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함께 빛 속으로 갑시다

이사야서 설교 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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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승리의 날은 하나님의 전 우주적 통치가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날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많은 백성 가운데 우리와 그들을 중재하십니다. 3. 우리에게 판단의 권한이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Notes
Transcript
이사야 2:1–5 NKRV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하나님의 전 우주적 통치가, 세상에 받아들여집니다.

지난 두 번의, 이사야 1장 내내의 심판과 회복의 말씀에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은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사 2:1
이사야 2:1 NKRV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에서 등장하는 이 상황에 대한 언급 자체가 1장과의 연결보다는 분리된 다른 텍스트를 읽게 유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2:1의 말씀이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아예 이 단락 자체가 나중에 삽입된 것인가 하는 데에 대한 이론들이 나뉘어 있습니다.
한편 또다른 문제는 이 텍스트의 화자를 누구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텍스트는 미가서 4장에서도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미 4:1-4
미가 4:1–4 NKRV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하필이면 미가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시기가 겹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누가 누구의 것을 참고했을 지도, 혹은 그 이전의 어떤 ‘선지자적인 문헌’을 참고하여 이사야와 미가 두 선지자가 작성하였을 수도 있지요. 어떤 학자는 이 내용에 대해서 아예 포로기 이후에 추가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지만,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는 점은 ‘시온’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유다 왕국 말기에 드러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딸 시온에 가지고 계신 아주 원대한 계획들을 드러내어, 예루살렘에 사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솔히 여기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을 시키려 한다는 목적을 적어둡니다.
오늘의 본문을 읽어가면서 제가 강하게 느낀 것은 두 가지의 방향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방향이란 위쪽 방향과 아래쪽 방향입니다.
본문 사 2:2-3 은 위쪽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이사야 2:2–3 NKRV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산이 위로 서고, 3절에서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산에 오릅니다. 이 본문 안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하심과 그의 율법과 말씀을 자연스럽게 인정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종말의 비전은 이 말씀을 받는 우리뿐 아니라 그 당시의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자긍심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 시온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매우 순수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멸망하는 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라는 이러한 신앙을 우리가 비난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시온에 대한 강한 확신이 담긴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우리는 시편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시편 2:5–6 NKRV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유다 백성들의 시온에 대한 신념은 결코 그릇된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시온을 세울 것이고, 세상의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의 분노 앞에 무릎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면, 사 11:9
이사야 11:9 NKRV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에 등장하는 ‘종말의 때에 우리에게 보여주실 궁극적 그림’이 보여지게 됩니다. 세상의 이방 나라라고 편의적으로 칭했던 그들은 더는 ‘이방 나라’가 아니게 됩니다. 그들 역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가지게 되며, 여기서의 ‘알다’는 히브리적인 “관계적 앎”을 칭하게 되므로, 신약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지요.

왜 판단이 아니고 중재가 되는가.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방향 중 아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온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할 것이라고 예언자는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온을 통해서 온 백성에게 흘러나간다는 것이지요.
한편 방금 전의 시편 말씀과 이어지는 오늘 말씀 4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들 사이에서 재판장이 되실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나라들 사이에서 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백성들 사이에 서셔서 중재하실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를 70인역 성경에서는 중재한다는 대신 ‘책망하실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묘하지만 다른 해석을 하도록 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이방인들, 즉 우리 기준에서는 믿지 않는 이들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이 부분을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자세히 보니, 이 ‘판결’은 판결이 아니라 ‘중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궁극적 심판이 아니라 중재라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깨닫게 된 것은, 중요한 것은 그 중재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 백성들 사이에서의 중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잘못 생각하면 말 장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심판과 책망이라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고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그들 사이에 서셔서 우리 편을 드시고 그들을 책망하시는 방식을 쓰시지 않으시고, 우리와 그들 간에서 중재하도록 하는 방식을 쓰실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고나니 다시 한 번, 이 본문을 살펴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 본문에서 나타나는 많은 백성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이 무리는 이미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통치 구조를 받아들인 백성들인 것입니다. 이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해석해야 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면서 본문을 읽어나가고 있던 제 자신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분명히 어딘가에는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안에서는 ‘우리’와 ‘그들’이 없습니다. 이 많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시온으로, 여호와의 산으로, 야곱의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갑니다.
복음의 새로운 가르침, 새로운 말씀으로 많은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모하며 올라갑니다. 이를 행한 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의 십자가가 시온으로 올라가는 그 ‘길’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직접, 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는 과정에는, 칼과 창이 필요가 없습니다. 삶의 모든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가는 과정에 나를 지키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잠시 살펴볼까요. 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포기할 수 없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으로 대항하나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지킵니까, 아니면 그 말씀을 ‘칼처럼 휘두르면서 남을 정죄’하나요. 분명히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검’이 되지만, 이것이 베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철저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시온으로 올라가는, 천국으로 올라가는 그 길에서는 남에게 휘두를 칼이 없습니다.
칼이 보습이 되고 창이 낫이 되고, 나라들은 전쟁을 연습하지 않습니다. 본디 전쟁이라 함은 국가 간의 어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최종적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그 필요가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현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 계시기 때문에, 어떤 분쟁이 발생한다 한들 명확하게 가지고 갈 곳이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면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로마에 의한 pax romana도, 영국에 의한 pax britannica도, 미국에 의한 pax americana도 그 본질상 인간의 힘에 의한 평화라는 공통점 때문에, 이미 붕괴하여 사라져버리고 마는 유한성을 지키지만,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이 pax zion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이 두가지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런 궁극적 평화의 메시지에 이어지는 말씀은, 예언자의 요청입니다.
이사야 2:5 NKRV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예언자의, 나아가서 하나님의 이 초청은 ‘야곱 족속’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초청으로 들립니다. 우리 성경의 단락 구분은 원문 상에서는 없는 내용이기에, 저는 조금 다르게, 다른 구약학자들의 의견들을 참조하여 단락을 나누어보았는데요.
단락을 오늘의 말씀처럼 나누었을 때는 4절 이후의 5절을 위의 말씀에 대한 초청으로 해석하고는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먼저 보여주시고, 그를 얻기 위해서는 이렇게 행해야 한다, 라고 말씀을 덧붙이시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에 대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를 즐겨 합니다. 하나님의 빛 안에 산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예수 안에 산다는 의미가 되고, 그 말씀 자체가 우리 자신의 삶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라는 이 긍정적 이미지!
그런데, 우리가 야곱 족속이 맞을까요? 바로 다음인 6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6 NKRV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결국 다시 이전 주의 말씀대로 돌아가게 되네요. 하나님께서 야곱 족속을 버리신 것은 그들이 하는 행동 때문이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 다음에 더 풀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야곱 족속이나 이방인들이나 같은 운명에 처해있다는 장면을 보여주는 이 말씀, 또한 빛으로 걸으라는 이 초청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말씀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게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남을 정죄하는 칼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으로 내 마음의 밭을 기경하는 보습과 낫으로 삼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남을 상처입히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빛’되심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45 NKRV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은 악인도 선인도 모두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그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그들을 정죄하듯 말씀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그 방법일까요?
분명히 우리는, 우리의 방법론에 대해서 재고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빛 속으로 갑시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시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길 싫어할 것입니다. 어둠 속에 거하는 이들은 본질 상 빛을 싫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20 NKRV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빛 안에서 계속 걸어야 합니다. 그 좁은 길 속에서 끊임 없이 좌우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그들을 구별할 어떠한 기준도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가라지 비유를 기억하십시오.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중재안을 따라가며 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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