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있는 자들의 삶

에베소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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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는 죽음은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죽음과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죽음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생각과 모습으로 품고 살아가는 비전입니다.
고대 그리스이 시인인 테오크리토스는 “소망은 산 자를 위한 것이니 죽은 자에게는 소망이 없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맞는 말입니까?
죽음은 피할 수 없이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영역인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서 고대 그리스의 시인처럼 죽음을 절망과 모든 기쁨의 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현대 과학시대에는 죽음 이후에도 어떤 존재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 이후에 그냥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물질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무신론자이자 유명한 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하나님이 없이도 죽음을 받아들일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죽음 이후의 어떤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데~ 죽음 이후라는 것은 없고… 하나님이 없어도 죽음을 그냥 소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이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죽음을 절망이나 기쁨의 끝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는 무가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시 kbs다큐멘터리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 교회오빠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그것이 몇 년전에 영화로도 나오기도 했었는데요.. 우리 조금 긴 영상이지만 함께 이 영상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결혼식에 가면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밝고 유쾌한 분위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밝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곤 합니다. 그러나 장례식에 가면 어떻습니까? 화기애애할 수 없지요… 절망에 찬 울음소리와 어두운 침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겨진 기억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과거의 기억을 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도의 죽음이 끝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 가운데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평안과 행복한 상태에 거하게 됨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죽음이라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까?
“소망”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과거에… 이방인을 있을 때는 영생에 대한 소망도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살았다.. 하나님도 없이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살아왔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12절에서 소망이 없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짐으로 소망있는 자들이 되었다는 반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소망이 없는 것은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으로 끝나버리지 않는 더 나은 미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11절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라고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은혜가… 이 선물이…이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리에게 값진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즉..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은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막힌 담을 허무신 목적은 18절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임을 밝힙니다.
여기서 쓰인 나아감이라는 헬라어단어 “프로사고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소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8절에서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 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매우 놀라운 장면입니다.
헤롯성전에는 이방인의 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방인들이 성전벽을 구경도 하고 그랬던 곳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이방인들이 성전 안에 들어오는 것을 얼마나 경멸 했는지 성전으로 들어오는 내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 두꺼운 담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혹여나 이 담 안으로 들어온다면 죽이는 법까지도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의 담을 넘어 유대인의 뜰에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담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무심으로 이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유대인들과 같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이 무엇입니까? 19절부터 나오는 것이죠.. 이제 너희는 외인이 아니다.. 나그네도 아니다…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고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것이빈다.
다시말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있는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외인과 나그네는 동일한 표현입니다.. 외인과 나그네는 그 나라에 머물수 없습니다… 다시말하면 그 나라의 특권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외인이고 나그네라면 그들에게 구원의 특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 뒤의 소망을 전혀 가질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인이라면 우리는 정말 죽음이라는 것이 좌절과 상실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외인이 아니라… 나그네가 아니라 시민!! 이라고 말을 합니다..
특권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19절에서 권속이라는 말은 시민이라는 말보다 더 가까운 의미입니다… 가족일는 의미입니다.. 식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인이었던 자가… 이 하나님 나라에 어떠한 지분도, 특권도, 가족도 없었던 나그네와 같던자가…. 시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에 우리가 합법적으로 머물 자격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뒤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 죄로 뭉친 우리가 어떻게 소망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해 주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을 경험한 사람들은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참 소망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우리 삶에서 발견하고 죽음에 매몰되지 않는… 죽음에 이해 끝나지 않는 영원한 삶을 꿈꾸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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