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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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간구와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을 높이는 간구

Notes
Transcript

히스기야와 유다의 배경 ( 원수들의 공격)

히스기야가 편지를 받아 보았다.
이 때는 앗수르가 파죽지세로 자기 주변 영토를 정리하고 아람과 북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당대 애굽과 누가 그 지역의 패권을 차지할 것인가? 하는 전쟁을 앞 두고 있었다.
그 길목에 있는 남유다를 앗수르가 점령하고자 왔다.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공을 했다.
남유다 모든 성읍은 다 점령이 되었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세워진 군사 요새인 라기스만 남았다. 거기에서 그들과 협상을 했다.
그 때 히스기야가 그들이 요구하는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성전과 왕궁 곳간에서 은을 모아서 주고 금은 기둥에 입힌 것을 벗겨서 주었다.
그런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앗수르가 침공은 멈추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 군대를 보냈다.
그 때도 앗수르 사신 랍사게가 와서 모든 백성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유다 말로 하나님을 비방하는 말과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신뢰하라는 말을 듣지 말라고 했다. 그들이 전한 내용에는 어느 민족의 신이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 내었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앗수르 손에서 건지겠냐? 했다.
그렇게 전달된 말을 히스기야가 듣고 하나님께 물었다.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그 때 전달된 말씀이 이들이 한 소문을 듣고 떠나게 될 것이고는 그는 본국에 돌아가 죽게 될 것이다는 것을 전달 받았다.
그리고 실제 앗수르 왕이 떠났다. 구스 왕 다르하가가 앗수르와 싸우고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앗수르가 그렇게 물러가면서 다시 한번 편지를 히스기야에게 보낸것이 오늘 읽은 본문의 윗 부분이다. 10-13절까지 내용이다.
그 편지 내용은 네가 믿는 하나님이 하는 말, 예루살렘을 앗수르 손에 넘기지 않겠다는 말에 속지 말라.
너희가 다 듣지 않았느냐? 여러 나라 왕이 진멸당한 일을 듣지 않았냐?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냐?
각 민족의 신들이 건졌냐? 그 나라의 왕들은 지금 다 어디 있느냐? 라는 말을 전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비슷한 공격이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지금까지도 주님이 오시지 않았고 세상은 그대로 있다. 심판이 있다고?
그리고 하나님이 있다고? 그것은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다.
늘 원수가 우리를 공격하는 지점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원수가 빼앗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우리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씨를 빼앗아 가는 것이 원수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에 있어서 원수가 하는 방식은 씨 뿌리는 비유를 참고로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다.
환란이나 박해가 올 때 빼앗기고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이 처해 있는 형편은 앗수르의 공격도 있지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원수들의 말과 자신들 앞에 보여지는 환경이다.
이것이 우리들이 마주 대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령에 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원수의 공격 가운데 우리가 놓여져 있다. 이것이 우리와 히스기야가 당한 일과 같은 점이다.

히스기야의 대응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이다.
히스기야가 편지를 받고 읽었다.
그의 대응 방식이 나온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다.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펼쳐 놓았다.
그 앞에서 간구했다.
제일 먼저 히스기야가 택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다.
이번에 열왕기상하서를 보면서 북이스라엘 가운데 선지자의 활동이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이전에 저의 이해는 이것이 북이스라엘의 타락과 우상 숭배의 일로 인해서 하나님이 책망하시고자 하는 일로만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 말씀을 보면서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 분께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으로 이해가 되었다.
북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북 이스라엘에게 자신, 그 분의 말씀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 선지자였다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혀진 북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나갈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 그 분이 보내신 종이다.
우리의 역할이 이런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모르는 사람, 또는 여러 가지 일로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 막혀진 사람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종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들에게 하나님께 이를 길을 소개하고 열어주는 것이다. 그 대상이 열방이기도 하고 나의 주변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열왕기상하의 저자가 남유다 왕들에게 있어서 관심을 가지는 영역은 성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이다.
오늘 보이는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왕이다. 그는 성전에 출입할 수 있었다.
남 유다 왕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러나 왕들마다 다르지만 어떤 왕은 성전을 수리하기도 하고 어떤 왕들에게 있어서는 성전의 문을 닫기도 한다. 그리고 웃시야는 본인이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고자 하다 나병에 걸리기도 했다.
남유다 왕에게는 성전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가 중심이 된다.
지금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갔다.
이것이 참 제게는 숙제이다.
위급한 일을 만났을 때, 다급한 일을 만났을 때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숙제다. 보통은 도울 만한 도움을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니면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거나 한다.
다윗이 블레셋 아기스를 따라 전쟁을 나갔다가 다른 왕들의 반대로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에 성은 불 타고 아내와 가족들은 다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돌을 들고 치고자 했을 때 나오는 표현이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했다. 그리고 다윗은 쫓아가서 아말렉을 치고 가족과 빼앗긴 것을 다 얻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것을 유다 지파에게 나눈다. 그리고 나서 다윗은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된다.
다윗과 히스기야는 다급할 때 성전에 올라갔다. 이것이 참 배워야 할 내용이다.
그리고 두번째 과정은 여호와 앞에 편지를 펼쳐 놓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인정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내게 일어난 것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치 그런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아빠나 엄마에게 고자질 하는 모습 같다. 하나님 이것 좀 봐 주세요 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세번째 과정은 기도이다. 기도 내용은 조금 있다가 자세하게 보고..
먼저 살펴보고 싶은 것은 성전에 들어가서 한 것이 기도라는 것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말씀을 보면서 시편 84편이 생각났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게 된 말씀이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로 시작하는 시편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가 복이 있다는 내용인 시편이다. 참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시편에서 성전에 이른 사람, 하나님 앞에 나타난 사람이 그 곳, 성전에서 한 가지를 한다.
간구를 한다.
시편 84편 8,9절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기름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왜 주님의 얼굴을 뵈옵고자 하는가? 우리는 왜 주님께서 여신 하늘에 성소에 들어가고자 하는가? 물론 주님이 좋고 사랑하는 주님을 뵈옵는 것이기에 그렇다.
좀더 근원적으로는 간구하기 위함이다. 성전은 간구하고자 가는 곳이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나서 했던 행위가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종종 그런 표현을 쓴다. 주님의 사무실에 우리가 왔다는 표현을 쓴다. 이 장면은 승인하고 결재하는 분이 있으시다는 표현이다. 모든 일을 결정하시고 판단하는 분 앞에 우리가 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이 결재하시는 것이나 그 분이 도장을 찍으시는 것을 보면 아.. 그 일이 시행되겠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다.
결정하시는 분이 있다. 우리가 성소에 들어갔다.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은 우리가 판단하고 판결하는 자가 아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서 결정하는 분이 계시고 그 분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수에 대해서도 주님께 신원하여 주시길 청할 뿐이다.

히스기야의 기도 내용

15절부터 19절까지 히스기야 기도 내용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과 독대하여 기도할 때, 마냥 주님이 좋아서 그렇게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다급할 때나 마구 마음에서 분이 나서 갈 때에..
저는 보통 생각이 복잡하고 다양한 스토리와 관념이 지나간다. 그리고 원수의 소리가 기도를 방해한다.
히스기야도 비슷한 마음들이 오고 가지 않았을까? 특히 앗수르가 하나님을 비방하면서 했던 말 너희 하나님이 구원하겠느냐? 하는 말이 얼마나 기도를 방해했을까? 싶다.
그 때 히스기야의 처음 말이 이렇다. 히스기야 기도 내용의 처음이다.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님만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선포다. 원수의 거짓을 깨뜨리는 선포다. 지금 앗수르가 했던 말 안에는 이런 것이 포함되어 있다.
너희 하나님은 능력이 없고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은 다른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과 같은 레벨의 우상이다는 것이 포함되어져 있다.
히스기야가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이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고 이러하시다. 기도하러 갔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무기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한 주 이 훈련을 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지식의 차원이라기 보다 믿음과 연관되어져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열왕기하 말씀을 보면서도 주님의 어떠하심을 알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하루 만에 사마리아 상황을 바꾸시겠다는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해보고자 하는데 안되더라.
정말 내가 모른다는 것이 인정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 4시 기도에서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부활에 이르고자 한다고 했던 말씀으로 기도하자고 했는데 기도 자체가 어려웠다. 그리고 한 가지 안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부활의 권능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수도 없이 들었고 기도도 했다.
그러나 내가 실제 모르는 것은 부활의 권능,하나님의 권능이다.
그리고 내가 전능이라는 단어를 모르지 않는다. 지식적으로 알고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과 또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전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인정이 된다.
그러면서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정말 부르짖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고 그것이 가장 바른 길이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르짖는 영을 주고 싶으신 것은 참으로 그 분을 믿도록 하시는 주님의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기도를 하라고 짐을 지우시는 명령이 아니라 너희가 기도하는 소리가 작으니 소리를 더욱 내어 기도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참 되신 하나님의 권능을 알도록 우리를 독려하시는 하나님의 권고하심 일 것이다.
두번째 기도 내용은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옵소서
산헤립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히스기야의 믿음이 드러난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시다. 주님이 살아계신 분인 것은 그 분이 듣고 보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듣고 배워온 내용들이다.
세번째 기도 내용은 17-18절인데 지금 실제적인 현실을 아뢴다. 앗수르가 여러 민족과 땅을 황폐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신들을 던졌는데 이유는 그들이 신이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도의 내용이 진짜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구하고 싶은 내용이다. 그래서 여호와여 원하건대 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매일 간구해야 하는 기도이다.
히스기야의 기도 내용을 보면서
기도를 생각해 보았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의 향연이다.
월요일에 말씀을 들었는데 지성소에 들어가서 영원하신 주님을 찾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주님이 듣고 기뻐하시는 기도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의 간구이고 믿음의 고백이다. 그 분을 인정하는 기도요 그 분이 구하면 주신다는 것을 믿고 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마지막 간구에서는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을 알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지금 하나님 편에 딱 서 있다.
나에게는 19절이 이렇게 들린다. 히스기야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 하나님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천하 만국에서 홀로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알리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선다면
우리가 하나님 편에 딱 붙어서 서 있다면
위기는 하나님의 구원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히스기야의 기도 내용을 보면서 참 나의 기도와 다르다. 나는 나에게 집중된 기도를 많이 하는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집중된 기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기도 응답

이 말씀을 보면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질문을 했다.
처음에 히스기야가 편지를 받아 보았을 때는 아마도 조마 조마 하지 않았을까?
히스기야가 믿음을 잃으면 어쩌지? 원수가 하는 말로 그의 영혼이 의심과 두려움 가운데 놓이면 어떻하나?
그러다가 히스기야가 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보실 때는 그래 그렇지 잘 하고 있다고 엄청 기뻐하셨을 것 같다.
그리고 기도하는 것을 하나 하나 들으실 때마다 하나님이 즐거워 하시고 구원하려고 달려가고픈 마음이셨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일어난 결과, 눈에 보여지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명을 전하는 종, 이사야를 보내셨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하나님이 많이 말씀하신다.
여기 내용을 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간구의 결과를 볼 수 있다. 3가지 정도 보인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간구의 결과는 신속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그리고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간구의 결과는 응답하신 내용을 보면 친절하게 구한 한 가지 한 가지에 답을 해 주신다.
여호와여 들으소서 간구에 대해서는 내게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 하시고
앗수르 왕이 이렇게 했습니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앗수르 왕을 꾸짖으신다. 그리고 앗수르 왕은 그가 성에 이르지 못하고 화살도 못 쏘고 오던 길로 돌아갈 것이다고 하셨다
그리고 구원하여 주소서 간구에 대해서는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고 구원할 것이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간구의 결과는 구한 모든 것이 응답을 받는 것이다.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간구가 일어나면 좋겠다.
오전 지엠씨 말씀을 들으면서 일은 일어났지만 우리 주님이 기뻐하셨을까? 했을 때 그렇지 않겠다고 한 내용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주님이 기쁘시게 하는 간구, 주님을 믿음으로 하는 구함이 일어나길 원한다

결론, 주님의 원함과 우리의 원함

말씀을 정리하고자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부르짖는 영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계속 부르짖는 영을 주시길 기도하고 있다.
처음 부르짖는 영을 구하라고 하셨을 때 주님이 주신 감동이 성수야 어찌 듣지 않고 부르짖을 수 있겠느냐? 너희가 소리를 낸다고 부르짖을 수 있겠느냐? 하는 감동이었다. 살아계신 주님이 내 앞에 계시고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에 부르짖는 것을 본다.
그리고 다시 부르짖는 영을 구하라고 하셨을 때 내 마음에 남은 말씀이 있었다.
사도행전 4장 23절부터 나오는 사도들의 간구가 마음에 남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위협을 받았던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한 내용이다.
특히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종들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빌기를 다 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리고 뒤의 내용을 보면 이 간구가 응답을 받는 내용이 나온다. 사도들로 인하여 기적과 이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된다.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원함이 많았다.
위험을 당할 때 이런 간구를 하고 싶다. 부르짖는 것은 부족하기에 그렇고 뭔가 이상한 것이 있기에 하는 것이고 다급하기에 도움을 얻어야 하기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살아계신 분이셔서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로 주님께 우리를 위협하는 원수를 보시옵소서. 그리고 우리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하소서 구하는 일이 있길 기대한다.
지금은 전쟁의 때이다. 겉으로는 선생님들이 밀레도와 이집트 사역을 위하여 출타하신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우리가 원수에 대해서 전쟁을 선포했고 선생님들이 앞장서서 출정을 나간 형국이다. 그리고 우리도 동일하게 전쟁의 때이다.원수가 어그러 뜨린 것을 회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주님이 부르짖는 영을 구하라고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있자. 그래서 위급하고 다급한 일을 당할 때마다 주님께 구하고 나아가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권능을 배우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자.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것이 정말 우리 중심의 원함이 되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간구를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우리 함께 주님께 기도하자
한 주간을 감사하고 다시 주님이 우리에게 부르짖는 영을 허락해 주시길 기도하자. 우리 형제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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