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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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기도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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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성성

설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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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이르렀사오니’(1절)는 ἔρχομαι(엘코마이)의 완료형이 사용되었다. ‘때’(ὥρα, 호라)는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의 시간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2:4; 7:30; 8:20; 12:23, 27; 13:1). 그러나 그 무게 중심이 다분히 ‘죽음’에 위치한다. 다시 말하면, ‘때’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셔서 영화롭게 되는 시간 전체를 의미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강조가 함께 있다. 그렇다면 왜 엘코마이의 완료형이 쓰였을까? 그만큼 그의 때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같이 등장한다(1절).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롭게 하다’를 뜻하는 헬라어 δοξάζω(독사조)는 요한복음에서 23회 사용되는데, 그 중에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주로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물론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포괄적으로 가리키지만(7:39; 12:16), 이 말의 강조점은 다분히 그의 죽음에 있다(12:23, 28; 13:31–32). 이 경우 ‘영화롭게 하다’(독사조)는 ‘때’(호라)와 비슷한 개념상의 범위를 가진다. 특히 ‘때’(호라)와 ‘영화롭게 하다’(독사조)가 함께 쓰인 12:23은 강하게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구절의 문맥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강조하고 있다(12:24, 25, 27–28, 32–33, 34). 이전에 예수님은 그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셨다(7:30; 8:20). 그러나 이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시는데, 그만큼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가까 왔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은 그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려 하신다.
일찍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목표였다(2:11; 11:4, 40; 14:13; 17:4). 이는 그의 성육신에서부터 시작한다(1:14). 그의 제자들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15:8; 21:19; cf. 17:10). 구약에서 영광은 하나님이 능력을 행하실 때, 그의 위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예. 출 16:10; 24:17). 따라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삶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과 위엄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높이게 하는 것이다(17:4). 요컨대,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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