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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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사도신경
찬송
찬송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기도
기도
성경봉독
성경봉독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서론
서론
우리는 어제 읽은 야고보서 1 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 말씀인지를 배웠다.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인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분이다.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시험하시는 분도 아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빛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은
말씀, 즉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우리를 낳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말씀인가?
진리의 말씀이다.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말씀이다.
우리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이어지는 2장의 말씀을 통해
믿음과 행함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이 어떠한 믿음인지,
그리고 그 믿음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잘 이해하고 깨닫는 은혜의 시간되기를 축복한다.
본론
본론
다같이 1절의 말씀을 읽어보자.
1절
1절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 사도는 말씀하고 있다.
너희가 믿음을 가졌느냐?
그렇다면 너희의 삶에 행함이라는 열매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어떠한 행함인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을 가리켜
영광의 주 곧 우리 주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메시야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진 우리는
그 믿음의 결과로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사람을 대할 때에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것임을 말씀한다.
타락한 죄된 본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여러가지 기준으로 구분짓고 나누어
차별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학벌이나 직업의 높고 낮음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얼굴이나 키와 같은 신체적인 조건을 갖고 사람을 차별한다.
살고 있는 지역이나 출신을 갖고 사람을 차별한다.
심지어 살고 있는 집의 크기나 주거형태를 갖고 사람을 차별한다.
이렇게 다양한 조건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여
가진 자는 치켜 세우고
없는 자는 낮추고 멸시하는
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한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야고보 사도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는 말씀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준다.
2-7절 말씀이다.
2-7절
2-7절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지금 야고보 사도는 가정을 해서 이야기한다.
예배당에 2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첫번째 사람은 세상적으로 부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운전수가 딸린 비싼 외제차를 타고
수백 수천만원 하는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고 명품백을 들고
교회에 온 것이다.
반면 두번째 사람은 세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다.
그는 남루한 옷을 입었다.
여기서 ‘남루하다’는 말은 더럽다, 깨끗하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가난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예배당에 온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길거리의 노숙자가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예배를 안내하는 안내위원이 이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예배당에 온 사람을 보더니
VIP대접을 해 주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 친절하게 인사하고 반겨주고
예배당 중앙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게 해 준다.
반면 남루한 옷을 입고 예배당에 온 사람을 보더니
아무런 관심도 써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몰라 당황해도
앉든지 말든지 신경쓰지도 않고
차라리 예배당을 빨리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빈부의 격차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는 태도,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아니다.
야고보 사도는 4절에서
이러한 생각이 우리의 죄된 본성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다면
단호히 버려야 하는 생각인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5절은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게 믿음으로 부요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주시는 분이다.
어제 본 1장에서 야고보 사도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인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난하고 낮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을 믿은 그리스도인은 부요하고 높은 자이다.
생명의 면류관과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존귀한 자이다.
그러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세상 지위의 높고 낮음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말씀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형제자매들을 존귀히 여기며 서로 사랑하는 자들 되기를 축복한다.
계속해서 8-13절 말씀이다.
8-13절
8-13절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것,
이것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한가지 예라고 할 수 있다.
야고보 사도는 ‘이웃 사랑’ 즉,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최고의 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의 최고 가치라는 말이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2장 등에서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또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3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우리는 얼핏 생각하면
사람을 죽이는 죄나, 간음하는 죄 같은 경우는
하나님 앞에 크게 심판받게 될 중한 범죄이고,
반면에 사람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무시할 수 있는 가벼운 죄이거나
심지어 이런 것은 죄가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사람을 차별하는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지만
자신은 살인이나 간음을 행하지 않고 있기에
죄를 짓지 않고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을 차별하며 대하는 태도도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5 장에서
형제를 대하여 라가, 다시 말해 ‘바보, 멍청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
사람을 차별하려는 죄된 본성과 악한 생각을 버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우리의 형제와 이웃을 향해 긍휼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계속해서 14-19절 말씀을 살펴보자.
14-19절
14-19절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보고 사도는 여기에서
어떤 면에서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선포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다시 말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생명이 없는 믿음’이고 ‘거짓 믿음’이라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 똑같이 보이는 씨앗이라도
어떤 씨앗은 생명이 있는 씨앗이지만 어떤 씨앗은 생명이 없는 씨앗이 있다.
이 둘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심어보면 알 수 있다.
생명이 있는 씨앗은 땅에 심으면 자란다.
뿌리가 자라고 떡잎이 올라오고 싹이 난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자라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생명이 없는 씨앗은 자라지 않는다.
아무리 물을 주고 비료를 준다 하더라도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와 같이 야고보 사도는 ‘믿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씀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과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죽은 믿음과 생명이 있는 믿음이다.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믿음은
생명이 있는 믿음이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생명이 있는 믿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행함으로 그 믿음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야고보 사도는 19절에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행함이 없는 믿음,
다시 말해 생명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향해
귀신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라고 경고한다.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우리는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귀신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권세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영적인 존재들인 사탄 마귀와 귀신들은
그 누구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행함이 없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인 것이다.
죽은 믿음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
야고보 사도는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이들을 향해
정말 구원얻는 믿음을 갖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확인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지금 야고보 사도는
구원받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믿음과 함께 행함도 같이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구원 얻는 믿음에는
당연히 행함도 따라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있을 때
그가 가진 믿음이 구원 얻는 믿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구원 얻는 믿음을 갖고 있는 성도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따라온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원은 결코 우리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제 읽은 야고보서 1 장 18절에서 야고보 사도는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얻게 된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믿음과 행함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 사실을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20-26절 말씀이다.
20-26절
20-26절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과 행함의 관계가 어떠한가?
22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한다.
그리고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하게 된다.
또한 26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믿음을 사람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믿음이 사람의 몸이라고 한다면
행함은 사람의 영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땅의 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그리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다시 말해 우리 인간은
몸과 영혼이 함께 있을 때 온전히 살아 있는 자가 된다.
몸에서 영혼이 없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이다.
몸에 영혼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에 행함이 있을 때 그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고,
아무런 능력이 없는 믿음인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행함과 함께 일하는 믿음의 예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이야기한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다.
기생 라합에게 믿음이 있었기에
정탐꾼들을 접대하고 그들이 도망칠 수 있게 도울 수 있었다.
아브라함과 라합이 가진 믿음은
구체적인 삶의 태도와 행함으로 드러났고
그로 인해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것이다.
결론
결론
지난 주 주보 칼럼을 통해 담임목사님은
회개에는 자백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다는 사실을
잘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 장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는 말씀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행함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진정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있는 자라면
그의 삶에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당연히 따라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함의 열매를 통해 그들이 가진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구원 얻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 되기를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