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를 불러일으키는 하나님

룻기 새벽기도 설교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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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려운 시기일수록 자신의 믿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나의 믿음이 연약한 게 아닌가, 이렇게 해서 내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은 이 믿음이 누구로부터 오며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의 믿음을 점검하고 믿음으로 인해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분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들을 다 잃었습니다. 청상과부가 된 두 며느리만 남았습니다. 룻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양식을 주셨다는 소문을 듣고 두 며느리와 유다 땅으로 갔습니다.
길을 가는 도중 나오미가 며느리들을 설득합니다. 8절을 보면 친정으로 돌아가라 말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축복을 합니다. 재혼을 해서 새 출발을 통해 남편을 상실한 것에 대해 위로 받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나오미 본인이 아들을 둘이나 낳아서 키워가지고 며느리들을 재혼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 출발하라고 합니다. 13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나오미의 이런 말을 믿음이 없다고 평가합니다. “며느리들을 유다 땅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 믿게 해야지 어떻게 모압 땅으로 보내서 우상숭배 하며 살도록 하느냐” 이렇게 하면서 나오미를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인간적으로는 참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옛날 사람들은 일부종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 번 우리 집안에 시집 왔으면 남편이 죽어도 시댁의 귀신으로 죽어야지!” 이런 마인드가 옛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나오미는 며느리들을 굉장히 불쌍히 여기고 새로운 인생을 살길 원했습니다. 게다가 며느리들이 남편을 잃은 것이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좋은 시어머니입니다.
이런 좋은 시어머니 밑에 좋은 며느리들이 있었습니다.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과부로 남은 시어머니가 걱정 됩니다. 자신들이 낯선 땅의 과부로 살더라도 반드시 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헌신적이고 착한 며느리들인지 모릅니다. 울며불며 어머니랑 같이 가겠다고 사정을 합니다. 며느리들의 울음이 9절과 14절 두 번 나오는데, 문법적으로는 9절과 14절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계속해서 통곡했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오르바는 어머니의 축복을 받고 떠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라 판단을 하고 다시 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대충 읽으면 이 오르바가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오르바도 룻에 못지 않은 굉장히 좋은 며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봉양하지 않아 구원 못 받고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해서 구원 받고 결론은 시어머니한테 잘해서 복 받자!” “룻 같은 며느리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면 곤란합니다.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는 것은 십계명 6계명 같은 본문을 통해서 깨닫는 내용이지 룻기랑은 상관이 없습니다. 오르바도 좋은 며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좋은 시어머니 밑에 똑같이 좋은 며느리들이 있는데 왜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룻은 왜 끝까지 나오미를 쫓아가서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까? 이건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착하게 산다고 구원 받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룻의 심령 가운데 믿음을 일으키셨기 때문에 룻이 끝까지 나오미를 좇아간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룻이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어머니가 죽는 곳에 나도 묻힐 것이라 합니다.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실 것이라 합니다. 자신을 저주하는 것은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16절을 자세히 보면 룻이 하는 이야기와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이야기와의 연관성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로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십니다.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고향을 떠나서 땅을 얻고 백성을 이루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룻은 친정인 모압을 떠나서 어머니의 백성을 따라 가려고 하고 어머니의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룻의 믿음의 연관성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계보를 통해 그리스도가 오시는데 룻이 이 계보에 속하는 것을 보면 룻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일종의 연속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윤리적으로는 괜찮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신앙적으로는 훌륭한 본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족한 믿음의 사람의 며느리로 지낸 룻은 아브라함의 반열에 들어갈 정도의 믿음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이걸 설명할 방법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에서 조금씩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에 대한 이야기가 룻의 심령에 씨앗이 되어 싹을 틔웠습니다. 오르바도 룻도 똑같이 윤리적으로 좋은 사람이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룻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룻의 심령에서 믿음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구원은 윤리적인 완성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불러 일으키셔야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적용+증명) 우리는 구원 문제에 있어서 내가 구원 받을 자격이 있나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나의 태도나 행동을 보면 내가 구원 받을 정도로 훌륭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의심이 되고 시험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는 근거는 우리의 윤리적인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나서 율법을 주셨지 율법 지키면 홍해 건넌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참된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담습니다. 교리적인 표현으로 믿음을 수납한다고 하는데, 우리의 믿음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부실한 믿음이 되기는 하지만 믿음이 떨어지고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환문장) 그 다음으로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믿음을 일으키시지만 또 회개를 일으키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분이다.
(설명) 하나님이 믿음을 일으키실 때 우리는 그 믿음에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마틴 루터가 말하는 것처럼 믿음은 빈손입니다. 거지의 손입니다. 그 손에 은혜를 채워 넣어야 합니다.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례입니다.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불러일으켜주시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믿음이 든든하게 서지 못합니다. 믿음이 든든히 서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것으로 우리 내면을 채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과 관계가 소홀해지고 세상과 언약하며 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이걸 그냥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불러일으키시고 믿음이 든든히 서지 못하는 것을 보시면 길이 참으시다가 믿음에 개혁을 일으키십니다. 회개를 불러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 A/S에 들어가십니다. 정품일수록 A/S가 확실한데 우리의 믿음이 정품인 증거는 바로 회개입니다. 이 회개는 순간적인 감정의 눈물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돌이키려는 의지와 열매도 포함합니다. 믿음을 불러일으키신 하나님이 믿음의 질적인 차원도 책임지십니다. 무슨 의미냐면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만 믿음이 부실해지고 빈약해졌을 때 하나님이 회개를 불러일으키셔서 믿음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정품인 믿음에만 생기는 일입니다. 모조품이거나 유사품인 믿음은 이런 AS가 없습니다.
다시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룻의 결단을 듣고 설득을 포기합니다.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들어갑니다. 베들레헴으로 갔더니 나오미가 돌아온 것 때문에 그 성읍이 떠들썩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베들레헴에서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유명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저 사람이 나오미가 맞느냐? 하고 서로 서로 물어봅니다. 최소 10년만의 귀환입니다. 남편과 아들들의 죽음을 겪은 모진 세월을 보냈습니다. 나오미의 그 분위기나 외모가 얼마나 많이 변했겠습니까? 사람들이 나오미가 귀환한 것에 대한 놀라움, 약간의 흥분, 반가움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나오미를 맞이했습니다. 이 때 나오미가 대중들 앞에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그냥 넘어가는게 아니라 성도의 공적인 회개로 봐야 합니다. 20절과 21절을 보면 나오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나오미는 본인이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게 살지 못해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본인을 나오미라하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달콤함 내지는 희락이라는 뜻입니다. 마라는 잘 아시는 것처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써서 마시지 못한 물입니다. 마라는 쓰다라는 뜻도 있고 괴로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풍족하고 달콤하고 기뻤던 삶이 상실되고 쓰고 괴로운 삶이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있습니다. 생각으로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다시 언약의 땅으로 돌아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공적인 고백이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회개를 보면 이상적인 회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되 죄를 고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공동체 앞에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회개는 참된 회개입니다. 이 회개는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회개입니다. 하나님이 불러 일으키신 참된 믿음이 있는 성도라도 은혜를 채우지 않으면 그 믿음이 부실해질 수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그 믿음에 회개를 불러일으키셔서 다시금 믿음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불러일으키시지만 필요에 따라 회개를 일으키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마지막 날을 맞이할 때까지 믿음이 든든히 서가도록 하십니다.
(적용) 아까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하는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면 내가 구원 받을 만한가 하는 고민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이 약해집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해서 구원 받고 확신이 없다고 해서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구원의 확신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이 약해질 때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내가 말씀에 비춰 살아가지 못했다면 이전에 했던 잘못에 얽매여서 죄책감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참된 회개가 드러나야 합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되 실질적으로 그 죄를 고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고쳐야 합니다. 나의 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다면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이런 죄를 지었는데 고칠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요청하며 내 삶이 죄에서 멀어지도록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 삶이 죄에서 멀어지고 의로 나아갈 때 내가 가진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점점 확신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회개를 불러일으키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죄를 고치는 일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희생시키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우리의 죄를 고치고자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에게 참된 회개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의 믿음을 말씀과 기도로 채우며, 회개로 개혁하며 믿음이 든든히 서 가도록 해야 합니다. 부실한 믿음을 튼실하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전환문장)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분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지어낸 종교적 신념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은혜를 담아 든든하게 세워지는데 은혜 받는 일에 소홀하면 나오미처럼 믿음이 부실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었기에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회개를 불러일으키셔서 믿음을 개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 믿음이 약해질 때 은혜로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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