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합당한 삶

골로새서 강해1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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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701 한인교회가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은 건강한 교회이다. 건강한 교회는 단지 교회의 목표나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건강한 교회는 성도로 부르신 목적과, 교회를 통해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분명하게 알고 순종할 때 세워갈 수 있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는 주일 에베소서, 고린도전서, 야고보서, 로마서를 공부해 왔다. 지난 여름 8주 동안은 기본적인 성경의 중요한 진리들, 성경이 무엇인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과 죄에 대해, 구원에 대해, 교회에 대해, 종말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을 살펴보았다.
이런 공부들이 우리교회가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의 모습으로 계속 자라는 도움이 되었다.
이번 주일부터 연말까지 골로새서 강해를 하려고 한다. 골로새서 역시 우리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믿음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워가며 땅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첫번째 시간인 오늘은, 골로새서의 핵심 메시지와 큰 그림에 대해 말씀을 나눌 것이다. 큰 그림을 먼저 이해하고 작은 그림을 통해 구체적인 메시지를 찾아 가려한다.
본문1-2절을 보면 골로새서를 기록한 사람이 사도 바울이고, 수신자들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 서원에서3년간 말씀을 가르쳤을 때에 훈련받은 제자중에 하나인 에바브로디도가 자기 고향인 골로새에 가서 교회를 개척했다.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로디도의 신실한 사역을 통해 성장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여러가지 문제와 어려움이 생겼다. 이런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에바브로디도에게 듣었다. 기도가운데 해결을 위한 메시지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쓴 것이다.
골로새서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당시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저자의 의도와 메시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골로새 도시는 에베소에서 100마일 동쪽에 위치한 곳이다. 소아시아에서 수리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였다. 그래서 인구가 많고 상업이 발달했다. 주로 많이 거래된 물품은 양털과 그것을 가공한 양털 직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 당시에는 인근 도시였던 라오디게아로 무역의 통로가 바뀌면서 상권을 잃어버린 도시로 전락했다.
골로새 도시는 브루기아 원주민들과 헬라 시민들 그리고 이주민들로 구성되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보면 주전 61-2년 경에 로마 총독이었던 플라쿠스가 골로새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세로 20 파운드의 금을 수송하려는 것을 금했다고 기록한다. 당시 금값을 유대 성인 남자의 수로 나누어 계산해 보면, 그 지역에11,000명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여자와 노인 아이들까지 계산하면5만명 정도.
이들이 헬라문화와 결합해서 만들어낸 혼합주의적 유대교가 존재했다. 이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으로만 되지 않고 금욕적인 규율이나 유대교의 절기를 지키는것, 율법의 준수등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았다.
해와 달을 섬기고 축제일과 안식을 준수를 요구하는 것, 음식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엄격한 금욕주의를 강조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의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위협적 요소였다.
바울 당시 골로새가 위치한 지역은 몇개의 혼합 종교가 있었다. 그것들을 살펴보면,
키벨레를 섬기는 종교가 있었다. 키벨레는 곡식 결실의 표상이며 생산을 상징하는 어머니 신이다. 이들 의식은 잔뜩 취한 상태에서 무절제 속에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몸을 자해하는 행위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래서 골2:11, 23에 몸에 자해행위를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미드라를 섬기는 그룹으로 이 것은 주후 2세기에 로마제국안에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빛의 신으로 숭배된 미드라는 승리의 영웅으로 어두움을 물리치는 신이다. 기독교와 비슷한 점이 많아 교회와 강한 대립을 했다. 빛의 승리를 위해 전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도덕적인 계명들을 지켰고 침례식과 성만찬을 시행하는 기독교와 유사한 의식들을 행했다. 당시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무절제가 판치는 상황에서 도덕적인 의무를 강조하고 어두움과의 싸움을 주장에 매력을 느낀 추종자들이 많았다.
초대교회에 가장 위협적인 그룹은 2세기에 만연하게 될 영지주의적 신앙체계였다. 영지주의는 지식의 우월성과 구원이 믿음에 있지 않고, 지식을 통해 온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지식은 점성술과 마법으로 취득되었고, 영지주의에 가입한 자들에게만 얻을 수 있었다. 영지주의는 모든 물질은 본래 악하고, 영적이며 비물질적인 것만 선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금욕주의나, 극단적인 쾌락주의로 빠지게 했다.
이런 영지주의적 신앙은 물질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과 결합할 수 없다며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세속적인 문화의 위협과 이단의 위협이 골로새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런 위협속에서 교회가 계속 건강하게 세워져 가길 원해 자신의 영적 스승인 바울에게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오늘 현대교회, 한국교회의 상황도 골로새 교회와 다르지 않다. 복음을 위협하는 많은 공격이 교회 안팎으로 있다.
미디어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종교적, 문화적 혼합주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WCC(세계교회협의회)에서 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 중에 하나이다. 이 운동은 처음에는 교파를 초월하고 연합해서 교회의 일치를 이룬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간의 담을 헐고 종교 단일화 운동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복음을 희석시키고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협은 뉴에지 운동이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형태로 세상의 문화에 침투하고 있다. 책과 영화, 음악 등을 통해 모든 신들을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세뇌시키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은 인간 최고의 목표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죄에 대한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삶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만든다. 그러면서 반핵, 반전, 평화운동, 자연보호, 명상, 요가, 마인드 컨트롤, 최면술, 자기 암시 등 대중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을 통해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동성애의 지지 또한 뉴에지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적 이단들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 안에 공식적으로 이단임이 규정된 단체들을 2014년에 복음적인 교단에서 발표한 이단은 208개였다.
어져면 골로새 교회의 시대보다 더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성장의 시기를 지나 위기의 시기를 맞고 있다. 반기독교 문화가 맹렬하게 퍼지고 있다.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낙심하고, 어떤 이들은 상황을 원망하고, 교회에 대해 비난하고, 교회 지도자들을 비난하고, 가나안 성도가 되어 교회를 떠나 방황하고 있다. 헌신하지 않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어 의무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른 태도일까?
바울이 에바브로디도의 보고를 듣고 어떤 태도를 취했나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에바브로디도를 책망하고, 교회의 지도자들을 비난하고, 교회 안에 문제들을 듣고 낙심했나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 있는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들은 바울은 감사로 편지를 시작한다.
바울은 현재의 문제와 어려움을 듣고 낙심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바울은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교회가 회복되어지고, 자랄 것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를 향해 감사할 수 있었다.
3-8절을 보면 감사의 조건을 4가지로 요약해서 전한다.
에바브로디도의 신실한 사역에 대해 감사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믿음으로 인해 감사한다.
모든 성도들이 사랑 가운데 행하는 것으로 인해 감사한다.
하늘에 쌓아 둔 소망 가운데 열매를 맺어 자라고 있음을 인하여 감사한다.
사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감사할 만큼 건강하지 못했다. 아마 소수의 신실한 성도들이 이런 모습으로 교회를 섬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시각으로 이 문제들을 보며 감사하고 있다.
감사후에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전할 메시지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본문 9-14절에서 기도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기도에서 모든 문제를 풀 핵심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기도 속에 나타난 핵심 원리에 순종함으로, 골로새 교회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워간 것처럼, 우리도 동일한 은혜를 경험하길 원한다.
9-12절까지 기도 중에 10절에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라는 명령이 기도의 핵심이다. 이 명령에 4개의 분사를 사용해서 구체적인 행동을 설명한다.
4개의 구체적인 행동은 조금 후에 설명하려 한다.
먼저 핵심 명령을 살펴보자. 합당하다는 헬라단어 악시오스는 가치의 품격에 맞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 사람의 위치와 신분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신분에 걸맞는 행동을 하여 기쁘시게 하라.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바울은 9절에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채우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지혜와 총명은 사물에 대한 판단력과 통찰력을 말한다. 여기에 신령한 이란 단어를 붙혀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게 된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살면서 얻게된, 판단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당시에 교회를 위협했던 혼합주의적 유대교, 영지주의, 인본주의적 철학 등을 잘못된 것을 판단하고 복음을 지키며 성도로 부르심에 걸맞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다른 잘 표현한 것이 롬 12:2절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분별하라는 동사는 증명하라는 뜻이 있다.
바울은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의 영적 판단력과 통찰력을 사용해야 할 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고 이야기 한다. 골1:15-20절까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건강해지고, 교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닮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깊이 알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15-20절에 보면 (새번역)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깊이 알고 그 은혜 가운데 사는 성도들이 마땅하게 행할 모습이 무엇인가?
바울은 4개의 분사를 사용해서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첫번째 분사는, 10절 하반절에 모든 일에 선한열매를 맺는 것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은 복수형이 아닌 단수형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성도들의 모든 사람에 삶에 열매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예수님께서도 마 7:15-20절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열매 없는 삶은 가짜 임을 강조하셨다.
이것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말씀이지만 거짓 교사, 가짜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도들은 말씀에 순종하면서 삶 전 과정을 통해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두번째 분사는 10절 하반절에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자라는 것이다.
자라게 하신다는 헬라 단어는 식물이나 아기가 성장하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다. 바울은 이것을 성도의 내적 성장을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했는데 현재분사 수동태로 사용해서 구원받은 시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람을 보여준다. 특별히 수동태를 사용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성장하게 하시는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성도들은 누구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해된 말씀을 삶에 적용함으로 계속 성숙한 성도로 자라가야 한다. 우리가 적용할 때에 신앙이 자라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성도들이 성화의 과정에서 자라야 할 최종 목표에 대해 엡 4:13절에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일을 위해 여러분은 어떤 action plan과 적용이 있나요?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세번째 분사는, 11절에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어떠한 인생의 어려웅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않고 기쁨으로 인내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라는 단어 크라토스는 신약에서 12번 사용되었는데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때만 사용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힘으로만 성도들이 능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능하게 하신다는 단어는 권한을 부여하다, 강하게 하다 라는 뜻이다. 바울은 이것을 2인칭 복수 수동태 현재 분사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힘을 공급하심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모든 성도들은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성화에 과정에서 실수로, 범죄함으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마 28:19절에 예수님께서 지상 대명령을 말씀하시고, 20절에 약속하신 말씀이 있다. 그것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세상 끝날까지 계속 공급하신다. 이것이 은혜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네번째 분사는, 12절에 우리에게 성도의 아름다운 기업을 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를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합당하다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두번 사용되었는데,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자격을 주고, 상을 받는데 충분한 권리를 부여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우리의 본향은 이세상이 아니다,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종말론적 시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장차 가게될 영원한 본향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나그네로서 이땅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삶을 드려야 한다.
말씀을 정리한다.
교회가 외적으로 내적으로 공격을 받아 어려움 가운데 처할 때에 믿음의 공동체의 지체들인 성도들은: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구주시고, 교회의 머리시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 해결자이이사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원하시는 삶에 순종해라. 이것이 너희가,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져갈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은:
주님을 지속적으로 알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지속적인 능력으로 기쁨가운데 모든 어려움을 인내함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장차 우리에게 주실 기업을 생각하며 늘 범사에 감사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기도한다.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말씀에 순종하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선한 열매 맺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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