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의 소생과 예수님의 부활(요 11: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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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의 소생과 예수님의 부활
나사로의 소생과 예수님의 부활
11장과 12장은 예수님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예고하는 13장으로 가는 문턱에 위치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므로, 예수님은 자신의 신적 능력을 드러내신다.
뿐만 아니라,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적으로 드러내신다.
이를 통해 생명과 부활로서의 예수님의 정체성을 계시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를 통해 영생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공회’(συνέδριον, 쉰헤드리온)는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이 모인 산헤드린 공의회를 일컫는다.
쉰에드리온이라는 말은 요한복음에는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은 자주 언급하고 있다(마 5:22; 10:17; 26:59; 막 13:9; 14:55; 15:1; 눅 22:66; 행 4:15; 5:21; 6:12; 22:30; 23:1; 24:20).
산헤드린은 예수님 당시에 로마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받아 유대의 종교적, 행정적 문제를 결정하고 재판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구였다. 지방에도 약 23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단위의 산헤드린이 있었으나, 예루살렘에는 71명의 회원(주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으로 구성된 최고 의결 산헤드린(Great Sanhedrin)이 있었고, 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다
요한복음 (2) 공회원들의 반응들(11:47–53))
요한복음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나온다(7:32, 45). 이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들’ 때문에 걱정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만이 이들에게 유일한 위협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 아마도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것을 걱정하고, 로마인들이 땅과 민족을 빼앗을 것을 걱정한다(48절). ‘땅’(τόπος, 토포스)은 자주 성전을 언급하는 용어로 사용된다(4:20; 14:2–3). 그러나 산헤드린에 모인 성전 권력자들은 진정한 성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요한복음 (2) 공회원들의 반응들(11:47–53))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예언을 한다(49–50절). 예수님이 이스라엘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죽으실 것을 예언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을 것이라 한다. 예수님과 ‘하나 됨’의 모티브는 여기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참고. 10:16; 17:21). 그러나 본문만큼 ‘하나 됨’이 예수님의 죽음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곳은 없다. 구약에서부터 유대인들은 성전 제사를 통해 하나 됨을 지켰다(예. 수 22:10–34; 시 133:1–3; 집회서 50:16–21). 이때 대제사장은 이 모든 예식을 지휘하고 주관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 되는 제사를 주관해야 할 대제사장 가야바는 아이러니하게 예수님이 그 하나로 만드는 사역을 할 것이라 예언한다. 진정한 성전이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이 하나 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 된다는 것을 예언한다.한편 대제사장과 ‘예언’의 기능은 유대 문헌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대제사장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 신탁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출 28:30; 레 8:8; 민 27:21; 삼상 14:36–42). 제사장 사독은 또한 선견자로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 역할을 한다(삼하 15:27; 탈굼 삼상 9:9, 19; 삼하 24:11). 요세푸스도 대제사장의 예언 기능을 기록하고 있다( 고대사6.6.3; 11.8.4; 13.10.7). 따라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대제사장의 예언 기능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전통과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요한복음 (교훈과 적용)
교훈과 적용1. 기적을 보아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에 대한 참 믿음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무 기적에 의존하는 신앙생활을 조심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성령께서 마음속에 참 믿음을 주시도록 소망해야 한다. 기적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2. 종교인들이라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장 성전과 가까이 있는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가장 속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속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도 내가 교회의 직분자라는 것을 너무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는 직분에 얽매이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3. 종교 생활을 잘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멀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온 순례자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귀한 제물을 바치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우리도 교회에 출석하지만, 참 믿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종교 생활 외에, 내면의 변화와 삶의 성숙이 있는 믿음을 지향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