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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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사도신경
찬송
찬송
446장 주 음성 외에는
기도
기도
성경봉독
성경봉독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서론
서론
어제에 이어 야고보서 3 장의 말씀을 살펴보자.
이 말씀에서 야고보 사도는 말과 지혜에 대해 우리에게 교훈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말과 지혜가 무엇인지 배우고
그대로 살아가는 자들 되기를 축복한다.
본론
본론
1절
1절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야고보 사도는 말에 대한 교훈을 시작하기 전에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선생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다른 말로 ‘교사’라 할 수 있다.
교사는 당시 초대교회의 중요한 직분 중 하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 장 28절에서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교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함께 초대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여기서 교사는 오늘날의 주일학교 교사 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저와 같은 목회자, 즉 목사에 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 장 11절에서
‘목사와 교사’를 하나의 직분으로 묶어서 부르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교회의 직분을 사모하는 것 자체는 선한 것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교사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 중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권위와 영향력 등만을 보고
교사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간과하는 이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하기에 야고보 사도는
교사라는 직분에는 그 직분에 따르는 ‘큰 심판'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23 장에서
당시 유대교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지금 야고보 사도는 이 편지에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그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드러나는 살아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인 ‘교사’는
성도들 앞에서 단순히 입술로 ‘말씀’을 가르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그의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말씀’을 살아내며 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삶의 본이 되는 존귀한 목회자들을 많이 주셨다는 사실이다.
성도님들께 기도부탁한다.
우리 목회자들이 말씀을 잘 가르칠뿐 아니라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성령충만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부탁한다.
계속해서 2-8절 말씀이다.
2-8절
2-8절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제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 ‘언어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성령충만함으로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여전히 죄된 본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실수와 잘못을 많이 하게 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실수가 많은 영역이 있다면
바로 ‘말'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말실수’가 가장 많은 것이다.
이것은 사실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말로 비롯된 재난이라는 뜻으로 ‘설화'라는 단어도 있다.
그러하기에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며,
능히 온 몸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야고보 사도는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구체적인 두 가지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설명한다.
첫번째 비유는 우리의 혀가 말의 입에 물린 ‘재갈’과 같다는 것이다.
커다란 덩치를 지닌 말에 비하면
그 말의 입에 물린 재갈은 아주 작아 보인다.
하지만 말 안장 위에 탄 기수가 재갈에 연결된 끈을 잡고
오른쪽으로 당기면 말은 가던 방향을 오른쪽으로 돌린다.
반대쪽을 당기면 말은 방향을 돌려 왼쪽으로 움직인다.
조그만 재갈 하나가 커다란 말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두번째 비유는 우리의 혀가 배에 달린 ‘키’와 같다는 것이다.
커다란 배의 뒷쪽에 조그만 키가 달려 있다.
이 키의 방향을 어디로 맞추느냐에 따라
배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이 정해진다.
야고보 사도는 이와 같이 말의 재갈이나 배의 키와 같은 게
바로 우리 몸의 혀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우리 말에도 ‘세 치 혀’라는 말이 있다.
세 치가 어느 정도의 길이인지 아는가?
한 치의 길이는 약 3cm 정도이다.
세 치는 약 9cm 정도이다.
따라서 ‘세 치 혀’라는 말은 우리 몸에서 혀는 아주 작은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는 가끔 뉴스를 통해 큰 산불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런데 그 원인을 보면 한 사람의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많은 것을 본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 혀에서 나오는 말도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작은 불씨 하나가 많은 나무와 숲과 산림을 태우는 것과도 같이
이 작은 혀에서 만들어지는 말은
우리의 온 몸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그런 힘을 갖고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그 말을 듣는 다른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망가뜨릴 수 있는 게
바로 혀에서부터 나오는 말이다.
그러하기에 야고보 사도는
이 혀를 가리켜
‘쉬지 아니하는 악’이다,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다라고까지 말씀한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와 동일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바울은 죄인된 인간의 모습을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사도 바울도 우리 죄인된 인간의 입과 혀를 가리켜
열린 무덤이다.
속임을 일삼는다.
독사의 독이 있다.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죄인된 인간이 처한 현실이자 밑낯이다.
심지어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런가?
계속해서 9-12절 말씀이다.
9-12절
9-12절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죄인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저주와 악독이 가득한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입술과 혀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입술과 혀로 사람들을 향해 축복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놀라운 변화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의 입술에서 찬송과 축복의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때때로 우리 입술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형제자매를 향해, 이웃을 향해
시기와 질투가 담긴
저주와 악독의 말도 나오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우리 안에 죄된 본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구원받아 영생을 얻은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의 몸이 영광스럽게 변하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 몸에 죄성과 정욕을 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 죄와 정욕으로 인해
우리의 입술에서 때때로 저주와 악독의 말이 나오는 것이다.
말실수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우리를 향하여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씀한다.
한 샘에서 단 물과 쓴 물, 단 물과 짠 물이 같이 나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말씀한다.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
우리의 입술에서 저주의 말을 버리고 찬송과 축복의 말만 하라는 것이다.
쓴 물과 짠 물을 내보내지 말고 오직 단 물만 나오게 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야고보 사도는 앞에서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성령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가능하다.
우리 자신의 육신의 힘과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성령충만하여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아니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의 신분 자체가 바뀌었다.
돌감람나무였던 우리가 접붙임을 받아 참감람나무가 되었다(롬 11:17).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도이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저주와 악독의 말이 합당하지 않다.
우리 모두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 되길 축복한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을
축복하며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 되길 원한다.
입술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자들 되길 축복한다.
마지막으로 13-18절 말씀이다.
13-18절
13-18절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지혜와 총명이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지혜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야보고 사도는 지혜에도
두 가지 종류의 지혜가 있다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땅의 지혜가 있고 하늘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땅의 지혜를 갖고 살아간다.
땅의 지혜가 무엇인가?
땅에 속한 지혜이다.
죄된 본성에서 나오는 지혜이다.
죄와 정욕을 따르는 지혜이다.
궁극적으로 귀신 사탄 마귀로부터 나오는 지혜인 것이다.
이러한 땅의 지혜로 행한 일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시기와 다툼이다.
혼란과 악한 일들이다.
죄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다시 말해 시기와 다툼, 혼란과 악한 일들의 그 이면에는
‘땅의 지혜’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흔히 권모술수라고 말을 쓰는데
이 권모술수가 바로 땅의 지혜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땅의 지혜를 자랑한다.
이러한 땅의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처세술에 이러한 땅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땅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이러한 땅의 지혜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땅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하늘 지혜는 무엇인가?
위로부터 난 지혜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지혜이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시는 지혜이다.
이러한 하늘 지혜로 행한 일들의 결과는 무엇인가?
17-18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자.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다시 말해 하늘 지혜는
순결하고 평화롭다.
친절하고 온순하다.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다.
편견과 위선이 없다(새번역).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을 결과를 보고
그 일이 하늘 지혜로부터 난 것인지
아니면 땅의 지혜로부터 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지혜가 하늘 지혜인지 땅의 지혜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죄인된 인간은 땅의 지혜로밖에 살 수 없다.
하늘 지혜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늘 지혜로 살 수 있다.
우리 모두 하늘 지혜로 살아가는 자 되길 축복한다.
하늘 지혜는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하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야보고서를 처음 시작하면서 야고보 사도가 무엇이라 하였는가?
1장 5절의 말씀을 찾아서 같이 읽어보자.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 사도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지혜가 바로 하늘 지혜인 것이다.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하늘 지혜를 부어주시는 분이다.
후히 부어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 지혜로 살아갈 때
우리는 순결하고 평화롭게 행하며 살아갈 수 있다.
친전하고 온순하게 행하며 살아갈 수 있다.
자비와 선한 열매를 가득히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결론
결론
바라기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길 축복한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의 찬송하며 형제와 이웃을 축복하는 자 되길 원한다.
땅의 지혜가 아닌 하늘 지혜로 살아가는 자 되길 원한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에 풍성한 의의 열매가 가득하길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