결되어 죄로 죽었던 영적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온 사마리아 여인처럼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항상 남자가 옆에 있었지만 항상 목마르고, 죽고싶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죽어있던 삶을 벗어 던지고, 이제 생명이 넘치는 삶을 옷 입었습니다.
이처럼 영생을 누리는 사람은 공부하면서도 일하면서도 죽음의 증상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루 사는 게 죽을 맛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고, 현재를 살아가기도 버거워합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이망생'이라 말합니다.
'헬조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국가중 수년간 압도적 1위입니다.
35분마다 1명의 사람이 스스로 죽습니다.
하루에 40여명의 사람이 자살하고, 한달이면 1200명이 자살합니다.
8개월이면 1만명이 넘습니다.
전세계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자살률 4위입니다.
10-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얼마나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이 삶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게 해주십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게 해 주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새 생명의 기쁨과 소망을 맛보게 해주십니다.
이런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우리가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자, 예수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52절입니다.
영생이 육체적 생명 이야기를 하는 줄알고 그들은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다 죽었는데 어떻게 사람이 안 죽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죽은 아브라함보다 또, 예언자들보다 당신이 위대하냐고 묻습니다.
아브라함도 예언자들도 영생하지 못했고, 영생을 줄수도 없었는데 예수님은 줄 수 있다고 하시니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다시 예수님의 정체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 이야기를 다시 꺼내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시려는 것입니다.
56절입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있다.]
요약하자면 수천년 전 사람인 아브라함보다 예수님이 먼저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메시아 예수님이 언제 오실까 그 날만 기대하며 즐거워했고, 마침내 보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이 있기 전 처음부터 계셨기 때문에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는 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메시아를 통해 이뤄질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 것을 하늘에서 보며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은 이처럼 나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는데 왜 너희들은 내가 이렇게 왔는데도 나를 인정하지 못하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자신이 알지못하는 두려운 땅으로 담대히 모험을 떠났습니다.
거기까지 가는데 어려움들을 많이 겪었지만 하나님 약속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와 그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들 이삭이 죽은 생식기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징표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삶은 우리의 소속을 알려주는 게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세번째, 우리가 어떤 믿음을 보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소속이 드러납니다.
믿음이란 아브라함처럼 현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죽음이 아닌 영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현재의 삶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합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이란 마치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확신있게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얼토당토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그들과 우리가 소속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이처럼 우리의 소속이 어디인지 드러내줍니다.
스위스 기독교 심리학자 '폴 투르니에'의 책 '모험으로 사는 인생' 표지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모험이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이 모험이지만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아무도 책임져줄 사람이 없는 고아같은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너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떤 믿음의 모험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땅의 입맛이 아닌 하늘의 입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맛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