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벗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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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사도신경
찬송
찬송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기도
기도
성경봉독
성경봉독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서론
서론
어제 야고보서 3 장에서
야고보 사도는 지혜에는
하늘 지혜가 있고 땅의 지혜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위로부터 난 지혜인 하늘 지혜,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땅의 지혜는 정욕의 것이고 귀신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땅의 지혜로 인해
시기와 다툼이 생긴다고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 4 장은
이러한 시기와 다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말씀을 전한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어떠한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금 돌아보며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축복한다.
본론
본론
1-3절
1-3절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여전히 죄의 정욕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자들을 향해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다.
야고보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 사이에, 교회 안에 싸움과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있고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로 인해 서로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발전하여 싸움과 다툼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싸움과 다툼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일어나면
그것으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싸움과 갈등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인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와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다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갈등의 원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짜 이유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야고보 사도는 무엇이라 이야기하는가?
1절이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바로 정욕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싸움과 다툼의 근본적인 이유와 원인이 바로
바로 우리 안의 죄된 본성에서 나오는 정욕 때문과 욕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정욕이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씀한다.
작게 보자면 성도 개인의 내면에서 싸움을 만들어 내고
크게 보자면 성도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싸움을 일으키고 있는게
바로 이 정욕이라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어제 말씀에서
이러한 정욕은 땅 위의 것이고, 귀신의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 지혜가 아니라 땅의 지혜라고 이야기했다.
한번 잘 생각해 보라.
혹시 지금 누군가의 관계 속에 갈등이 있다면,
싸움과 다툼이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라.
결국은 정욕과 욕심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정욕과 욕심 때문에
나에게는 없고 다른 사람에게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싶어한다.
욕심을 내지만 그것을 가질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
그 마음이 더 넘어서면 심지어 살인의 마음까지도,
그 사람이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도 갖게 된다.
이렇게 정욕으로 비롯된 마음으로 인해
우리 안에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히 공급해 주시는 분이다.
만약 우리 삶에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서 빼앗아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 아버지께 구하여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것을 빼앗아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이 세상의 방식이지, 결코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럴 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께 구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때도 분명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구한 그것이 우리에게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주면 오히려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기에 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에 대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정욕으로 인한 탐심의 마음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순간적인 쾌락과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어둠의 길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계속해서 4-6절 말씀이다.
4-6절
4-6절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정욕과 욕심은
죄된 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야고보 사도는 이것들을 가리켜 ‘세속’이다, ‘세상’이다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세상과 벗된 이들을 향해 야고보 사도는 ‘간음한 여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 속한 자임에 불구하고
죄된 정욕과 욕심을 좇아
이 세상 것을 탐하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이 세상이라는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바로 영적 간음인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재물이라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또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 장 5절에서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세상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세상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세상과 친구이 되는 것은,
세상 정욕과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미워하신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 중 두번째 계명이 무엇인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20 장 5-6절 말씀이다.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그냥 보고 계시지 않으신다.
질투하시고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베풀기 원하시는 분이다.
겸손히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구원을 인치시고 확증해 주셨다.
지금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 삼아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신다.
우리가 세상 정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가운데 거하며 살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예수님은 분명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을 따를 것인지,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그 중간은 없다.
계속해서 7-10절 말씀이다.
7-10절
7-10절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여전히 이 세상 정욕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향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을 향해 결단할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께 복종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세상 정욕과 그 배후에 있는 사탄 마귀를 대적하라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손을 깨끗이 해야 한다.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마음의 생각과 삶의 행동들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두 마음을 품고 이 세상 우상을 섬겼던 것을 애통하며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과 원수되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우리 모두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 되길 축복한다.
이렇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나아갈 때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며 높여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 되길 축복한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넉넉히 채우시며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 되길 축복한다.
계속해서 11-12절 말씀이다.
11-12절
11-12절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야고보 사도는 시기와 다툼에 이어
비방과 판단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기와 다툼이 주로
상대방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할 때 생기는 것이라면
비방과 판단은 주로
나와 상대방의 생각이나 입장의 차이가 있을 때
나의 것이 옳다는 생각과 기준으로 상대방을 깎아 내릴 때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비방과 판단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하신다.
서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도
시기와 다툼과 마찬가지로 땅의 지혜, 죄된 정욕에서 비롯된 악한 것이다.
이웃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비방과 판단은
그리스도인에게 마땅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단순히 형제, 즉 사람에게만 국한된 죄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11절에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형제를 비방하거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곧 그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비방과 판단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약 민수기 12 장에 나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을 두고
그의 누이와 형제인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을 하였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가리켜 ‘내 종 모세'라고 이야기하시며
모세를 비방하던 미리암과 아론을 향해 진노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비방하는 것을 하나님 자신을 비방한 것으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곧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따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율법을 갖고 사람을 재판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율법을 세우고 그 율법을 따라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
오직 하나님 만이 율법으로 사람을 심판하셔서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할 그 어떤 자격도 능력도 없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4 장에서
이와 비슷한 말씀을 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가 갖고 있는 의견을 존중하고 비판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로마서 14 장 4절 말씀이다.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우리에게는 다른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행하는 자일 뿐이다.
다른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만약 다른 형제에게 연약한 모습이 보인다면
우리는 그를 향해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품어주는 우리 모두 되길 축복한다.
마지막으로 13-17절 말씀이다.
13-17절
13-17절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 사도는 마지막으로
허탄한 자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허탄한 자랑이란 무엇인가?
거만한 자족감과 자만심에 비롯되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허탄한 자랑, 즉 이생의 자랑은
우리의 죄된 본성에서 나오는 땅의 지혜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허탄한 자랑이 다 악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야고보 사도는 여기에서 허탄한 자랑의 한 가지 예를 든다.
어떤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어떤 도시에 가서 일 년 정도 그곳에서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이야기가 허탄한 자랑이라고 말한다.
어째서 이러한 이야기가 허탄한 자랑인 것인가?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기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돈을 버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열심히 일을 해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이 지헤로운 사람이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허탄한 자랑인 것은
이러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자기 생각과 뜻대로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자기 몸과 생명에 대한 권세가 자기에게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교만한 것이고, 허탄한 자랑인 것이다.
예수님도 이런 허탄한 자랑하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한 부자가 소출이 풍성하여 그 곡식을 쌓아두기 위해
원래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을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에 대한 권세를 갖고 계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내가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준비도 하지만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기가 계획한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허탄한 자랑이며 하나님 앞에 악한 태도인 것이다.
결론
결론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 장 9절 말씀이다.
우리 모두 겸손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늘 지혜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맛보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 되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