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 부르심, 과감한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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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출발

지금 세계에서 신도의 수를 기준으로 할 때 가장 큰 종교는 무엇일까요? 여기 2021년을 기준으로 한 통계를 보면 세계 인구의 31퍼센트를 차지하는 기독교가 1위, 그리고 24퍼센트를 차지하는 이슬람교가 2위입니다. 여기서 기독교는 여러가지 교파들 즉, 카톨릭,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 등을 다 합쳐 놓은 것이고, 우리로서는 카톨릭과 하나로 묶이기에는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기는 합니다만 어찌되었든 1위와 2위를 합치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여기에 유대교까지 합쳐서 거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이 여럿 있는데, 크게 두 가지만 꼽아보자면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과 아브라함을 뿌리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종교 모두 아브라함을 뿌리로 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이해하는 것이 각자의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고백하는 우리에게도 이것은 마찬가지인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가 왜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그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것처럼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기도 전,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씀으로 그의 이야기가 시작이 되는데,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몇 가지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언급하는 비슷한 성경 구절들과 비교를 해야 하구요, 아브람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아야 하고, 원어를 다시 한 번 살펴 번역의 과정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이 과정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여러분과 진행해가보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 창 12:1 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그의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어디일까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그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얼핏보면 하란이라고 하는 도시일 것 같습니다. 4절에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며 떠난 곳이 하란이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함께 보아야 할 구절들이 있습니다. 창 11:31, 창 15:7, 그리고 함께 사도행전 7:2 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 구절들을 함께 보니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가 떠나온 곳이 어디일까요?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라는 도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르로부터 떠나왔고 하란에 머물다가 다시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였던 것이지요. 아브람의 고향,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며 떠난 곳, 이 우르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최고의 도시, 우르

이제 두번째 단계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람은 어떤 시대에 살았던 사람일까요? 도표를 한 번 봅시다. 아브람의 초기 생애와 우르 3왕조라는 시기가 겹치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우르 3왕조라는 것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알려진 수메르 문명이 태동하고 나서 수메르인들의 최고의 부흥기였던 때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다스리던 왕조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왕조의 수도가 바로 우르이죠. 수메르문명은 여러가지로 최초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다고 알려져있는데요, 아브람이 살았던 시대보다 이미 수천년 전에 홍수에 대비해 강가에 둑을 세웠고, 가뭄에 대비하고 경작지를 넓히기 위해 강의 물을 끌어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관개농업이었으며 농업 생산량을 급격히 증대시켰습니다. 이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우르, 우르크, 키시 등 인류 최초로 도시들이 생겨났습니다. 인류 최초로 글자를 사용했다고 알려진 문명도 그들입니다. 그리고 이 글자의 발명은 자연스럽게 수메르 문명의 지적, 문화적, 경제적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구요. 이미 이들은 천문학 연구를 통해 음력의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고, 밤하늘에 보이는 행성들의 움직임을 관측해 점토판에 지도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수학과 기하학이 발달해서 정교하고 큰 건축물을 짓는 것도 이미 가능했습니다. 음악과 미술 등 예술활동도 이미 이들의 시대에 많이 발전하였고, 배를 띄워 아주 먼 거리까지 무역을 하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동시대의 다른 문명권과 비교해서 아주 놀라울 정도로 발달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견된 점토판을 보면 일 년에 2만 8천마리의 소와 35만 마리의 양을 속국으로부터 세금으로 받았다고 합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룬 수메르 문명의 최고의 부흥기였던 우르 3왕조, 그리고 그 수도였던 우르였으니 당시에 얼마나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던 환경이었겠습니까? 어느정도 생활 수준만 보장이 된다면 그 어느 곳보다 살기 좋은 환경이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아브람의 가족을 살펴봅시다. 이들은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았을까요? 여호수아서를 잠시 살펴봅시다. 수 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여기 나오는 데라는 아브람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우상을 섬겼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데라는 단순히 우상을 섬긴 자가 아니라 우상을 만들어 장사를 하던 사람이라고 하죠. 아브람 당시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기 위해 세운 신전의 사진을 한 번 볼까요? 지금의 기준으로 해도 대단한 규모의 건축물입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달의 신을 숭배했다고 하는데, 신전의 규모를 보면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다가, 고대 세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사회였기 때문에, 우상을 만들어서 장사하는 데라의 가족은 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도시 우르에서 상류층의 삶을 살아가던 데라의 가족, 아브람은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었습니다.

떠나라

하나님은 부족할 것이 없이 살아가던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창 12:1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람에게 부족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든든한 배경이 되는 기반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어디로 가라고 하시지도 않아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시지요. 보여줄테니 일단 떠나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의 이 부르심이 아브람에게 얼마나 뜬금없는 말로 들렸겠습니까? 지금 아주 잘 살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떠나라니요. 정말 내 삶의 근간을 밑바닥부터 뒤흔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브람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자 하십니다. 가나안은 우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회였는데요, 대표적으로 우르 지역은 농경사회였지만 가나안 지역은 목축사회였습니다. 이제 아브람은 전적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급진적인 부르심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브람이 이 말씀을 듣고 실제로 떠났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우르를 떠나 가족들과 함께 하란으로 향하게 됩니다. 무엇이 아브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날 수 있게 만들었을까요? 다시 한 번 유대인들의 전승을 들어봅시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큰 우상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부수었습니다. 데라가 이유를 묻자 아브라함이 답했습니다. “가장 큰 신이 막대기로 나머지를 모두 부수었습니다.” 데라가 우상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며 아들을 꾸짖자 아브라함이 답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이깟 우상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습니까?” 움직일 수도 없는 신이 어떻게 인간에게 복을 줄 수 있습니까?””
자신의 손으로 우상을 만들던 혹은 아버지의 손으로 우상을 만드는 것을 보며 자란 아브라함은 우상이 사실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헛것일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곧 영적인 갈급함을 느끼게 되었지요. “참 신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해야 그분을 뵐 수 있는가?” 이런 갈급한 마음이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찾아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참 하나님께 눈뜨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절이 아브람과 하나님의 만남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제 행간에 있는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게 하시고 그 분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이 부어지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들이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약속이 믿어지니 이제 얼토당토않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아브람이 뭔가 애써서 믿어보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믿어진 것입니다. 믿어지니 급진적인 부르심에 과감하게 응답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믿어지는 것이고,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이요.
물론 아브람이 항상 믿음으로 곧잘 순종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하란에 잠시 멈추어 머문 것을 보면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머뭇거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장 5절인데요, 그는 하란에 머물며 재산과 사람을 모았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떠나왔지만, 그 이상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하란이라는 지역이 당시의 수메르의 경계였거든요. 우르보다는 조금 못했지만 이곳도 충분히 살기 좋았습니다. 당시 하란은 무역의 중심지여서 사람들의 왕래와 물건들의 수입과 수출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는데, 장사를 해보았던 사람의 눈에는 아주 좋은 기회의 땅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한창 성장해가는 이 지역에서 잘만 하면 이전보다 더욱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딱 이 지역까지가 그가 섬기던 달의 신을 섬기는 지역이었습니다. 여러모로 아브람의 말을 듣고 우르를 떠나오긴 했지만, 믿음이 없이는 더 이상 발걸음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발걸음을 뗀 자가 아니었기에 끝까지 이 여정을 갈 수는 없었습니다. 데라의 죽음 이후 아브람은 곧장 자신의 재물과 재산을 정리하여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 가나안을 향해 다시 나아갑니다.

가나안

드디어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가 처음 정착한 곳은 세겜 지역이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하나님께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립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지요. 확실히 이곳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은 우르와 하란에서의 라이프스타일과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우르와 하란에서는 한 지역에서 정착하여 살았던 반면, 가나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계속해서 움직여야 했습니다. 우르와 하란에서는 정착한 곳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삶을 꾸려 나아가고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었지만, 이제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님이 그의 인생의 성공과 실패, 생존과 죽음의 주도권을 쥐고 계십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하는 인생이 되었고, 점점 그의 인생에서는 이전에 꿈꾸었던 인간적인 계획과 야망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해져 갑니다. 하나님은 왜 그의 평생토록 이동하게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릴 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약속을 누리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계속해서 훈련시키시고 이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굳이 아브라함이 아니어도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택하시고 이끄시면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굳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던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을 사랑하셨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네요. 하나님의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마침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고,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들이 그의 삶에 풍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백성들의 조상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혈통을 통해 태어나게 되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잠깐 누릴 수 있는 정도의 복이 아니라, 영원히 누릴 복입니다. 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축복인가요.

너를 위해

처음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과격해 보이지만 실은 아브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지복을 누리도록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창세기를 기록할 때 사용한 원래의 언어 속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씁니다. 자 이제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는데요, 원어를 한 번 살펴봅시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이 구절에서 “가라”라고 번역된 부분에 사용된 원어가 레크 레카 입니다. 앞부분의 레크는 가다라는 뜻의 동사의 명령형으로 “가라”인데, 뒷부분의 레카는 2인칭 남성 대명사의 재귀형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뜻은 스스로라고 할 수 있고, 두 가지 뜻으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너 스스로에게로이고, 둘째는 너 스스로를 위하여 입니다. 두가지 다 아주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오늘은 두번째에만 집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번째 번역을 선택해서 다시 문장을 써보면 이렇습니다. “아도나이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 스스로를 위하여 너의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보일 땅으로 가라”. 히브리어를 번역하는 과정 가운데 “너를 위하여”라는 뜻이 빠져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브람에게 말씀하실 때 당신의 부르심이 아브람 자신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아브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면서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위해서 떠나라! 세속적인 삶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너가 꿈꾸고 계획하는 모든 꿈을 버리고 내가 너에게 주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을 향해서 떠나라!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변화시킨 것처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천국의 백성으로 변화시키셔서 영원한 지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변화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믿음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누구도 이 약속을 품고 우리의 삶의 근간이 되는 것들을 버리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분이라는 믿음이 있습니까? 그 믿음은 우리로 능히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만듭니다. 믿음이 있다면 떠나십시오. 하나님의 급진적인 부르심에 과감하게 응답하십시오. 그런 자들의 삶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이미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셨습니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삶을 통해 여러분들을 천국의 백성답게 새롭게 빚어가는 중입니다. 이 과정이 마치면 여러분들의 삶에 어느새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품고 꿈꿨던 작고 초라한 것들이 아니라, 영원토록 풍성하게 누리게 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시작해 순종의 과정을 거쳐 영광스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신앙의 여정에서 사랑하는 모든 청년들이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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