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전과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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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이전과 이후의 삶
본문: 엡2:1-10
1. 서론
예전에 1995년에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서 많은 희생자가 생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말 수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망자가 5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온 나라가 당황과 패닉에 빠졌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사람들이 실종자들의 안위와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을 때 티비 뉴스에 한 장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웃음을 띄며 옷을 줍고 있던 사람의 사진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많은 희생자가 있고, 모든 국민들이 슬픔에 빠져 있는 와중에 이러한 일ㅇ르 벌일 수가 있는가?? 분노 하기도 했고… 언론에서는 그 여인에 대해서 악마의 웃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 날에만 일어난 일들이 아닙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평생 발품을 팔아 모은 한 노인의 돈을 사기를 친 사건들… 돈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에 아랑곳 하지 않는 범죄들… 이러한 오늘날의 뉴스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현대 우리 사회의 악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며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현대를 매우 암울하게 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암울한 모습은 오늘날의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바울은 구원 받기 이전에 성도들의 모습을 이야기 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자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
신학자들은 이 1-3절의 내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 합니다.. 1-3절은 구원받기 이전에 성도들이 처해 있던 “비참한 상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모습은 비참한 상태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 그 영상에 나왔던 사람과 같이 자기 육체의 욕심대로 행하는 악마의 웃음을 띈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성경이 전제하는 것은 우리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죽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전혀 가망없는 상태의 죽음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1절에서 원래 원문에는 살리셨도다 라는 문장은 없습니다.. 1절은 “여러분의 허물들과 죄들로 인하여 죽은 여러분을” 으로 문장이 끝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구절이 1절입니다.. 그 상태에 집중하게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바울은 성도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1절의 말씀 허물과 죄로 너희가 죽어있는 상태이다!! 하는 것은 마음의 눈이 밝아진 그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왜 우리가 죽은 상태에 있다는 것인가? 하니 사람은 하나님께 생명을 공급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생명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8절에서 말합니다.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엡4:18.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생명을 얻기 전까지는 코마 상태.. 죽어있는 것과 같은 상태.. 전혀 생명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무신론자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방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이 모습이 “모든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있습니다 라는 외침은 공허하게 들리기도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더욱 활기차고 살아있는 듯이 살아가고 있으며 화려한 삶과 만족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면 죽어 있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영역…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지라도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인 “영혼”에서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눈이 멀었고, 성령의 음성에 귀 먹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전혀 없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향하 영혼이 달려가지도 않고… 시체처럼…. 하나님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 생명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서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그 삶을 행하였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하였다고 번역된 “페리파테오”는 걷다, 행하다, 살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로 자유롭게 다니고 걷고 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랐다고 말합니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속하여 따라갔다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의 풍조,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 뭔가 우리에게 딱히 와닿지 않는 문구 같습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원어를 그대로 번역을 하면, “이 세상의 시대에 따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치, 정신을 따라입니다.
세속주의, 물질주의, 권력주의, 개인주의.. 그 모든 풍조를 따라입니다.. 그것에 매여 헤어나오지 못하며 사람들이 그것을 만들고 이끌어 가는 것 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 정신과 가치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10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앞서 우리가 세상의 풍조에 따라 행하는 자들인데.. 10절에서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신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5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사리셨다!!! 하나님이 살리심으로 무엇을 행하게 하시려는가 하니 10절에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선한 일을 위하여 행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앞서 생명과 전혀 상관없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선한 일..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전에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라!! 따라서 노예된 자들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6절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따라 종되어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셔다… 이것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만물을 통치하는 영광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 최상의 진리요, 가장 높은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종과 노예에서 통치자로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있는 특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은 “선한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로 양자 삼으신 이유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고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
[1]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 전자책.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2569: 대한성서공회, 1998), 엡1:5–6.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것은 선한 일을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것은 입술로 찬양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이 세상 가운데 선한 일을 행하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살리신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가?? 세상의 가치와 정신에서도 평안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것에 종되어 속하지 않는 모습.,…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전혀 세상의 가치와 다른 가치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통해 세상에 도전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악마의 웃음… 그 웃음으로 사는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된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도 살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샬롬입니다.. “평안”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7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그렇게 살리시고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그 종된 길로 들어 서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샬롬을 전하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선한 일… 그것은 단순히 착한 일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것을 추구하며 사는 모든 삶입니다… 세상 풍조에 종속 되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서 정말 무엇을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그 부르심 가운데 우리가 살아났음을 기억하셔서 이 말씀으로 세상을 담대히… 그렇지만 불안해 하지 아니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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