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one Analysis
Overall tone of the sermon
This automated analysis scores the text on the likely presence of emotional, language, and social tones. There are no right or wrong scores; this is just an indication of tones readers or listeners may pick up from the text.
A score of 0.5 or higher indicates the tone is likely present.
Emotion Tone
Anger
0.02UNLIKELY
Disgust
0.01UNLIKELY
Fear
0UNLIKELY
Joy
0.02UNLIKELY
Sadness
0.01UNLIKELY
Language Tone
Analytical
0UNLIKELY
Confident
0UNLIKELY
Tentative
0UNLIKELY
Social Tone
Openness
0.73LIKELY
Conscientiousness
0.37UNLIKELY
Extraversion
0.77LIKELY
Agreeableness
0.66LIKELY
Emotional Range
0.25UNLIKELY
Tone of specific sentences
Tones
Emotion
Language
Social Tendencies
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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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9-28 / Scripture Reading
천국에서 만난 예수님
천국에서 예수님이 성도들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오면 다 일어나서 앉아주고 인사를 하는데 목사가 오면 일어나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왜 안 일어나시냐고 물어보니까 ‘너가 내 자리 뺏을까봐 안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이 예화를 보면서 이것이 비단 목사님 뿐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인 양 살아가는 이 시대의 높아진 그리스도인들을 풍자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너는 누구냐
오늘 본문을 보니까 유대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네가 누구냐라고 묻습니다.
오늘 제목처럼, “너는 누구냐?” 한번 옆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누구냐?”
당시 세례 요한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청렴하고 구별된 삶(막 1:6) 때문이기도 했고, 그의 거침없고 강력한 메시지(마 3:1–2)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요한의 설교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설교를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설교에 반응했습니다.
이것이 설교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인 반응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세리와 창녀도 세례를 받았고, 군인들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부자도 세례를 받았고, 가난한 사람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당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고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왕을 선거로 뽑았다면 요한은 틀림없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몰라요.
“요한이 구약에서 계속 예언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인가?” “모세가 말했던 그 선지자인가?”
많은 사람들의 질문 앞에서 요한 살짝 웃고 넘어갔다면 그 시로부터 요한은 메시아로 추앙 받았을지 모릅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요한에게 쏟아지고 요한은 말 그대로 스타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요한은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I am not the Christ”
헬라어 원문에 보면, “나는" (Ego) 부분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 PR 시대 (PPT)
PR이란 “Public Relation”의 약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대중과 관계를 맺으며 나를 브랜딩 하며 나를 홍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는 누구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우리의 수많은 이력과 프로필을 나열하며 나를 홍보하고 나를 어떻게든 높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PR이 나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죄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아담과 하와의 본질적인 죄의 속성은 ‘교만함'입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자리,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탐이 났던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인간들 마음에는 ‘내가 신이다.
내가 그리스도다'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다보니 나를 끊임없이 높이기 시작합니다.
자존심도 높아집니다.
내 명성에, 내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스크래치 나는 일이 생기면 격분할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 표현은 안할지라도 내가 높아질 수 없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섬김의 자리에 가지 않습니다.
낮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교회 공동체 안에도 만연하다는 거에요.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고는 하는데 그들의 삶을 보면 그들의 왕좌에는 여전히 내가 앉아있는 것을 봅니다.
필리핀 집회 때 신이 된 느낌
필리핀 집회 때 많은 사람들이 울고 성령받고 간증할 때 순간 ‘내가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든 박수와 모든 영광을 내가 다 받고 싶은 겁니다.
내가 커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내 영광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이것이 비단 저의 이야기입니까?
이것이 의인이 되어도 여전히 죄인의 속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실상 아니겠습니까?
예수님만을 높인 이유
요한도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처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할만큼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한 또 다른 엘리야가 바로 요한이었지만 요한은 ‘자신은 엘리야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선의의 거짓말까지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끝까지 자신의 모든 손가락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가리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본인이 스타가 되지 않고 그 자리를 자기보다 6개월 늦게 태어난 예수님에게 돌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의 영광이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그리고 나서 요한은, “Who are you?”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 (울퉁불퉁 광야 사진)
주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 당시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로 귀환할 때 광야가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이스라엘 출바벨론을 이야기하면서 한 말들입니다.
바벨론에서 다시 이스라엘로 오려면 언덕도 있고 험한 골짜기도 있었습니다.
거친 땅도 있었어요.
이러한 길을 곧게 해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바벨론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주님이 오시니 주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는 내 마음의 돌짝밭 같은 마음을 부수고 언덕처럼 높아진 마음과 태도를 낮추고 강팍한 마음의 밭은 갈아 엎어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만드는 거에요.
그때 주님은 그 길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주의 길을 만드는 밤이 되기 바랍니다.
하경이 방 장난감 치우면서 깨달은 에피소드
하경이 방이 한번은 장난감으로 가득해서 발을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장난감을 치우면서 조금씩 길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 가실 길을 막고 있는 기독교과 크리스찬들에 대한 오해의 휴지 조각들, 쓰레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주어야 합니다.
오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은 이곳을 바람처럼 운행하고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이곳을 지나셔야 하는데 내가 너무 높아져서, 내가 하나님보다 커서 그 하나님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라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어떻게 나의 길을 곧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길을 곧게 합니까?
바로 내가 부르신 받은 그 삶에서 광야에 외치
는자의 소리가 되는 겁니다.
“예수 믿으세요" 소리를 내서 정말 소리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가 보내진 삶의 자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One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
우리가 효과적인 소리가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내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주는 겁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고 오직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 예수님 믿는 진짜 크리스천은 저런 모습이구나"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마음의 빗장을 풀고,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자들의 시선을 올바로 바꿔주는 겁니다.
책읽는사자의 신앙의 참견 - 크리스찬 정체성
직장에서 크리스찬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몇 가지 나열했는데 그것들은,
1)음주문화 2)식사기도 3)뒷담화 4) 인간 관계
음주문화때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나는 크리스천이라서 술을 안마신다'라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술을 멀리함으로써 술로 인해 오염될 수 있는 크리스찬의 정체성을 지키라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 그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했다면 우리가 과연 술을 가까이 할 수 있을까 질문해보는 겁니다.
식사기도, 속으로 하지 말고 당당하게 사람들 보는 앞에서 하라는 겁니다.
한끼 한끼 식사는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인구의 13억명 정도가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해요.
그 중에 절반이 어린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사람들 보는 데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한끼 식사에 대한 감사가 없거나, 아니면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뒷담화할 때는 같은 비판의 자리에 있지 말고, 혹여나 같이 있더라고 화제를 지혜롭게 돌리라는 겁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 관계가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들이 나를 통해 복음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참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그래서 착함이 아니라 ‘선함'으로 악을 이기라는 주님의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쉽게 이직하지 말고 그 안에서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겁니다.
상사와의 관계가 힘들어서 이직한다고 해서 또 다른 곳에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이것을 ‘돌아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것들이 완벽한 답은 될 수 없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이러한 노력들은 복음을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부르심 받은 곳에서 낼 수 있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Who are you?
다시 묻습니다.
Who are you?
오늘 설교의 포인트는 요한의 겸손함을 본받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했다면 오늘 설교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오늘의 포인트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십자가의 빛나는 영광이 있습니다.
눈을 들어 나를 구원한 그 십자가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볼 때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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