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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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침상에 누운 한 중풍병자가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 앞에 이끌려 나와 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대담하게 중풍병자를 들어 지붕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구멍을 뚫어 예수님이 서 계신 곳에 그를 매달아 내렸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까지 한 이유는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친구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어서 이렇게 까지 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기쁘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 본문에서 나타난 것 중에 신기한 부분은 예수님이 신실한 네 사람의 친구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병자를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를 위로하시고, 그의 가장 어렵고 힘든 부분을 만져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병은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중풍병자는 어떻게 이 사람이 나의 죄에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모습은 이상하게 보이고 들렸을 것입니다. 무리 가운데 있던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곳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눈으로 모두가 목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으시며, 죄로 말미암은 병까지 고칠 수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모두가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더 큰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병 고침보다 죄 사함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죄 사함보다는 현실적인 축복을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와 신앙생활에서 죄 사함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가장 중요한 사안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아닙니다. 우리는 건강과 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해 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으로 서 있는 곳이 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죄 사함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따라서 죄 사함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세상의 법을 어기고 구속되면 그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법정은 아무 대가 없이 죄인을 용서하거나 석방해주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친분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범한 죄도 해결이 되어야 하며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죄의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으로 오늘 나타내지고 있습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2절)”
예수님은 그래서 자신이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해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침으로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죄를 없애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6절의 말씀인데요.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리고 그 일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죄를 사해주시며, 죄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우리의 삶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구약의 전반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백성들을 용서하셨지만 백성들은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는 그들 자신이 죄를 끔찍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신실하게 주님을 믿는 듯 하지만 믿지 않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듭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 나올 때 여러분의 죄악을 생각하시며 용서받기를 구하시나요? 용서하시는 분이 계신데,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는 중고등부가 됩시다.
용서해주시는 주님을 만날 때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첫번째로 마태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살마을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가 용서를 경험할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믿는 바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의 삶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그리고 용서를 경험햇다면 용서하세요.
두 번째로 네 친구들은 걸을 수 없었던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자신의 친구도 예수님을 만나 죄 사함을 받고 낫게 됨을 소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중풍병자를 데려왔던 네 친구들처럼 누군가를 믿음으로 예수님 앞으로 데려와야 할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한 영혼을 만나시며 용서하시고 품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새 생명을 경험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걸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더욱 만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며, 구원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우리도 구원을 받으며, 데려온 사람도 새 생명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으로 함께 나아오세요.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세요.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떡과 돈과 명예를 전함이 아니라 죄 사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 자신에게 나아오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믿음으로 천국의 길을 걷게 하신 예수님께 나아오세요. 다른 영혼을 주님께 데리고 올 수 있는 은혜를 구하세요. 우리의 삶이 주님의 권세로 복되고 기쁜 인생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에게 참된 답이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죄사함을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