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이 잘되는 부조리한 세상을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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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잘되는 부조리한 세상을 사는 법: 우리의 복은 세속적인 복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자체다.
[서론]
만약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이 456억을 얻지 못하고, 악당같은 깡패가 그 돈을 얻었다면 어땠을까요?
돈은 아무도 못가지고 참가자들이 모두 죽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기분은 왠지 찜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영화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줄거리는 권선징악의 스토리입니다.
악한 사람은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당들이 혼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면 우리는 통쾌함을 느낍니다.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봤던 ‘오징어게임’도 이런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왜 통쾌하게 느끼냐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히려 악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악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으로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들의 악행이 드러나도 법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싼 변호사를 써서 법의 처벌도 피해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악인들의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시나?
그러면서 우리가 가진 믿음과 신앙에 회의감이 들게 됩니다.
돈과 권력이 최고구나.
하나님을 믿으면서 선하게 살아가봐야 별 소용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 안 믿고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채 살아가도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신앙의 회의감이 들 때 어떻게 해야할까요?
[본론]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시인도 이런 신앙의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에 위배되는 현실을 보며 시인은 절망한 것입니다.
1-3절입니다.
1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2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3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믿으며 정직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같은 의인을 복주시고, 악인은 심판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주변의 악인들을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악인들이 성공한 듯 보이고, 삶이 평안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던 의인의 길에서 넘어질뻔 했다고 고백합니다.
미끄러질 뻔 했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 길에 비유하곤 합니다.
어떤 길로 가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방향과 도착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는 길은 좁고 힘든 길인데, 옆 길은 넓고 편안해보이니까 시기심이 생기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도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도핑테스트에 걸렸습니다.
도핑 테스트에 걸리면 절대로 경기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올림픽 위원회는 그 선수에게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당하게 준비한 사람들이 열받고 허무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운동경기도 그런데 하물며 우리 인생은 어떨까요?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은 과연 공정한 심판이실까요?
그럼 이제 시인이 세상 속에서 본 악인들의 모습은 어떠 했을까요?
4,5절입니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5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악인이 아무리 일평생 평안하게 살았더라도 죽을 때만큼은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악인이 죽을 때도 고통없이 죽어서 '호상'을 누린것입니다.
세상에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오래 살다가 죽은 사람의 장례를 ‘호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악인들이 그 호상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또한 죽을 때까지 잘먹어서 몸에는 윤기가 흐를만큼 때깔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겪는 흔한 고통도 그들은 피해가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면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린다거나 하는 이런 일도 일평생 겪지 않는 것만 같았습니다.
태풍이나 홍수, 전염병같은 재앙도 그들을 피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세상 편하고, 큰 근심, 걱정 거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악인들은 더욱 의기양양해 진 것입니다.
6-9절입니다.
6   오만은 그들의 목걸이요, 폭력은그들의 나들이옷이다.
7   그들은 피둥피둥 살이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며, 마음에는 헛된 상상이 가득하며,
8   언제나 남을 비웃으며, 악의에 찬 말을 쏘아 붙이고, 거만한 모습으로 폭언하기를 즐긴다.
9   입으로는 하늘을 비방하고, 혀로는 땅을 휩쓸고 다닌다.
시인은 그들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만이 그들의 목걸이고, 폭력이 그들의 나들이옷이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거만하게 뽐내고, 폭력이 외출복 입는 것처럼 일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다 자기 아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한테는 아첨하고,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은 짓밟아 버립니다.
사람은 얼굴에 그 인생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악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먹고 싶은 건 다 먹으니까 피둥피둥 살이 쪄서 눈이 살에 묻힌 것처럼 보입니다.
요즘이야 부자들이 더 날씬하지만 고대사회에서 부자들은 대부분 살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눈은 항상 거만하게 치켜 뜨고 다닙니다.
마음에는 악한 생각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믿으니까 악한 상상력을 절제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남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을 보면 폭언을 일삼습니다.
예전에 어떤 항공사 회장부인하고 그 딸들이 부하직원에게 행했던 갑질 기억하시나요?
악인들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통제할 사람이 없다고 여기니까 하늘과 땅을 막론하고 눈에 뵈는 게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살면 뭔가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시인이 열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악인들의 형통을 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도 유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10-12절입니다.
10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물을 들이키듯,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11   덩달아 말한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 하고 말한다.
12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가 악인인데도 신세가 언제나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구나.
하나님의 백성들도 마치 물들이키듯 그들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악인들은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하나님이 어찌 다 아느냐며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자신들을 내버려둘 수 있느냐며 하나님께 도전장을 내밉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도 평안하고 성공하니까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하나님의 백성들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본 시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 까요?
13-16절입니다.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16   내가 이 얽힌 문제를 풀어 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은 내가 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먼저 허무한 마음이 듭니다.
아무리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봤자 헛되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 오히려 순진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들로 시인은 너무 괴로웠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정직하게 살아온 자신은 여러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악인들은 잘되는 것만 같아 시인은 너무 괴로웠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삶이 고통스럽고, 자신의 신앙과 믿음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나도 누구처럼 그냥 그렇게 살까’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자신과 같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만 같아 그것도 괴로웠습니다.
믿음과 실제 삶의 괴리 앞에서 그는 허무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괴로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자기 스스로 해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우리들은 무엇을 얻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리들이 누리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부자가 되었습니까?
아니면 매번 좋은 일만 일어나고 삶이 평안합니까?
우리는 신앙생활로 어떤 혜택을 얻고 있습니까?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질문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자기 스스로 풀 수 없었던 이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17-20절입니다.
17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19   그들이 갑자기 놀라운 일을 당하고, 공포에 떨면서 자취를 감추며, 마침내 끝장을 맞이합니다.
20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 실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여기서 시인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성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악인의 운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자신이 길에서 미끄러질뻔 했다고 말했는데 깨닫고보니 오히려 악인들이 미끄러운 곳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악인들이 가고 있는 길이 바로 비탈길이었고, 낭떠러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위태롭게 버티다가 곧 멸망할 것인데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은 마치 일장춘몽처럼 금새 사라져버릴 허무한 것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해석되지 않던 우리 인생의 문제들이 풀리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지적 능력의 한계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복잡한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세상에 일어나는 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고장난 나침반으로는 제대로된 방향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수많은 고백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자 내가 왜 그런 일들을 겪게 되었는 지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잘나가던 자신의 사업이 왜 파산하게 되었는 지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을 만나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웬수같은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주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하나님을 만나자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왜 내게 고통스런 실패를 주셨는지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고, 억울하기도 했는데 하나님을 만나자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무지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21-22절입니다.
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만나자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을 보자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깨닫게 된 것과 같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깨닫고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 아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심장과 콩팥이 사람 몸 속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어 거기에서 마음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슴과 심장은 사람 내면의 가장 밑바닥, 가장 깊은 곳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이 올라온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마치 한마리 짐승과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그저 눈 앞에 있는 것만 보고, 눈앞에 있는 것만 쫓아가는 그런 짐승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제서야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어주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23절입니다.
23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시인은 자신이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붙들어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 인생에 아무런 보상도 해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믿음은 그냥 자기 세뇌가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만나고 난 후 주님이 항상 자신과 함께 계셨고, 자신의 오른손을 붙들어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을 뒤돌아보면 발자국이 나란히 두개가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는 내 발자국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주님의 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아서 지금 당장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시인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24-26절입니다.
24   주님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25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게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26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시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하고 두려운 인생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나침반이 되어주십니다.
시인은 처음에는 자신이 영광받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믿는 믿음대로 복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자신이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잘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고 이제는 주님이 내 삶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악인들은 하늘과 땅에 그 누가 자신들을 막을거냐며 교만하게 떠들어대지만
시인은 하늘과 땅에 오직 주님 밖에 없다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시인이 깨달은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복이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들이 때로는 부족해 보일지라도 주님과 함께하는 삶 자체가 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주시는 선물만 바라보던 삶에서 이제는 아버지 자체가 선물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더이상 악인들이 누리는 형통과 평안을 바라기 보다 하나님 자체를 바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누리는 삶 자체가 자신에게 가장 큰 보상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27, 28절입니다.
27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성경은 딱 두 종류의 사람과 그들이 가는 딱 두 종류의 길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냐
중간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이 가는 길은 잠깐동안은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길은 결국 미끄러지는 비탈길이며, 벼랑끝으로 가는 길일 뿐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는 길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가는 길은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를 굳게 붙들어주십니다.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 모두 일평생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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