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교회를 세우라

고전 강해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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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를 세우라 (고린도 전서 1:1-9)
이 세상에 어느 곳에도 완전한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교회도 항상 문제들이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이상에 지나지 않아요. 타락한 세상에 사는 동안 문제는 항상 있습니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초대교회들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문제가 많았던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문제 많았던 고린도 교회를 살펴보면서 지금의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어떤 교회였나요? 이해를 돕기 위해 큰 그림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 도중에 고린도에서 약 1년6개월 (18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고린도 도시는 남북으로 육로를 연결하고, 동서로는 해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상업도시로 부유했어요.
바울 당시 자유인이 25만, 노예 40만으로 헬라 지역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12개 이상의 신전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사랑의 여신인 아데미 신전입니다.
이 신전에서 일하던 여사제들과 아데미 여신의 숭배자들이 의식의 한 절차로 음행이 성행했던 곳입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같다는 말은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 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고린도에 죄가 만연했을 것입니다.
이런 세속적인 문화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지 5년 후, 3차 선교여행을 하던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1:10-11절을 보면 ‘글로에’라는 성도를 통해서 고린도 교인들간에 다툼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의 리더들을 훈련시킨 지도자로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고린도 교회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나요?
지도자들의 이름을 내세워 파당을 지었어요.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예수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음행한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영적 은사에 대한 남용으로 서로 상처를 주었습니다.
성도들끼리 불신자의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있었어요.
우상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사도적인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한두가지의 문제가 아닌 총체적 문제들로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주님께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알듯이 한국교회도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인구 감소로 인한 어려움입니다. 장로교 통합측 통계에 의하면 한해 만명의 주일학교 숫자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크리스천의 수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천만명이 아니라, 860만명이었습니다. 15년 전이니까 지금은 더 줄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 문제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번영신학, 기복신앙입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육신의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고난이나 희생이나 섬김의 자리는 없습니다. 자신이 잘되어야 하기에 복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잘못된 성령운동입니다. 보이는 은사에만 치중하여 다양한 은사의 중요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도덕적, 성적 타락 등입니다. 요즘 미디어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사건들이 많이 보도됩니다.
부자와 가난한 성도들 사이에 벽이 있습니다.
성도들끼리 툭하면 세상 법정으로 가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혼, 동성애의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 직분을 계급으로 잘못 이해해서 공통체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가졌던 유사한 문제들을 한국교회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미래학자인 최윤식 박사는 한국교회가 뼈를 깎는 개혁을 하지 않으면, 2050~60년경에는 300만명대로 교인 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한국교회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back to the basic 즉 성경적 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가 그 많은 문제들을 성경적 원리에 순종함으로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에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서론부분입니다.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도전이나, 교회 안에 있는 심각한 다양한 문제들을 보아, 서신을 시작하면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책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망이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믿음의 공동체를 회복해야 할 기본적인 영적 자세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제안한 해결책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성도의 정체성과 받은 은혜를 강조하면서 주신 은혜로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라고 합니다.
1장2절을 보세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이 문제를 일으키는 마귀의 자식들아’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정체성을 확인시킵니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고린도 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상숭배, 음행, 시기와 다툼,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삶을 살던 그들에게 복음을 통해 죄인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된겁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거룩해졌습니다. 2절에 거룩하여지고 라는 단어는 완료 수동태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거룩함을 얻게 되었고, 그것이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수동태로 쓰인 것은 그들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거룩하게 하심을 말씀하는 겁니다.
이것을 상기시기면서 성도로서의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살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해진 너희가 어찌 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성도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교회의 분란을 일으키고 있느냐,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져가는 성도다.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살아라.
사람의 눈으로 보면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볼 때 도저히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구원받은 성도이기에 믿음 안에서 회복될 수 있음을 믿고 미리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문제만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하나도 도움이 안됩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나부터 우리부터 성경적 원리로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교회가 건강해지면,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가정을 회복시키고, 더 나아가 지역을 회복시키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책임을 감당하길 원하시고, 그것을 위한 은사와 능력을 주시고 계십니다.
2)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온갖 언변과 지식을 주신 것을 상기시키며 그리스도의 증거를 삶을 통해 견고케 하라고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5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함으로.”
언변은 ‘연설, 가르침, 교훈, 교리’ 등의 뜻 입니다. 지식은 진리에 대한 이해를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고린도 교회에게 복음을 이해하고 증거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어요.
그 동안 고린도 교회는 주님께서 주신 온갖 언변, 가르침과 복음 진리에 대한 지식로 그리스도를 잘 증거했습니다. 그로인해 고린도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증거를 견고케 하는 일에 실패했어요.
6절에 견고케 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견고케 되어’로 번역된 단어는 ‘튼튼하게 하다, 확립하다, 안전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언변, 말을 잘하는 것 중요합니다. 또한 말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견고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뛰어난 언변을 가지고 복음을 풀어서 잘 설명해주지만, 삶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 증거는 무력해집니다. 설득력이 없어집니다.
‘견고하게 되어’라는 문장을 부정 과거 수동태로 사용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그것은 견고케 하시는 주체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님께 순간마다 전적인 순종할 때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됩니다.
너희가 언변과 지식으로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삶에 적용으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길 기도하며 미리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뛰어난 언변과 지식은 많으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에 적용이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의 증거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삶에 모습으로 확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이 사실을 소금과 빛으로 비유하여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우리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서로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가정에서, 작은 모임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그렇때 그리스도의 증거가 날이 갈수록 견고해져가고, 믿음의 공동체가 건강해져 갈 것입니다
3)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모든 은사를 풍성하게 주신 것을 상기시키면서 바른 활용을 통해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되길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고린도 교회안에 성령의 풍성한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 영적 은사들을 잘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은사를 통해 지체들을 섬기고, 교회를 든든히 세워야 하는데 교만함으로 자랑하고, 형제들을 판단했습니다. 이 문제는 한국교회에도 나타납니다.
은사를 주신 이유는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라고 준 것이 아니에요.
고전 12:4-7에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전12: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성령의 은사는 서로 덕을 세우고, 서로 같이 돌보아 분쟁이 없이 믿음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받은 성령의 은사를 헛되이 하지 말아라. 정말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섬겨라.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까지 은사를 바로 사용하라고 역설적으로 당부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종합병동처럼 온갖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고린도 교회와 같은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소망이 있을까요?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어요.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가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후서7:8절-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책망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하게 메시지를 받아들였습니다. 잘못에 대한 지적을 받아들여 회개했습니다. 말씀의 원리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 많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8-9절에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주님의 명령앞에 순종할 때 이 놀라운 결과가 일어날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이 우리를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들에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한국교회를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견고케 세워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우리 공동체와 각 개인에게 주어진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에서 동일하게 명령하신 “부르심에, 성도로 합당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증거를 견고케 하시기 위해 부르심에 합당하게 날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보다 내일을 더욱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점점 건강해지는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하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 감사함으로 주님을 맞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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