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을 밝히시는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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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수요 기도회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강건하세요’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명절이 끝나는 시간입니다. 올해 구정도 코로나로 인해서 활기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족들 간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오랜 만에 아이들이랑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교제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충만한 천국 기쁨이 넘치기를 기원드립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 우리는 다윗 왕의 애가인 시편 13편을 함께 묵상하고 영의 시력을 밣혀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애가라는 장르는 성경 예레미야의 애가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애가란 슬픔과 비참을 노래하는 시를 말합니다.
시편 13편은 다윗의 애가로 알려져 있고, 인도자를 따라 부른 노래라는 부제가 있습니다. 우리 13편의 제목을 봅시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이 시는 다윗 왕이 지은 가사에 곡을 붙여 다윗의 장막 아래 있는 법궤 앞에서 인도자 혹은 지휘자를 따라 부른 찬송입니다. 왕이었던 다윗이 무슨 고난이 있었을까 싶지만 사무엘 상에는 다윗의 힘겨운 고통과 고난을 잘 보여줍니다. 시편 13편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지는 몰라도, 다윗은 대적자들로 인해 고통을 겪는 중에 질병의 고난도 함께 해서 거의 죽음의 순간을 지나며 이시를 지은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고난이 성도를 사로잡게 될 때 성도의 눈은 어두워지고 모든 보이는 것이 애가가 되고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어느 때까지입니까를 네 번이나 반복하면서 오늘 시편을 쓰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봅시다.
시편 13편 1절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여기 첫 번째와 두 번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표현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어버리시고 숨어 계시다는 느낌을 가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고난이 얼마나 깊었고, 길었는지를 말해 주는 내용입니다. 왜 이런 느낌을 가졌을까요? 2절을 봅시다.
시편 13편 2절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다윗이 깊은 번민에 빠진 것은 바로 원수들의 지속적인 공격 때문이었습니다. 악인이 이기는 것 같고 자신이 실패한 사람 같이 느껴질 때 찾아오는 우울과 괴로움은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염려로 확대됩니다. 다윗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어느 때까지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고 그의 염려도 극도에 이릅니다. 3절에서는 그가 혹시 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보이고, 4절에서는 대적들이 자신을 이기고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3, 4절을 봅시다.
시편 13편 3, 4절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다윗은 지금 눈에 보이는 이런 두려움을 들고 하나님 앞에 와서 간구합니다. 원수의 지속적인 공격과 질병의 고통으로 인한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염려하는 자신을 통체로 들고 하나님을 찾아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가 한 기도는 무엇입니까? 3절 상반절에 다윗의 기도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3절 상반절을 봅시다.
시편 13편 3절 상)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여기에 나타나는 생각하사 응답하시고라는 말은 ‘나바트’라는 말로 나를 강력하게 보소서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소서, 어두운 눈을 들고 실패의 애가를 부르는 나를 보시고, 내 눈을 밝시혀 주옵소서 하는 것이 다윗의 기도의 정확한 뜻입니다. 그는 낙심하여 넘어진 지금의 상황을 들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있습니다. 넘어진 나, 어두운 내 눈을 들고 아버지 앞에 나와 보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이 기도는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갑자기 다윗은 새 힘이 쏫아 오릅니다. 우리 5, 6절을 봅시다.
시편 13편 5, 6절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다윗은 고난 중에도 주의 사랑을 의지했습니다. 여기 주의 사랑은 주의 은혜, 곧 헤세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마음에 구원의 기쁨이 찾아올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당장은 아직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마음은 절망의 애가를 들으신 하나님이 그게에 베푸실 은혜를 소망하는 새로운 믿음이 그의 마음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이제 절망의 한숨은 뒤로 가고 마음에는 구원의 기쁨으로 인한 노래가 찾아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가 의지한 은혜가 그에게 베풀어짐으로 그의 눈이 열려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어떤 답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눈은 주의 은혜와 베푸신 ㄴ은덕을 바라봄으로 영의 눈이 보는 그것들로 인해 그의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의 눈을 여신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우리는 종종 다윗의 애가를 보면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니 왕이 무슨 이런 고통을 노래하고, 왕의 노래가 무슨 애가를 부르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 나라의 왕의 노래를 남긴다면 그의 성공과 업적을 기리는 찬양의 노래가 되어야지 어떻게 원수들에게 쫓겨 다니고 질병에 허덕인 이야기가 왕의 노래랍시고 우리에게 들려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애가는 종종 해석자들, 혹은 주석가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왜 자신의 성공을 노래하지 않고 자신이 겪은 고난의 어두움을 노래하하며 자신의 시를 시작하고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사실 우리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절망과 좌절로 인해 찾아오는 우울을 종종 직면하게 됩니다. 교회 생활에서나 일반 사회 관계에서 우리는 항상 승승장구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친한 이들의 배신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조직적으로 나를 대적하는 이들로 인해 마음이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는 모슨 삶에 죄악의 흔적들을 가지고 있어 진실한 사랑과 섬김을 나누지 못하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히려 우울함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윗과 같이 성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사실은 큰 우울과 절망이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죄로 인해 관계가 깨어지고, 질병의 고통을 겪는 인생을 긍휼히 보십니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지속적인 은혜와 은사들을 누리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아담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죄의 영향력으로 서로의 관계를 깨고 이유없이 서로를 원수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자연 속에 있는 온갖 바이러스들도 인간의 약해진 면역력을 공격하며 이제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해결하시고자 그를 보내시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안에 거하시는 삼위 하나님 중 두 번째 위격의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셔서 타락하고 부패한 인류가 예수님 안에서 먼저 아버지와 영원한 교제를 회복케 하십니다. 그리고 죄인된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셔서 죄인들이 새로운 회복의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요한은 예수님 안에서 성도는 이제 이웃을 사랑하는 새 존재로 변화된다고 선언합니다. 요한일서 4장 21절입니다.
요일 4장 21절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처럼 예수님 안에 드러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어 죄인인 우리가 형제를 향해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J3. 사람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 안에 드러나게 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셨고,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그리스도로 오실 예수님의 고뇌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고자 자기 자녀들, 곧 유대인들에게 원수로 여김을 받으셨고, 자신의 제자의 손에 팔려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죽기 전에 예수님은 모진 매를 맞으시며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다 지고 가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이 성도에게서 해소되게 하셨습니다. 다윗 왕은 참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지신 이러한 죄의 값을 우리에게 예언하여 보여줌으로서 오실 메시야 왕의 고뇌를 이렇게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성도의 구원을 위해 고난의 메시야가 되셨습니다.
W1. 예수님은 성도의 구원을 위해 고난의 메시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시고 고난을 당하신 하나님의 메시야로 오셨습니다. 구약 역사에서 다윗은 오실 왕 예수님을 예표하는 메시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 번에 걸쳐 기름부음을 받으며 고난 중에 왕이 됨으로서 오실 왕 예수님의 고난을 미리 보여 주었습니다. 다윗은 주변의 원수들에게 고난을 받고, 질병의 고뇌를 지면서 참된 메시야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고난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구원을 이루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모든 고난을 겪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모든 우울과 죄의 열매를 우리에게 떠나 보내시는 참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W2. 성도는 예수님으로 인해 영의 눈을 얻게 됩니다.
W2. 성도는 예수님으로 인해 영의 눈을 얻게 됩니다.
성도는 스스로의 도덕과 학문이 아니라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믿음의 눈을 얻습니다. 오늘 시편 13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혹시 하나님께 유기된 자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절을 봅시다.
시편 13편 1절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깊은 고난의 연속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 같은 고뇌는 다윗을 가장 두렵게 한 고통이었습니다. 나를 잊으시고, 내게서 떠나시지 않으실까 하는 고통이야말로 다윗의 기도의 첫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이런 기도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는 유기 당하시는 예수님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유기됨에 대한 절규는 순간적으로 변하여 놀라운 소망의 기도로 바뀝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마지막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데서 드러납니다. 우리 누가복음 23장 46절을 봅시다.
누가복음 23장 46절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뒤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절망과 유기의 고통은 메시야이신 예수님 안에서 영혼의 새생명을 소망하는 기도로 변화됩니다. 유기를 두려워한 다윗의 기도는 우리 주님의 은헤의 간구함 안에서 어두운 눈을 밝혀 참된 생명의 빛에 거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은혜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메시야의 삶과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새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W3. 하나님은 메시야의 삶과 사역을 통해 우리에게 새 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아 죄인의 영의 눈을 밝혀 성도의 삶을 새 삶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가 되시며, 여호와의 예수아 곧 구원이 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도는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유기의 고통과 모든 질병을 이기고 참 생명의 빛을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놀라운 회복의 빛을 얻도록 우리 영의 눈을 여시고 선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T1. 다윗은 메시야를 예표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T1. 다윗은 메시야를 예표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왕이 되는 영광을 풍성히 누린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난과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고뇌와 고통이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영광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성도에게 새 생명을 주실 분이셨기에 다윗의 생애에도 많은 고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에 드러난 그의 많은 고난들은 우리에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져 주실 온갖 죄와 연약함을 보여주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왕으로서 대적들의 공격과 질병의 고통 속에 허덕였던 다윗의 삶이야말로 오실 메시야의 고난을 드러내는 영광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애가는 영의 눈을 열어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소망으로 마쳐집니다. 그는 슬픔만으로 노래하다 죽는 자가 되지 않고, 유기된 고난만을 보지 않고, 구원의 영광을 봄으로 새 삶을 누리는 메시야의 참 자녀 되어 애가를 찬송으로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T2. 세상은 고난의 주님을 알지 못하기에 아픔의 가치를 모릅니다.
T2. 세상은 고난의 주님을 알지 못하기에 아픔의 가치를 모릅니다.
세상은 그저 성공하고 돈많이 버는 것만이 전부라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리석은 선택일뿐, 참 하나님의 아들들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셔서 고난의 길을 걸으셨고, 사도 바울은 아직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 진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도 영광과 성공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역사에도 아픔이 있고, 고난이 있고, 원수의 도전과 질병의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들이 변하여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고, 이 아픔들이 새로워져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의 교회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T3. 성도와 교회는 고난을 통해 새로운 영의 눈을 뜨는 영광을 누립니다.
T3. 성도와 교회는 고난을 통해 새로운 영의 눈을 뜨는 영광을 누립니다.
물론 고난과 고통은 우리 모두를 두렵고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참된 고난은 성도에게 영광을 줍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영광을 향한 길이었고, 그 십자가는 생명을 얻기 위해 반드시 예수님께서 지셔야 했던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하면 쉽게 살까? 어떻게 하면 저절로 잘 될까 만을 기대하며 살지만, 주님의 나라는 고난이 영광이고, 아픔이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의 교회도 아픔과 고난없이 그저 영광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고난과 아픔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다윗의 관계의 고난과 육신의 질병이야말로 오실 예수님의 삶을 드러내는 영광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 주신 고난의 자리에서 그것만 바라보고 두려움에 떨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에게 영광을 보는 영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영광의 눈을 가지셨기에 십자가의 고난을 지실 수 있었고, 사도들도 이 영광을 보는 영의 눈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난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 왕은 자신의 고뇌와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온전한 믿음을 붙잡고 그 모든 아픔을 하나님 앞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칼빈은 이것이 다윗의 참된 믿음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당장 어떤 회복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와 눈을 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갑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성도의 희망임을 믿고 그렇게 간구하여 진정으로 영의 눈을 열고 애가를 찬송으로 바꾸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고난 중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앞으로 주실 영광을 바라보는 영의 눈을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봅시다.
히브리서 12장 2절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난은 우리에게 어두운 눈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간구하는 성도는 고난 앞에 어두운 눈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밝은 눈을 가지고 고난을 면류관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오늘 시편 13편은 그래서 애가가 아니라 소망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고난 안에서 영의 눈을 환히 열고 밝히 천국을 보며 소망을 노래하는 성도의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