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어디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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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살아계시던 시대에 유대 민족이 결혼을 할때 보통 여자들은 14-15세에 결혼을 했고 남자는 30세 이상이 되어서 결혼을 했다.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간음을 저지르면 사형이었고 약혼 기간중에 간음을 저지르면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있었다.
오늘 본문에서 한 여자가 간음현장에서 붙잡혀 예수님 앞으로 끌려왔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돌로 쳐 죽인다는 이야기를 한걸로 보면 아직 정식 결혼식을 치르기 전의 여자일 확률이 높고 나이가 어린 여자일 확률이 높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고 있는 도중에 끌여 온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한 가운데 세워 놓았다. 간음 현장에서 바로 붙잡혀 끌려 왔기 때문에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여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간음한 여인으로 서있는 이 순간 수치스러움보다 더 큰것은 어쩌면 돌로 쳐서 죽임당할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며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왜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모세의 율법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 그 자리에서 끌어내서 돌로 쳐 죽이지 않고 구지 예수님께 데려왔을까? 왜 예수님의 의견을 듣기위해 여자를 그 자리에 데리고 와야만 했을까?
6절에 보면 고발한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예수님이 이 여인을 용서하라고 하면 그 당신 민족의 법인 율법을 거역하는것이 되고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면 그당시 유대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법을 위반하게 하는 선동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당시 로마는 식민지 민족들이 스스로 사형을 집행하는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에수님을 모함할 수 있는 구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아무말없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땅 바닥에 글씨를 쓰신다.
바리새인들은 같은 질문을 계속한다.
예수님께서 다시 일어서셔서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고 말씀하신다.
여인의 죄를 없다고 하지 않으셨다. 돌로 쳐 죽일 죄임을 인정하셨다.
간음한 여인을 구하려고 하셨지만 죄가 없다고 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지만 죄의 댓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
바로 예수님께서 그 댓가를 치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숙여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다.
무엇을 쓰셨는지 왜 쓰셨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하나 둘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 자리를 떠나간다.
신기한 일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큼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지금 교활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모함하여 법을 이용해 죽이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 한마디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돌아선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끝나면 빛 되신 예수님에 대해 나오는데 어쩌면 빛되신 예수님이 어두운 사람들의 양심에 비추니 어둠이 물러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벌벌 떨었던 것 처럼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모여있는 그들의 어두운 마음을 도망치게 만들었던것 같다. 이 간음 죄를 지은 여인의 구원을 위해서.
잠시후 모든 사람이 사라진것을 확인하신 예수님이 여인에게 말한다.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있냐?
너를 정죄하는 사람이 없는거지?
여인이 대답한다.
주여 없나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선생이라 부르며 약간의 존중을 보이는척 했지만 이 죄인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고 있다.
누가 더 큰 죄인인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한 간음한 여인인가?
아니면 간음한 여인을 잡아 끌고 왔지만 에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바리새인들인가?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이 여인을 돌로쳐 죽이려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음을 보여주고 안심시키신다.
그리고 예수님도 정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이었다면
먼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여인의 약속을 받아낸뒤에 사람들을 보내고 여인을 구해주었을 것 같다.
예수님은 우리의 두려움 연약함을 먼저 아시고 살펴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죄를 용서하신것은 다시 범죄하지 않으며 살 여인의 인생을 바라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 때가 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 자기 자신이 봐도 용서하기 어려운 모습.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실망감을 계속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바리새인이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돌로 쳐 죽여야 되는거 아니냐며 여인을 두렵게 했던 것 처럼
우리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넌 죽어도 싸다. 넌 병신이야. 넌 바보야. 넌 끝났어.
너같은게 무슨 희망이 있겠어? 넌 안되. 라며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고 욕하고 고발하며 살 때가 있다.
나쁜 성적, 뒤틀어진 친구 관계, 모든 것이 내 탓인것 처럼 느껴지는 상황, 발등을 찍고 싶은 실수, 그 실수로 인한 수치와 부끄러움등의 순간이 찾아 올 수 있다.
그 때 자기 자신을 간음한 여인취급하며 넌 죽어도 싸다고 괴롭히게 된다.
공부를 잘해야해!
친구들이 많아야해!
엄마 아빠를 만족 시켜야해!
잘생겨야해!
친구들의 미움을 받으면 안되!
여러가지 자신만의 율법을 가지고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할 수 있다.
그 때 기억하면 좋겠다.
예수님 한 분 외에는 누구도 나를 정죄 할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심지어 나 자신도 나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죄를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뿐이시다.
오늘 그 예수님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죄는 지어도 되는 별것 아닌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처절한 죄의 댓가를 예수님이 치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괜찮은것이다.
예수님이 용서하시면 나도 나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하고 하신것 처럼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다시는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미워하면 안된다.
모두가 괜찮다고 해도 예수님이 안 괜찮다고 하시면 괜찮지 않다.
모두가 괜찮지 않다고 해도 예수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괜찮다.
오늘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마음속에 사라지도록 예수님께 기도하고
나를 정죄하는 생각들이 모두 사라지도록 예수님의 도움을 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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