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삶으로의 초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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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강해 "믿음과 순종의 삶에 대해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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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여호수아 1:1-8)
(믿음의 삶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 그것은 ‘믿음’이다. 그 믿음이 ‘순종’케 한다)
오늘 설교의 본문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여정’에 관한 것, 즉 여행에 관한 생각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여행을 가보았을 것이다. 여행은 언제나 설레인다.
당신은 여행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름다운 자연 풍경, 먹음직스러운 현지 음식 등,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이 여행의 진짜 기쁨일까?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여행은 왜 가는거지?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뭔가 무료하고 답답해서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행은 그래도 작던 크던 어떤 목적도 있는 것 같다. 또 여행을 누구와 함께 가느냐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물론 혼자 떠나는 여행도 의미가 있겠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 친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가는 여행은 더더욱이나 의미있고 행복할 것 같다.
여행은 언제나 끝이 있다. 떠났다면 반드시 돌아와야 할 집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끝이 있기에 우리는 ‘여행’이라 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주인공들인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도 지금 이제 막 여행을 하려 한다. 우리 오늘 본문을 다 함께 읽어보자. (다함께)
주님의 종 모세가 죽은 뒤에, 주님께서, 모세를 보좌하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스라엘 자손 곧 모든 백성과 함께 일어나, 요단 강을 건너서,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 큰 강인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헷 사람의 땅을 지나 서쪽의 지중해까지, 모두 너희의 영토가 될 것이다. 네가 사는 날 동안 아무도 너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 굳세고 용감하여라. 내가 이 백성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을, 이 백성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사람이 바로 너다.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여호수아 1:1-9, NKSV)
아멘, 우리가 읽은, 성경책은 “여호수아”서이다. ‘모세’라는 인물을 다 알 것이다. 이 성경책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지자, 모세라는 사람의 후계자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붙인 성경책이다.
자 잠깐 이 ‘여호수아’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좀 하겠다. 책이라는 것은 “장르”라는 것이 있다. (소설책, 시, 에세이 등등). 마찬가지로 우리가 읽는 성경책도 엄연히 “장르”라는 것이 존재한다. 우리가 현재 보는 성경책은 66권으로 되어있다. 그 다양한 책들이 모여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되는데, 그 중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여호수아서’가 바로 ‘역사서’에 해당한다. (학교 과목에도 있지 않은가? 세계사, 한국사 그러한 과목들이라 생각하면 쉽다)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 인류 사회의 변천, 흥망 쇠태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을 말한다. 그것은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두는 것을 말한다. 즉 fact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누군가의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역사에 대해 개념적으로 많은 할 말이 있겠지만, 다 제쳐두고, 한 가지만 분명히 기억해봅시다. Q. 여러분들이여, 성경책은 누가 기록한 것인가? 누가 기록했을까? A. 물론 그렇다, 바로 이 성경책은 하나님이 기록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성경책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뚝 떨어뜨려주신 것일까? 아니다. 성경책이라는 것은 ‘사람’을 통해 기록되었다.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바로 ‘영감된, 어딘가에 사로잡힌,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말한다. 그것을 더 정확히 말해서 “영감된 저자”를 통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저자들’말이다. 하나님은 당시 성경을 기록한 사람을 잘 알고 계셨다.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살아온 배경과 문화 그 모든 것을 감안하시어 당신의 메시지를 그 사람을 통해 기록하게 하셨다. 이 세상을 일체의 오차도 없이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기록하게 하신 메시지는 그 저자의 상태가 어떠하듯, 결정적으로, 결론적으로 오류가 없다. 완벽한 메시지 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성경을 믿는 바이며 성경을 바라보는 태도인 것이다. (자유자들의 논리를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다함께 디모데후서 3장 16절을 읽어보자.(다함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디모데후서 3:16, NKSV)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주셨을까? 왜 굳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성경책에 기록하게 하셨을까? 질문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흔히 이러한 말들을 많이 한다. ‘역사를 통해 배워라’라는 말이 있다. 즉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메시지와 통찰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서라는 것은 실제 일어난 사실을 기록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서는 그것과는 조금 차원이 다르다. 물론 어느 정도 비슷한 맥락이지만, 그보다 훨씬 독특하다. 왜일까? 바로 기록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 저작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우리에게,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믿음을 가지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바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깨닫게 해주고 싶은 어떤 그 무엇이 있다라는 것이다. 즉 지극히 의도적인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바로 ‘신학적이다..’ 신학적인 메시지다..라고 말한다)
자,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인간에 대해,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기원(출발)과 과정, 그리고 종말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메시지, 말씀’을 주시기 위해 한 민족을 택하셔서 본보기 삼으셔야만 했다. 그래야 우리가 그 본보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것 아닌가?
즉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한 민족을 택하셨단 말이다. 그 민족이, 누구인가?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셨다. (오늘날 과거 히브리인,유대인을 말한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우리가 아는 바 그가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신이기 때문에, 그 메시지는 일반 역사와 같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통찰하고 발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역사 문화를 통해 해석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적으로 주도하신 신학적인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의 이해력과 감정을 가지고 성경으로 파고 들어가는 (read in)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메시지를 우리가 그저 겸손하게 듣고 받아들이는 것, 즉 (read out)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같은 말인 것 같아도 이 둘의 차이는 확연하다. 우리는 성경에서 역사서를 대할 때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를 두고 성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유대인들,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민족들의 역사서인 것이다.
지금부터 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대해 아주 초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그 인간이 그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 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에 하나님이 금하신 죄악을 저질렀다.(그 결정적인 사건, “선악과 사건”) 그래서 결국 하나님과 함께 거하던 ‘에덴동산’ 낙원과도 같은 평화로운 곳에서 쫒겨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수고스럽지만, 지상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번성하며 민족과 나라를 이루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즉 태초에 하나님 앞에서 반역했던 그 죄성, 교만하고 죄악된 기질은 여전히 그대로이기에, 지상에서도 서로 힘을 합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였으나(바벨탑 사건) 하나님이 그것을 그냥 두실리 없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써, 온 지상에 흩어버리셨다. 자 앞에 말씀 보면서 따라오라 (혼자 읽는다)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창세기 11:1)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창세기 11:4)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창세기 11:6-7)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창세기 11:9)
그래서 오늘날 다양한 인종과 국가들이 이 세상에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인간은 결국 서로 서로 힘 다툼을 하며 싸우고 분쟁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한 민족 바로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택하신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 즉 하나님이 친히 주도적으로 택하신 백성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백성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처음 택하신 족장이 있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다. 하나님 약속, 언약이란 바로 창세기 12장 에서 아브라함게에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말하는 것이다. 창세기 12장 1절,2절을 읽어보자.)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창세기 12:1-2, NKSV)
아무리 성경을 읽지 않는 신자라 할지라도 ‘모세’라는 인물에 대해는 한 번쯤 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 ‘모세’라는 사람을 택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디로부터의 구원이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인물을 선택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오늘날 ‘이집트’라는 나라, 즉 성경의 “애굽”이라는 이름의 나라에게 ‘식민지’로 지배를 당하고 있을 때였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라는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다. (영화로, ‘이집트 왕자’라는 영화가 어느 정도 배경을 설명해 주긴 한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종된 삶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끄집어 내시어, 더 나아가 그 종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땅으로(가나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과정, 그 여정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여호수아”인 것이다. 여호수아가 바로 하나님이 ‘모세 다음으로 선택한 지도자’인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이집트)의 고된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 나왔지만, 그 삶은 분명 미지의 삶, 개척의 삶인 것이다. 당장 광야에서 텐트를 치며 살아야 했고, 이동과정 가운데 다른 민족과의 전쟁은 불가피 하게 되었다. 즉 싸워 쟁취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지금 누가 인도하고 계신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성인이 되면 될수록 결국 알게 된다. 어쩌면 삶이란 누군가와의 경쟁을 통해 내가 쟁취해서 얻어내야만 하는 것과도 같지 않은가? 우리 인간의 삶이 그렇게 힘겨운 이유가 바로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의 삶의 Key도 바로 그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 여호수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즉 우리의 삶이 비틀거리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움과 힘, 즉 사랑의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메뉴얼’이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욕망에 눈이 멀어, 제 멋대로 살기를 원한다. 결국 힘있는 자의 종이 되고 만 것이다. 더 가져야 할 것 같고, 끝임없이 더 높아져야 내가 행복할 것 같은, 일그러진 자아의 욕망에 노예처럼 살다, 낙망하고 비관하고, 결국 삶을 마감하고 싶은가?
그대는 당신의 삶의 주인이 당신 자신인것 같은가? 천만에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을 본보기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제멋대로 사는 인생은 그때는 행복하고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것 같으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함, 끝임없는 쾌락, 비참한 자아의 노예로 살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절대 우리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아니 우리가 스스로 우리 삶의 주인을 나 자신으로 삼는 순간 우리가 망가질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성경을 통해 교훈하고 계신 것이다. 성경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가 스스로 주인 삼아 왔던 삶의 태도를 버리라는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내게로 오라..!’ 내게 와서 쉬어라, 내게 와서 배우라. 쉽다. 평안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진정한 복이 내 삶에 흐를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아멘이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종된 삶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 투영되는 것이다, 투영된다는 말이 무엇인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그 신학적인 fact를 통해 좀 깨닳으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본보기 삼아 우리에게 오늘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네 힘으로 안된다. 네가 나의 힘을 의지해야 살 수 있을 것이다. 한 평생 짧으면 짧고 길면 길 다 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인생이란 여정, 여행 가운데 네가 안전하고 비틀거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메시지에 있다. 나의 말씀을 청종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말씀하신다. 여호수아 1:8절을 읽어보자.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여호수아 1:8)
말씀을 잘 듣고, 생각하고, 공부하며, 실천하라. 그래야 그 종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여호수아 1:9, NKSV)
또 봅시다 “명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삶의 이 모든 여정이 바로 “하나님이 명하신 삶인 것”임을 분명히 알라 라는 것이다. 언젠가 말했다. 우리가 어느날 우리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분명한 그분의 뜻과 목적이 있다. 그것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꿈을 억지스럽게 꾸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먼저 알라라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다.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한번 감사해보라는 것이다. 그 감사가 우리를 강하게 담대하게 하는 것이다. (혼자 읽는다)
“강하고 담대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느라”하시느라. 그것을 믿으라, 그 팩트를 믿으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용기는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왜 여행이 행복할 수 있을까? 단순히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으며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로 여행을 가면 좋은 것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추억’이라는 것이 깃드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그 여행의 참 의미를 주는 것 같다. 물론 혼자 가는 여행도 좋겠지만, 사실 인간은 늘 관계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좋은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만큼 우리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여러분들이여, 우리의 삶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이 끝이 없는 완전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안전한 곳으로 이끄시고 보장하신다. “여호수아”서가 결론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결국 성취되었다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 그 언약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함께 읽는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창세기 12:1-2, NKSV)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가거라, Go! 원어적 의미로, “위치를 바꾸다, 움직이고 여행하다, 진행하다, 즉 ”여행“의 의미를 가진다.
(ppt)
어떤 자가 하나님의 약속의 놀라운 성취를 경험하는 줄 아는가? 바로 ”순종“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움직이는 자, 자신의 감정과 생각만으로 살아왔던, 고집과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청종하며 그 말씀에 반응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말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이 부르심이 ‘순종’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성취하실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에게..’
무엇이 우리의 소망인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의 유일한 용기와 힘이요, 위로가 되는 것이다.
말씀을 마치겠다. 우리가 삶이라는 여행, 여정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순종’케 하는 것이다. 앞으로 그 “믿음의 준비”에 대해 더 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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