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짓는 나그네 제사장

베드로전서 강해 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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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베드로전서 말씀을 세 번째로 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은 임시적인 외국인 거주자들입니다. 우리 성도의 본질도 이 수신자들의 입장과 비슷합니다.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바라보며 삽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바라보며 이 땅을 살아가는데 이 땅에서 살아있는 성전으로,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가 되고 중요한 삶의 원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우리는 산돌로 지은 성전에 속해있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는 산돌로 지은 성전에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4절에 보면 “사람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산 돌은 살아있는 돌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이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돌로 된 성전입니다. 역사의 파도 가운데 무너질 모래성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은 열강의 침략에 다 무너졌습니다. 이 성전은 돌로 된 성전이고 죽은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돌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돌로서 성전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산돌이십니까? 그분은 생수가 나오는 반석이시고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열국을 무너뜨리는 뜨인 돌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너질 돌멩이, 생명 없는 돌멩이가 아니라 산 돌이십니다.
6절에 의하면 산 돌이신 그분이 성전의 모퉁이돌이 되셨습니다. 모퉁이 돌은 주춧돌입니다. 건축물을 세울 때 기준이 됩니다. 이 모퉁이 돌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고 이 모퉁이 돌이 있기에 5절에 의하면 보시면 우리들이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모퉁잇돌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어 우리가 ‘산돌 같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신령한 집이 됩니다.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살아있는 모퉁이 돌이 되시고, 우리가 ‘산돌 같이’ 되어 그 위에 쌓아 올려 져서 성전이 됩니다. 산돌이신 예수님으로 인해 지어진 성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나 이렇게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7절에 보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이 산돌이 보배입니다. 보석입니다. 그런데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이 산돌이 쓸모없는 돌입니다. 버리는 돌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이 돌이 8절에 의하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서의 이미지를 가져오자면 열국을 심판하는 뜨인 돌입니다. 투석기에 실린 투석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8절 하반절에 의하면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보배와 같은 산돌, 성전 재료가 되는 산돌이 가치 없는 돌입니다. 살아있는 돌 대신 죽은 돌을 찾습니다. 유대인으로 말하자면 예루살렘 성전을 찾습니다. 이방인으로 말하자면 파르테논신전 같은 웅장한 신전을 찾습니다. 그런 죽은 돌, 무너져 내릴 돌을 찾습니다. 그런 죽은 돌을 쫓아다니느라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버립니다. 이 산돌은 하나님이 택하신 돌이고 세상이 평가할 수 없는 보배인데 말씀을 모르니까 순종할 줄 모르니까 산돌을 버립니다. 그런데 버린 산돌이 무기력하게 묻혀 있는게 아니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장애물이 되고 투석이 됩니다.
그래서 모퉁이돌 되신 예수님께 속한 성도의 일차적인 조건이 2절에 나옵니다.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기 ‘신령한’이라는 단어의 번역이 이해하기 쉬운 번역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본성에 속한’이라고 번역해야 본문이 쉽습니다. 그러니까 본성에 속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에 속한 젖이 무엇이겠습니까? 1절에 악독, 기만, 외식,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하니까 이건 죄인으로서의 본성이 아니라 성도로서의 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본성에 속한 젖은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산돌 같이 되어 신령한 집, 성전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증명) 아기가 얼마나 젖을 사모하는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갓난아기 때는 젖을 안 주면 울지만 아이가 기어다니고 쇼파를 짚고 일어서는 시기가 되면 젖을 사모하는 게 아니라 거의 젖에 집착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엄마한테 기어가서 엄마 옷을 확 제치고 젖을 빱니다. 왜냐면 그게 있어야 아기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게 있어야 영양분을 공급받고 면역력을 키우고 살이 붙고 뼈가 자랍니다. 아기가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찾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어야 그게 영양분이 되고 세상 죄악에 대한 면역력이 되고 영적인 체력이 생깁니다.
성도는 아기가 젖에 집착하듯이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산돌 같이 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살아있는 성전이 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적용) 우리는 산돌 같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기 위해 말씀 사모합니까? 아니면 세상 속에서 세상의 돌성전이 되는 것을 사모합니까?
신약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은 종교권력자들의 핵심적인 구역입니다. 성경적인 의미를 잃고 권력과 금권력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은 무너집니다. 그리스-로마의 수 많은 신전들 파르테논 신전 아테나 신전 그 당대의 문화와 기술이 집약된 신전들은 시대가 지나 다 무너져 문화재가 됐습니다. 피라미드 보십시오. 원래 햐얀 대리석으로 지은 휘황찬란한 건물입니다. 파라오의 권위를 보여주는 건물 아닙니까? 시대가 지나니까 누리끼리한 건물이 되어 구경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 죽은 돌멩이로 지은 건물입니다. 지금 이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첨단 기술과 엄청난 자본으로 쌓은 문명들은 금새 다른 기술로 대체 됩니다. 언젠가 다 무너집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 없어지는 직업이 무수합니다. 다 무너지는 돌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지만 4차산업 혁명도 언젠가는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어떤 돌을 선택할지 결단해야 합니다. 신령한 젖인 말씀을 사모해서 산 돌 같이 되어 살아있는 성전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이 추구하고 세상이 짓고 있는 죽은 돌 성전이 되겠습니까? 무엇이 될 지 결단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말씀을 사모하여 살아 있는 성전을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영광스러운 성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전의 주된 역할은 예배입니다. 세상 나라 가운데 우리가 예배하는 성전으로 서야 합니다. 나그네인 우리는 성전이 되지 않으면 금방 세상과 동화됩니다. 우리가 성전이 되어야 세상과 구분되어 예배자로 올바르게 서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능력으로 성전으로 사는 것이 세상 문화에 현혹되지 않는 비결입니다.
2- 세상 가운데 제사장으로 살아야 한다.
(전환문장) 그 다음으로 오늘 본문은 성전에 이어서 제사장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우리는 산돌로 지은 성전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독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5절 초반부에서는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후반부는 또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라고 말합니다. 성전이 되라는건지 제사장이 되라는건지 헷갈립니다. 그러나 헷갈릴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전도 될 수 있고 제사장도 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시면서 동시에 성전이 되시면서 동시에 제물이 되시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성전이 되고 그 성전의 제사장이 되는 것도 믿음이 일으키는 신비입니다.
제사장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입니다. 사람은 죄인이라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지만 제사장의 중재사역, 중보사역을 통해 죄인이 죄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령한 집에서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우리가 산돌로 지어진 신령한 집, 성전과 세상을 중재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이기만 하면 세상과 섞이지 않고 구분되는 선에서 끝납니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일 뿐 아니라 세상에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언젠가 무너질 돌로 지어진 곳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곳에 소속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그곳에서 끌어내서 신령한 집으로 인도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거룩하게 구분하셔서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전도를 연상시키기 쉽습니다. 전도도 맞지만 그것보다 더 한 차원 높은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산돌로 지은 성전에 소속되어서 세상에 있는 것들이 무너질 것이라 경고해야 합니다. 무가치한 세상 것들 가운데 교회는 아름답고 영광스럽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당장 교회로 사람 한 명 데리고 오는 것은 쉬울 수도 있습니다. “교회 오면 이거 해줄게 한 번만 온나” 이렇게 해서 사람 데리고 오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많고 그분들 중에 훌륭한 목회자 좋은 장로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부흥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좀 더 근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신령한 집의 제사장이 되어서 우리 삶을 통해 세상적인 것들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무턱대고 세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말씀에 따라, 기도의 능력으로 신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세상과 구분되는 거룩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제사장인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신령한 집에서 제사장으로 선택 받았습니다.
9절 말씀 정말 유명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이의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셨습니다. 사망과 심판의 자리에서 우리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의 빛 아래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까지에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이 구원의 빛을 세상에 비춰야 합니다. 세상이 어둡다는 것을 보여주고 밝혀야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의 의미는 왕에게 속한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장 직분을 받아 세상 가운데 제사장의 역할, 중재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9절에서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구약시대의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로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소유하신 지파였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이 제사장 족속이 됩니다. 제사장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사장 나라라고 하시는데 이제 교회가 제사장 백성들이 됩니다.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덕을 세상에 알리는 제사장입니다. 이 하나님의 덕에 비하면 세상의 것들은 너무나 무가치합니다. 이 하나님의 덕은 무엇입니까? 10절에 나오는 긍휼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세상에 뜨거운 긍휼을 흘려보내야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구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 긍휼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산돌로 지은 성전을 관통해서 제사장인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이 긍휼은 죄인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제사장 노릇을 할 때 이 긍휼이 흘러서 이 긍휼의 강을 타고 많은 이들이 산돌로 지은 성전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적용) 그래서 우리는 늘 제사장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시고 신령한 집으로 죄인들을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해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할 때 전도는 물론이고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결론
(전환문장)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산돌이신 예수님, 모퉁이돌이신 예수님께 속해서 산돌 같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살아있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세상의 그 어떤 돌성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성전입니다. 세상의 그 어느것에 의해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영원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이 성전의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들어가서 세상의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을알립니다. 믿음의 가치,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전하는 중보자가 됩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전합니까? 우리를 기이한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 긍휼을 통해서 전합니다. 우리가 긍휼을 흘러 보낼 때 구원 받을 영혼들이 신령한 집으로 모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말씀을 사모함으로써 산돌로 지은 살아있는 성전이 되십시오. 더 말씀을 사모함으로서 더 견고한 산돌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산돌로 지은 성전의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선포하여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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