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으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

청장년을 위한 킹덤키즈 설교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12 views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나라는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살펴보자

Notes
Transcript
Handout
부르심으로 시작한다?
누구를 부르셨는가?
부르심의 내용은 어떠한까?
부르심을 받는 자는 어떻게 응답하였는가?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
군부대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독특하게 자대 배치를 받다보니 부모님 백이 대단한 것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
아브람의 시대에는 바로 이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 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한 사람은 그 사람만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아들인지가 더 중요한 시대였다.

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1)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29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의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버지이며 또 이스가의 아버지더라

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어떤 집안인지 살펴보자
아버지가 데라이고 아브람, 나홀, 하란 3형제를 낳았다.
데라가 70세에 이 세명을 낳았다. 셈 이후로 다 30대 초반에 아이를 낳는다 70에 아이를 낳으면? 손이 되게 귀한 가정
우르에서 하란이 죽어버렸다.
아브람은 사래와 나홀은 밀가와 결혼 하였다.
사래나 밀가는 다 달의 신과 관련된 이름이다. 고대 수메르에서 달신은 남성이고 최고신의 엔릴의 아들인데
사래는 달의 신의 배우자에게 붙히는 이름으로
밀가는 달의 신의 딸에게 붙히는 이름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였다.
안 그래도 손이 귀한 집안인데..
나라가 세워지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그 사람을 낳을 여인이 불임이면?
데라가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거주하였고
데라는 가나안으로 안 가고 하란에서 그냥 머물러 버렸다.
데라는 205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다.
아브람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나이가 75세일 때인데 그때 데라의 나이가 145세이다.
데라가 살아 있는데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
대가 끊어질 위기에 있는 가문
데라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하란이 고향인 우르에서 죽고 만다.
셈의 후손들 중에 셈만 100살에 자녀를 낳고 나머지는 30살 전후에 자녀를 낳는데, 유독 데라는 70살이 되어서야 아들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
그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잉태하지 못하였다
즉, 자손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있었다.
우상을 섬기는 가문
데라의 우상숭배 - 데라는 하나님 뿐만 아니라 달의 신인 ‘Sin’을 섬긴 것 같다.
하란은 특별히 달의 신인 신(Sin) 숭배의 중심지였다.
사래: 신(Sin)의 배우자에게 붙히는 이름
하란도 자신의 딸의 이름을 밀가라고 하였는데 이는 신(Sin)의 딸에게 붙히는 호칭이다.
제대로 순종하지 않는 가문
가나안이 아니라 하란에 거류하였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셨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정리
이름있는 가문이 아닌 멸족 위기에 있는 소수의 종족이었다. 그러면서 정작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우상을 섬기는 가문이었고 우상을 섬기기 위해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하란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은 영웅을 찾지 않으시고 뭔가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작은 가문의 아브람을 부르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고 하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배경을 보지 않으신다. 출신을 보지 않으시고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보지 않으신다.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과연 이 일이 가능할까 싶은 상상할 수 없는 그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해 보이는 한 사람을 통해 그 나라를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다

하나님이 한 번 더 나타나심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하란에서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

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떠나라
아브람은 하란을 고향으로 여겼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란을 떠나라고 하신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그리고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다.
데라로 부터 떠나고(아브람이 칠십오세에 하란을 떠나는데 이때 데라의 나이는 145세이다. 데라는 205세에 하란에서 죽는다)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친척으로부터 떠나라고 하신다. (나홀과 밀가부부 뿐만 아니라 하란의 아들인 롯도 포함해서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75년 동안 쌓은 모든 인간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맺어준 천륜적 인간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개인의 이름 앞에 아버지의 이름을 붙였다. 그 이유는 한 사람의 신분을 아버지와 조상의 이름을 통해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고 야곱은 이삭의 아들 야곱이다.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이다. 그리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부계 중심의 가족 관계가 사실상 그들의 삶의 기초였다. 부계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족의 삶의 안전과 생존 그 자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모든 자식들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소유를 통해 모든 가족들이 살아가는 것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사회였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자식으로 인한 불행이 아브라함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대가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 않고, 영토를 갖춘 국가 단위의 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한다

문제는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이것이 실현 가능한 약속인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이전의 창대한(유명한) 이름들은 무엇이 있었는가?
창 4: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가인은 성을쌓고 자신과 아들의 이름을 남기려는 열망에 자신의 아들의 이름 에녹을 성에 붙혔다.
그러나 그 이름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이다.
창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네피림도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자들이었다.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 성과 탑을 쌓던 시날 지역의 사람들이 열망했던 목적 중에 하나도 그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다(베나아쉐 라누 셈 וְנַֽעֲשֶׂה־לָּ֖נוּ שֵׁ֑ם). 하늘에 닿는 건축물과 그 기술력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했던 바벨론 사람들을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케 하고 땅 위에 흩어 버리는 벌을 내렸다.

이런 전례와는 달리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한다. 네피림과 바벨 성 사람들처럼 심판에 이르는 유명한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인정을 받는 유명한 이름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다.

너는 복이 된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정점은 그를 통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보편적인 축복이 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 때문에 복을 받는다. 이 축복은 범세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아브라함 당대에 이루어질 수 없고 이루어진 적도 없다.13) 창 22:18에서 이 축복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를 감안한다면, 이 축복은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이 인류에게 내리는 구속사적 축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아브람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롯은 아브라함의 양자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하나님이 큰 민족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자신과 사래의 불임 때문에 양자였던 조카 롯을 통해 이루어 지리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지만, 롯을 데려고 온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사라의 후손을 통해 큰 민족 만들겠다는 약속 수행에 큰 문제를 초래하는 행동이었다.

이들의 재산은 아버지 데라에게 상속받은 재산이 아니라 그들이 하란에서 벌었거나 그들의 소유 짐승들이 번식하여 낳은 것들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났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란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16)

행 7:4에 의하면 데라가 하란에서 죽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가게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진술은 창 11:32과 12:4의 말을 종합해 보면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집을 떠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살이고 데라는 70살에 아브라함을 낳았기 때문에 이 당시 데라의 나이는 145살이다. 창 11:32에 의하면 데라는 205살에 죽었다.17) 굳이 창 11:32에서 데라의 죽음을 밝힌 것은 11:27~32의 기사를 마감하고 아브라함의 기사로 전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이다. 결국 아브라함이 떠난 후 데라는 60살을 더 살다가 죽게 된다. 145살 된 아버지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나는 아들을 어떻게 평가하면 좋을까? 왜 그를 그렇게 두고 떠났을까? 수 24:2은 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준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담을 통해 시작하였던 하나님 섬기는 여자의 후손들이 노아의 시대에 이르렀을 때 노아를 제외하고 모두가 불신앙의 자손, 뱀의 후손이 되었는데, 아브라함 시대에 이르러서는 셈을 통해 다시 시작된 여자의 후손들이 겨우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마침내 데라마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배교의 길을 걸었다. 아마도 이런 데라의 배교를 그의 죽음으로 간주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인류를 다시 시작하게 하였던 것처럼 이제 아브라함을 통해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판이하게 다르다. 노아 때에는 홍수를 통한 구세대의 제거가 선행되었지만, 아브라함 시대에는 구세대와 단절은 있지만 제거는 없다. 단절도 파괴적인 단절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주려는 창조적 단절이다.

모레 상수리나무

5절에서 하란을 출발하여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곧장 세겜으로 가서 모레 상수리나무에 도착하였다. 세겜은 하란을 출발하여 가나안에 들어올 때 처음 만나는 도시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들어온 방향에 따라서, 북쪽에서 들어왔다면 갈릴리 호수 남쪽을 통해 에브라임 산지의 길을 따라오는 동안 여러 도시들을 만났을 것이다. 얍복 강을 거쳐 들어 왔다면 숙곳을 비롯한 다른 도시들을 거치고 요르단 강을 건넜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세겜의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왜 아브라함이 세겜으로 바로 가게 되었는지 창세기는 침묵하지만, 이곳은 역사적인 장소이다.

세겜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처음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이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는데, 그 산의 위치를 말할 때 세겜의 모레 상수리 옆이라고 한다(신 11:30)
수 8:30-35 에서 여호수아는 모세가 명한 대로 세겜의 두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언약을 새롭게 세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소를 세운 곳이 세겜의 상수리나무 아래이고, 그 자리에서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고 기념비를 세웠다(수 24:26).
이런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된 동기는 아브라함이 이곳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았기 때문이다. 세겜을 아브라함의 첫 도착지로 언급한 것은 그곳이 가나안 땅의 중앙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 중앙 지역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모레 상수리를 직역하면 가르치는 자의 상수리이다.18) 이 상수리는 가나안 지역에서는 드물게 큰 나무였으며, 가나안 사람들이 이 상수리나무를 신탁을 받는 장소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cf. 삿 9:37).19)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이 나무 아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아브람이 한 것은?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어서 조카 롯을 양자로 데리고 나왔는데, 하나님은 조카 롯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처음으로 말하였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이 그의 아비의 집으로부터 롯을 데려 나오므로 야기된 위기를 해소하려고 하였지만, 이어지는 이집트 여행에서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함으로 바로에게 빼앗기는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이어지는 행동은 놀랍다. 그는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을 듣고 그 땅에 집을 짓고 성을 건축하여 세겜에 정착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난 그 장소에 제단을 쌓았다. 이것은 가인과 바벨 성과 탑을 쌓은 사람들과 비교할 때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제단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이 땅에 나타나서 이 땅을 주었음을 나타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22)
또다른 내용

창 12:6~8은 아브라함이 했을지도 모를 여러 행동들을 모두 생략하고 왜 아브라함이 세겜에 도착한 후 제단을 쌓고 다시 벧엘로 이동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은 사실을 연속으로 기록할까? 이 두 지역은 창 33:18~35장에서 야곱이 하란 또는 밧단 아람에서 돌아올 때 거쳤던 가나안의 지역들과 동일하다. 야곱은 먼저 세겜에 도착하였고, 이어서 벧엘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제단을 쌓은 후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이 두 지역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때에 여리고 성 함락 이후에 첫 공격 지역과 일치한다. 여호수아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진을 치고 아이를 공격하고 점령한 후 곧바로 세겜으로 가서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을 점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낭독한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여호수아가 공통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지역들을 먼저 찾는 것은 공통의 관심사 때문일 것이다. 카슈토(U. Cassuto)는 이 관심사를 가나안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을 먼저 찾음으로 가나안 전체를 소유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23)

특이하게도 창 12:2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약속하였는데, 벧엘에 도착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 예배 드리거나(시 116:17), 구원을 호소할 때(욜 2:32),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낼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출 34:5~6).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굳게 잡거나 여호와만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에도 부른다. 대표적인 것이 사 64:7과 슥 13:9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이유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땅이며 하나님이 그 땅을 자신에게 주셨음을 알리는 행위였을 가능성이 높다.25) 모레 상수리나무와 벧엘은 가나안의 신전이 있던 장소이다. 그런 장소들 인근에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그 땅의 주인은 가나안의 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땅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 땅의 신전에 자신의 신의 신상을 세워 신의 도움으로 그 땅을 정복했음을 선포하였다.26) 아브라함의 제단 쌓기는 유사한 의미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