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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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9:51-62

누가복음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등장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스도의 사역 완수
특별히 오늘 누가복음 9:51-19:27절까지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이제 여기에 우리가 잘 아는 사마리아인 비유, 나사로 비유, 탕자의 비유 등 유명한 예수님의 이야기들이 나타납니다.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기기로 굳게 결심하십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He set his face to go to Jerusalem”
한글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에는 “그의 얼굴을 예루살렘 쪽으로 고정시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쪽을 향하고 있는 예수님의 비장한 표정이 어떠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기가 걸어야 할 인생의 여정을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 계획에 따를 의지까지 가지고 계셨다.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계속해서 그를 시험하고 책잡았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고난받을 것을 아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생각날 수 있다. 바울 역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그곳으로 올라갔다. 사도행전 20:22-24은 아래와 같이 말씀합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주님께 본받은 이런 사도 바울의 모습, 우리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예루살렘, 그 사명의 길로 우리의 얼굴을 돌이키고 그 길을 향해 걸어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못 걸어갑니다. 오직 ‘성령에 매여' 걸어가는 것입니다.
적용) 십자가의 길 (사명의 길) vs 편안하고 안락한 길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갈릴리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요단 동편으로 상당히 우회해야 했기에 적어도 며칠을 더 걸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한 마을에서 숙박하기 위해 제자들 중 몇을 보내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왜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과 그 일행을 갈릴리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종교 순례자로 생각했기에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우리가 아는 것처럼, 유다의 바벨론 포로 때 생겨난 이방 민족과 유대인간의 혼혈족이었습니다. 느헤미야와 스룹바벨이 성벽과 성전을 재건할 때 동참하려고 했으나 종교적 순수성을 내세운 유대인들은 그들의 도움을 냉정하게 거절함으로써 그때부터 서로 사이가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독자적으로 여호와께 제사 드리기 위해 그리심산 위에 자기들만의 성전을 건립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기들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갈릴리 유대인들을 싫어했으며 통과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지역을 통과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전합니다.
그러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명해서 하늘로부터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사마리아인도 심판의 대상 이전에 구원의 대상이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주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데 때로는 거절을 당할 때 우리는 열 받고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짜증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방법으로 그 상황을 바꿔보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 간증 (첫째날 저녁 예배 이후 마음이 상했던 일)**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제 주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에게 “너가 예수를 따를 때에 있을 비용을 계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원 받는 말씀과는 별개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니까 이 사람은 서기관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주님 따라가면 비용을 계산했습니다. 근데 잘못 계산했습니다. 같이 잘 따라가면 자신도 한 자리를 차지 하겠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꿰뚫어 보시기에 서기관의 이 말의 뒤에 숨어 있는 의도를 꿰뚫어 보시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일단 주님은 집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쉴 곳은 십자가 위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대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붙은 귀신을 내쫓으며 그 심령 안에서 쉬셨습니다. 매국노요, 동족들의 돈을 등쳐 먹고 사는 삭개오가 회개하자 삭개오의 심령 안에 쉬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쉴곳이 많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를 따르려면 너에게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것들을 움켜쥐지 말고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적용) 제가 휴스턴에 와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집을 산다"라는 말입니다. 한국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내가 살 집을 소유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듣다 보니까 제 안에도 욕심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아, 나도 집 사고 싶다.” “예수 잘 믿고 예수 따라가면 집 살 수 있다"
이런 생각까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느낀 것이, 주님의 품 안이 가장 좋은 shelter이고, 주님의 품 안에서 안정감을 느껴야 하는데 집을 통해서, 때로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 내 인생의 만족과 안정감, 보호 받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은 집이 없었습니다. 불편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Comfort zone 안에만 있으려고 합니다. 비용 계산을 잘못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의지적으로 나와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여기서 우리는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불효자가 되어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히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합니다. 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그 당시 장례 풍습은 오늘날과 좀 달랐습니다. 유대인은 사람이 죽으면 1차로 동굴에 안장하고, 1년 정도 니나면 유골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2차 장례가 있는데 본문에서 이 사람이 요청한 아버지 장례는 2차 장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유대인은 사람이 운명하면 바로 곡을 하고 그날에 장례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장례와 그 절차는 이미 죽은 자들 사이의 일이기에 아직 살아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가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 제자의 인생에 일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 내 인생이 잘 풀리면 예수 믿고 따라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미 인생의 우선순위가 다르다.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계속해서 주님은 제자로 살아가기 위한 비용을 말씀합니다. 주를 따르고 싶지만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작별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약해져서 주의 길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도 암시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라는 위대한 사명을 눈앞에 두고서 그것을 할 것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과 눈치를 고려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주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있습니다.
결론
목사, 선교사만 가능한가? 아니다. 직장에 사는 사는 사람들도 이 모든 동기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거룩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받을 축복만 생각하지 비용은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비용을 생각하니 주님을 따르고 싶으십니까? ㅎㅎ 그러나 그렇게 살 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고 그때 비로소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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