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적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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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을 판단하기 보다 나 자신을 살피세요.
1. 남을 판단하기 보다 나 자신을 살피세요.
로마서1장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바울은 책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러한 바울의 불신자들을 향한 비난을 들은 유대인들, 즉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유대인들이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지,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없이 살고 있으니 다 죄인이 맞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열심히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방인을 향하여 죄인이라고 비난하는 유대인을 향하여 바울이 2장에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같은 기준으로 판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근래 유행하는 사자성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로 남불"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비난합니다. 현재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대선 후보들끼리 서로 서로 누가 더 상대방에 대해 비난을 잘 하나 대회 하는 것 같습니다. 덩달아 우리 같은 유권자들도 이재명이 어떻고, 윤석열이 어떠하다라고 열심히 판단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의 정확성과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기준으로 판단을 받습니다. 누구에게 판단을 받을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우리가 누구를 판단하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내가 판단하는 사람을 그 분의 기준으로 판단하십니다. 또한 같은 기준으로 하나님은 나를 판단하십니다.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할만한 자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저 사람이 거짓말쟁이야, 도둑놈이야 하면, 내가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재판장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재판장은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 그 분이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시고 그 하나님의 법에 따라 각 사람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또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전환문> 그런데,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 기준으로 우리는 같은 수준에서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2.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기 보다 나의 실제 행위를 살피세요.
2.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기 보다 나의 실제 행위를 살피세요.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고, 하나님이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자기자신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읽었고, 공부했고, 외우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잘 지키고 행한다고 스스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른 것이지요?
예전에 주먹이 운다 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인 중 좀 싸움을 한다는 사람들이 격투기 프로 선수들과 경기하는 그러한 프로그램입니다. 그 중에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실제로 운동을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UFC 경기 매니아로 열심히 시청만 한 사람입니다. 온갖 UFC 기술들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경기에서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죽도록 맞았습니다.
바리스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바서 아시겠지만, 자신이 카페를 자주 다녀 봐서, 그리고 커피를 많이 마셨기에 다 커피를 잘 내릴 수 있을 것 같지요? 포타필터를 잡아보기 전에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어떻게 됩니까? 잘 안되지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이미지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자기 자신이 매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해서 아주 쉽게 비난합니다.
특히,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도덕성과 윤리성은 매우 특이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는 것 만으로 자기 자신이 매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 스스로 믿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믿고 있고요. 신앙생활 좀 한다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바라 봅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잘 못 걸리면, 한 시간이고 꼬치꼬치 따지고 사과를 요구하는 그러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 중 70퍼센트는 분명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도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윤리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선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예배 드리고, 성경 읽고, 기도를 많이 하면, 그냥 자신이 매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선한 사람이라 착각할 뿐 입니다.
그러한 근거 없는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는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26절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즉, 불신자가 만일 성경의 말씀을 행하고 있으면, 그 불신자는 기독교인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불신자가 그 기독교인을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축구를 잘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축구를 잘해야 축구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바리스타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바리스타 실력이 있어야 커피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명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28 2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오늘 날 표면적 유대인이란 명분상 그리스도 인을 말합니다. 이 들은 매일 성경을 읽고, 교회를 매주 다니며, 기도를 항상 합니다. 그러나 삶에서 말씀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반면, 이면적 유대인이란 그러한 명분상 그리스도 인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되십시오. 물론, 예배, 기도, 말씀 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만족하면, 그냥 간판만 기독교인 일 것입니다. 진정한 내면적 기독교인은 삶에서 기록된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 처럼, 하나님 말씀을 내 인격과 삶에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